직장에서 회식이 끝나면 대개 노래방에 간다. 특별히 음주가무를 즐기는 민족이라서가 아니다. 마땅히 함께 갈 곳이 없어서다. 그냥 헤어지기는 좀 허전한 것 같고 특별히 갈 곳도 없어서 다들 노래방에 가는 것이다.

노래방이 지겨워진 사람들은 더러 볼링장으로 빠지고 당구장에도 간다. 그것도 대부분 그쪽에 관심있는 사람들의 경우다. 이제 와서 펍에서 맥주한잔 시켜놓고 두어 시간 넘도록 뭉개고 앉아 토론을 벌이는 유럽의 음주문화를 수입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 나라는 당분간 어쩔 수 없이 쉽고 편한 국민 유흥장 노래방이 대세일 수밖에 없다. 40년 전 일본에서 이노우에 다이스케가 가라오케를 발명하지 않았다면 어쩔 뻔 했나.

노래방이 딱히 좋아서 가는 사람은 별로 없다. 싫으면 안가면 되는데 그게 또 간단한 프로세스가 아니다. 대열에서 빠지는데 대한 시끄러운 반작용을 감수해야 한다. 차라리 함께 가는 게 낫다. 그렇게 어쩔 수 없이 못 이기듯 엉거주춤 따라가게 되는 게 국민 유흥장 노래방 모습이다.

가는 것 까지는 어찌어찌 함께 가는데 그 다음이 또 문제다. 좋건 싫건 노래방 연륜 40년이면 다들 어느 정도 노래방 스킬은 통달 했을 터다. 도대체 노래방이 친해지지 않는다. 적당히 박수나 쳐주고 서 있으려면 그걸 결코 가만 두고 보지 못한다. 왔으면 노래를 불러야 한단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만 믿고 몇 번 자발적으로 들이 댄 적이 있었다. 봄날은 간다. 그 겨울의 찻집. 결과는 폭탄이다. 한껏 고조된 분위기를 숙연하게 만드는 만행이 돼 버렸다. 게다가 목소리까지 고음 불가를 연발하니 이건 도대체 참고 들어주기가 피차 민망한 일이다. 그러게 왜 가만히 있는 사람 노래는 시키고 그러냐고 들.

기타 줄의 굵기에 따라 음의 높낮이가 다르듯이 사람마다 좋아하는 노래도 분명 따로 있다. 노래를 시켜놓고 저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는데 무슨 문제냐고. 이건 분위기가 아닌 것이다. 시대의 대세 빠른 템포로 흔드는 분위기를 따라야 한다. 인간은 어디서건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어야 하는 법이다. 사는 거 참 피곤하다.

믿기 힘들겠지만 오로지 목소리 하나로 환호를 불러내던 시절이 있었다. 회사 야유회건 친목 모임이건 누구에게나 주어진 조건은 동일했다. 반주? 그런게 어딨나. 좀 나은 조건이라면 마이크가 있었을 뿐이다. 그 시절은 목소리 하나로도 충분히 신명이 났다. 유도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박수가 맞춰지고 노래가 끝나면 좌중에 휘파람과 환호가 넘쳤다. 

조용필이 대세인 시절. ‘잊혀진 사랑’이나 ‘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네’를 부르면 분위기가 잡혔고 ‘친구여’나 ‘일편단심 민들레야’가 나오면 자연스레 함께 따라 불렀다. 그 시절에는 노래를 부르면서 집단으로 몸을 흔드는 몰상식한 짓은 하지 않았다. 턱을 괴고 앉아 조용히 듣거나 손뼉을 치며 함께 따라 부르는 게 그 시절 분위기고 음주가무 정서였다.

나훈아 노래는 또 어땠나. 도올담길 돌아서며 또오 한번 보오오오고 징검다리 건너갈 땐 뒤돌아 보오며 서우우울로 떠나간 사람.... 국민 18번 아니었나. 함께 호흡하던 정서의 공통코드였다. 가라오케 반주같은게 어디있나. 처음부터 끝까지 목소리 하나면 충분했다. 열정도 있었고 흥도 있었던 시절. 노래를 부르는 동안 쥐죽은 듯 조용하다가 노래가 끝나면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와 환호가 터졌다. 환호 뒤에 남는 여운도 각별했다.

바야흐로 시절이 바뀌었다. 빠른 세상에 가속도라도 붙이려는 듯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빠른 곡이고 무슨 소릴 하는지 내용도 알 수 없는 가사다. 악을 쓰며 줄 곳 흔들어대야 직성이 풀리는 모양이다. 무개성에 몰상식. 정서가 다르니 그런 노래들이 맘에 들 턱이 없다. 맘에 안 들면 자리에 앉아 술잔이나 기울이면 되겠지만 그런 분위기에서 넘어가는 술은 또 온전한가.
 
노래는 몸이 악기가 되는 재능이다. 노래방에서는 반주를 줄이고 목소리를 낮춰야 한다. 때로 무반주면 어떤가. 조용히 턱이라도 괴고 앉아 다른 사람 노래를 들어보라. 그 사람의 취향을 좀 더 깊게 알고 공통점을 발견하여 친해질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된다. 사람에게 주목하며 환호하고 분위기에 취할 노래가 사라졌다. 어쩌다 이렇게 돼 버렸나. 차분하게 앉아 남의 노래를 감상해 줄 여유가 없어져 버린 것이 시대의 탓인가.

난국을 타개할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일단 무조건 빠른 곡에 흔들기만 하는 몰상식한 분위기에 제동을 걸기로 했다. 취향은 곧 사람이다. 사람취향을 어떻게 강제할 수 있나. 서로 존중해주고 존중받아야 한다. 좋아하는 노래를 주고 받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빠른 곡도 부르고 더러 분위기 잡는 곡도 섞어보고. 사람사는 게 그런 맛이 있어야지. 궁하면 통한다. 기다려라 노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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