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훈(생생연구소장)

요즘 날씨가 무더워 열대야로 잠을 제대로 못 잔다.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간신히 잠이 들었다가도 한두 시간 뒤에 금방 잠이 깬다. 새벽이 되면 좀 선선해져 잠자기가 좋은데 일하러 가야하기 때문에 단잠을 자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 숙면을 하지 못한 채 무더위 속에서 하루를 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일반인들은 관공서 근무자들에 비하면 천국이다. 이렇게 엄청난 더위에도 에어컨을 켜지 못하고 지내는 공무원들을 보노라면 안쓰럽다. 과천 정부종합청사를 비롯해 80년대 새로 지은 대부분 관공서의 경우 건물을 지을 때 에어컨을 사용하는 것을 전제로 자연통풍을 무시한 채 건물을 지었는데 막상 에어컨을 사용하지 못하니 대책이 없다. 창문이 없고 있어도 아주 작아 통풍이 안 된다. 몇 년 전 오송 메디칼그린시티사업 추진을 위해 미국 MIT대학을 방문했는데 그곳에서는 건물을 지을 때 자연통풍을 이용해 기온을 낮추는 것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었다. 실제로 그런 원리를 이용해 지은 건물들이 세계적으로 꽤 있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에너지도 없으면서 그런 연구에 너무 소홀하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여름밤이 괴로운 것만은 아니다. 여름이기에 즐길 수 있는 행사도 있다. 지난 광복절에 오창읍에서 광복절 기념 씨름대회가 있었다. 역사가 꽤 오래된 대회인데 과거에는 부락별 대항도 있어서 2-3일간 개최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고령화로 부락마다 젊은 사람들이 점차 줄어 요즘은 하루 경기로 끝내고 있다. 오후에 초등부, 중등부, 고등부 경기를 한 후 저녁에 해가 지기 시작하면서 고등부 결승과 여자부, 일반부 경기를 하는데 통상 밤 12시경 끝난다. 환하게 밝힌 조명 아래서 씨름 선수들이 숨을 가쁘게 몰아쉬면서 상대를 쓰러뜨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보노라면 절로 흥이 돋는다. 기술이 들어가고 그것을 되받아 치고 그러다 훌쩍 넘어가는 모습을 보노라면 통쾌감과 함께 쓰러진 선수에게 연민을 느낀다. 금년에는 오창산업단지관리공단에서 300만원 상당의 중송아지를 우승자 시상품으로 찬조했는데 송아지가 놀라 이리저리 뛰는 것을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참가 선수가 모두 주민인 것은 물론 행사 준비와 경기운영을 주민 스스로 하고 주민 모두가 참여한다는 것이다. 마을 축제는 주민이 모두 참여하는 축제가 되어야 한다. 어느 일부만 참여해 즐기는 축제는 진정한 마을 축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축제가 예전에는 마을 주민 모두가 참여하는 축제였는데 요즘은 일부만 참여하는 축제로 바뀌고 있다. 주민 스스로가 즐겁고 신명이 나야 외지에서 온 사람들도 신명이 나고 또 그런 신명을 즐기기 위해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창 씨름대회는 충분히 그렇게 발전시킬 수 있는 축제라고 생각한다.

 가경동에서 개최된 찾아가는 공원축제도 여름밤이라서 더욱 즐거운 행사였다. 청주시가 문화재단에 위탁해 실시하는 이 행사는 청주시 소재 동호인들이 참여해 만들어 가는 행사다. 참가하는 동호인 수가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15개 내외가 참여하고 있다. 취미로 하는 동호인들이라고는 하지만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는지 거의 프로 수준의 실력을 뽐내고 있다. 이 행사도 참 잘 기획한 행사라는 생각이 든다. 한 여름 밤에 어둠이 내리는 동네 공원의 야외공연 무대에서 주민들과 함께 주민들로 구성된 동호회들이 공연을 하면서 즐기는 것은 참 행복한 광경이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젊은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과 참가한 사람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이 미흡하다는 것이다. 참여가 아니라 보는 것만으로는 여름밤의 열기를 제대로 즐기기에는 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밤의 행사로 클래식이나 세미클래식을 즐기는 기회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숲속이나 강변에 야외음악당이 있어서 주말 저녁에 연주를 해 준다면 여름밤을 시원하게 보내는 좋은 방법이 될 것 같다. 경제가 어려워 먹고 살기도 어려운데 무슨 한가한 얘기냐고 할지는 몰라도 그러나 그럴수록 돈 안 들고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도 좋을 것이다. 더욱이 우리의 문화적 수준을 함양하는 것이라면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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