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자/수필가

 

  엊그제는 광복절이었어요. 4대 국경일이요, 나라를 되찾은 기쁜 날이니 국기게양을 하는 날이었지요. 달력에서 일정을 확인하다 보니 문득 국기를 달아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고 시간은 7시를 30분이나 지나있었지요. 국기게양시각인 7시를 맞추지는 못했지만 잊지 않은 것만 다행이었어요.

  밀린 일을 하고 있자니 아파트 관리실에서 방송이 나왔어요. 

  “주민 여러분께 알립니다. 오늘은 68주년을 맞는 광복절입니다. 각 세대에서는 국기를 게양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말씀...”

  국경일 마다 들어온 귀에 익은 방송이었는데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지요. 시계는 10시 반을 가리키고 있네요. 얼마나 국기들을 안 달았기에 이제서 방송을 하는 것일까 하며 아파트 뒷동을 내다보았지요. 국기가 걸린 집은 가뭄에 콩 나듯 몇 집 되지 않았어요. 길 건너 상가를 바라보아도 국기는 별로 보이지 않네요. 방송이 있은 지 한참 뒤에 다시 내다보아도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휴가들을 떠난 건가’ 혼자 중얼거려 보지만 소용없는 일이었지요.

   태극기를 거는 날을 다시 되짚어 보았어요. 4대 국경일인 삼일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과 신정, 현충일, 국군의 날, 한글날, 모두 8번이었어요. 한 달에 한 번꼴도 안 되는 날에 국기를 내거는 것은 애국하는 최소한의 행위인데 잊고 있었던 날은 없었는가 생각해 봅니다.

  학교에 있을 때 국경일이 지난 다음날이면 국기 달았던 학생 수를 물어 적어내는 회람지가 돌곤 했지요. 교육청에서 통계를 잡기 위한 것이었겠지요. 그만큼 국기 다는 일에 역점을 두었지요. 현충일에는 조기(弔旗)를 달아야 한다고 가르쳤더니 어느 집에 조기 한 마리가 걸려있었다는 웃지 못 할 일화도 있었지요. 지금은 국기에 대한 교육을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지만 어쩐지 그런 것들이 퇴색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네요.

  평소에 애국심이 강한 것처럼 외쳐대는 사회 지도층 인사들은 국기게양을 잘하고 있는 것일까? 말로만 애국자인양 하지 말고 국기 다는 일 한 가지라도 철저하게 지키는 사람이 더 애국하는 길이 아닐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 보았지요. ‘독도는 우리 땅’ 이라고 말로만 외치지 말고 태극기를 소중히 여기고 국기 다는 일을 잊지 않고 동참하는 작은 실천이 나라를 사랑하는 길이 아닐까요.

  태극기 하면 유관순 열사가 떠오르고 아우내 장터의 만세 소리가 아련히 들리는 듯합니다. 골방에 숨어서 몰래몰래 태극기를 만들고 그것을 치마폭에 감추고 먼 동네까지 밤길을 걸어가서 전달하던 그 분들의 충정이 아니었다면 3.1운동도 광복의 기쁨도 없었을 것입니다.

  국기는 나라를 상징하고 그 주권과 국위를 나타내는 표지로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 세계의 눈들이 집중된 가운데 애국가가 울려 퍼지며 우리국기가 올라갈 때 얼마나 가슴 벅차고 자랑스러웠던가요. 미국에 나가서 우리 태극기를 만났을 때 동기간이라도 만난 것처럼 반갑고 눈물이 핑 돌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태극기 섬으로 변신한 소안도 이야기가 화제가 되었네요. 소안도가 어디인가 지도를 찾아보았더니 전남 완도군의 작은 섬이었어요. 보길도 바로 옆에 인구 2800여명의 조그만 섬이었지요. 이 섬은 원래 일제 강점기부터 항일운동의 발원지로 잘 알려진 곳이었어요. 함경도 북청, 경상도 동래와 더불어 가장 조직적이고 격렬하게 항일운동이 펼쳐졌던 곳으로 유명하며 독립유공자만 20명을 배출했다고 하니 놀라운 일이네요. 한때는 주민 6천여 명 가운데 8백여 명이 '불순한 조선인'으로 분류돼 일제의 감시를 받기도 했다지요.

  소안도 사람들은 독립운동을 전개하다 투옥된 동료들을 생각해 고생을 같이 하자는 의미로 한겨울에도 이불을 덮지 않았으며, 일본 순사와 말도 하지 않았던 '불언 동맹'까지 하였던 '충혼의백(忠魂義魄)의 땅으로 알려진 곳이었어요. 이 섬 주민 모두가 뜻을 모아 선열들의 숭고한 항일정신을 기리기 위해 365일 태극기가 펄럭이는 섬으로 만든 것입니다. 출향인, 주민 등 1,000여명이 모여 "소안도 나라사랑 365일 태극기 섬 선포식"을 개최했다니 소안도 사람들의 나라사랑 정신을 알만합니다.

  그 뿐 아니라 2000여 포기의 홍단심, 청단심을 심어 무궁화동산까지 조성하였다니 펄럭이는 태극기 아래 무궁화가 환하게 웃고 있을 장면은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네요. 국경일이면 태극기가 일제히 내걸린 아파트의 모습도 보기 좋겠지요. 그 속에 담긴 애국애족의 정신은 더 아름답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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