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수애(충북대 교수)

   중진국 대열에서 선진국으로 향한 발걸음이 더뎌진다는 우려 속에 복지 서비스 향상이라는 대국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각적인 묘안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필요하다. 정부는 그 대안의 하나로 지난 주 7개월에 걸쳐 고민하였다는 세제 개편안을 선보였다가 비난의 여론이 악화되자 대통령의 원점 재검토 지시 하루 만에 급히 수정안을 내놓았다. 예측치 못한 조세저항에 일단 큰 불은 껐지만 증세 불만은 아직 불씨가 남아있다. 이번에 발표한 세제개편안은 발표 순서와 방법 면에서도 적절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군주정치 시대 프랑스 콜베르 재상이 세금정책을 내 놓으며 했던 거위 깃털을 고통 없이 뽑아내는 것과 같다’는 말을 인용한 경제 수석의 발언에 국민들은 더욱 마음이 상했다.

   재원이 허락한다면 보편적 복지국가를 실현하는 일에 반대를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제대로 된 선택적 복지를 실행하기에도 역부족이라는 의견도 많다. 어떠한 방법으로 복지 행정을 전개할지 어렵고 힘든 숙제를 풀어가는 왕도를 알고 있는 사람도 없다. 모두가 뼈를 깎는 아픔을 감수하며 십시일반으로 힘을 합쳐간다면 현재와 미래 자신에게 투자하는 납세 의무에 불만만 터뜨리진 않을 터이다. 국민의 조세 부담에 자발적 동기를 유발하는 일이 선행되었어야 할 일이다. 경기불황을 견디며 매일 필요한 식품과 생활필수품을 사면서 단돈 몇 백원도 절약하려고 애쓰는 서민들에게 일 년에 기만원이라도 세금을 더 내는 것은 반갑지 않은 부담이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다는 공감을 이끌어낸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도 있다. 모든 국민이 각자의 소득에 따라 국가의 발전과 어려운 이웃을 위해 정직하게 세금을 낸다면 기꺼이 수용할 수도 있다.

   소득이 훤히 드러나는 봉급생활자들에게서 세금을 징수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국가 재원이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되는 바를 모르지 않기 때문에 공감대만 형성되면 그리 큰 문제도 아닐 것이다. 기업의 법인세를 비롯해서 거액 자산가, 고소득 자영업자와 전문직 종사자들 까지 급여생활자와 같이 투명하게 납세할 수 있는 방안을 더욱 고민해야 한다. 그들의 세 부담을 늘리는 조치가 선행되었다면 샐러리맨들의 불만이 덜했을 지도 모른다. 지하에 묻혀 유통되는 거액의 경제를 밖으로 끌어내 활성화하는 일에도 힘써야 한다. 힘없는 국민만 꼬박꼬박 세금을 다 내고 있다는 억울한 생각이 들지 않게 탈세를 방지하는 대책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세금을 안내는 것은 생각도 못하는 선량한 서민들은 탈세를 위한 범법행위자들이 활개 치며 살고 있음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들의 비과세 혜택은 점점 없어져 가는데 국회의원들의 납세실적은 어떤가? 세비 1억 4500만원을 받는 의원 299명(거액 납세자 1인 제외)의 작년 평균 실제 소득세는 434만원이었다고 한다. 소득세 10만원 미만이 51명, 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는 의원도 37명이라니  서민들의 상대적 박탈감과 불만이 오죽할까? 게다가 입법 활동비와 특별활동비로 비과세 수당을 대폭 올려 월 400만원의 비과세 혜택을 보고 있어 같은 연봉의 일반직장인보다 건강보험료도 적게 낸다. 실제소득보다 35%나 적은 소득을 기준으로 건보료를 내기 때문이다. 서민들의 세금폭탄을 저지하겠다는 명분으로 장외투쟁을 키우려했던 야당의원도 그리 충직해 보이지 않는다. 왜 지도층에서부터 솔선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일까? 국민의 혈세로 받는 세비에 대해 온당한 세금을 내야 한다, 비과세 대상인 입법 활동비 등은 원래 취지대로 지출 증빙을 하도록 하고 법안 처리건수와 연계해야 한다는 지적을 돌이켜 봐야 한다.

     정부 통계상 중산층에 해당하는 사람 중 30% 정도는 스스로를 저소득층으로 인지한다고 한다. 세전 급여만 중산층이지 치솟는 물가와 주거비, 교육비 등에 쫒기는 사람들이 정부에서 받는 혜택은 없고 부담만 지는데 과세형평과 북지혜택 부족에 불만을 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상황마다 다르게 적용하고 있는 중산층의 기준도 납득할 수 있게 명확하게 해야 한다. 선진국에 진입하려면 복지 확대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국가 재정이나 복지행정 공무원 수요 등을 면밀하게 검토하여 가장 시급하게 필요한 부분부터 점자 확대할 필요가 있다. 무상보육이나 무상급식은 시행한지 얼마 되지 않아 벌써 문제점이 드러나고 중단되는 사태도 벌어지고 있다. 교육현장에서 대다수의 교사들이 교육환경 개선이 고교무상교육보다 더 절실한 현안이라고 지적한다. 정확한 정책과 판단으로 낭비적 지출을 최대한 줄이고 세수확보를 위한 다각적 노력과 아울러 포퓰리즘에 밀려 복지정책을 그르치지 말아야 한다. 한 번 받은 수혜를 되돌리는 일은 더욱 어렵다. 섣부른 판단으로 후대에 엄청난 빚을  남기지 않도록 경제를 살리는 일에도 집중해 주기를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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