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논설위원 · 청주대 명예교수)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사회적 존재이다. 인적 구성체인 사회라는 세계에서 더불어 사는 존재이다. 사회구성원으로서 공동체의 삶을 영위하는 존재이다. 공동체의 삶을 원활하게 하기 위하여 사회에는 공식적인 법 및 제도 등이 제정되어 있고 비공식적인 도덕, 규범, 관습 등이 묵시적 합의하에 뿌리 내려져 있다. 전자를 강성가치로, 후자를 연성가치로 볼 수 있다. 강성가치에는 강제와 의무가 수반되지만 연성가치에는 인간의 양식과 도리에 맡겨질 뿐 아무런 구속이 없다. 그러나 연성가치는 인간의 일상생활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고 인간이 사회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행동강령으로 인식된다는 점에서 강성가치보다 훨씬 중요시 된다. 

이러한 연성가치에는 도덕, 규범, 관습 등보다 훨씬 많은 지표들이 존재한다. 친절, 양보, 온화, 봉사, 겸손, 양해, 존중, 배려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이 많다. 이 중에서도 존중(尊重)과 배려(配慮) 등의 연성가치가 특히 중요하다. 사전적 의미로 존중은 타(他)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배려는 타에 대하여 마음을 써 주는 것을 말한다. 전자는 크게는 국제간, 정당간, 조직간, 집단간에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쌍방이 공승(共勝:win-win)할 수 있는 대안을 발굴하는 노력을 경주하는 것을, 작게는 상호간의 대화나 토론 등에서 상대방의 판단이나 의견 및 행동 등을 의미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더 나아가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시각에서 수용하는 자세를 말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국가간, 공공조직간, 사회단체간, 인간간에 공동체적, 인도적 차원에서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상대방의 편익을 위해 마음을 쓰는 것 등을 가리키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사회는 고도의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물질만능주의가 팽배되어 있다. 물질을 숭배하는 사상인 물신주의(物神主義)에 빠져있다. 물신주의는 이기주의로 연결되어 공동체로서의 삶을 약화시킨다. ‘다른 사람이야 어떻든 나만 편하고 이득이 되면 그만’이라는 의식이 깊게 자리 잡고, 타의 의견이나 주장 및 편의 등을 도외시하거나 아랑곳 하지 않는다. 오랜 세월동안 전통문화로 뿌리내린 도덕, 규범, 관습 등을 자신과는 무관한 것으로 취급하거나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이러한 이기주의는 공·사 구별 없이 만연되어 있다. 회의장에 참석하거나 길을 나서면 이기주의 사례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타 조직이나 집단 및 토론자의 주장을 진지하게 듣고 자기의 생각과 판단 등을 접목시키려 하지 않고 자기주장만을 내세우거나, 남이야 불편하든 말든 자기만 편리하면 된다는 듯 일방적이고 이기적인 행동을 아무 거리낌 없이 행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아무리 타당한 논리나 이론 등을 제시해도 불통이 되고 아무리 공중도덕이나 공동체 의식을 주장해도 마이동풍하기 일쑤이다. 심지어 한 걸음만 비껴 주어도 길가는 사람이 불편 없이 통행할 수 있는데도 길 한가운데에 삼삼오오 서서 길을 막고 있는 것이다. 비켜달라고 말하면 얼굴을 찌푸린다. 뒤의 차가 우회전 신호를 보내도 모퉁이에 정차하고 있는 차는 막무가내로 못 본척한다. 그럴 때마다 뒤의 차를 운전하는 사람의 입에선 상스런 욕설이 튀어 나온다. 이러한 이기주의적 현상이 되풀이 되다보면 사회는 험악해지고 불신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게 된다. 사회는 무미건조하고 삭막해지며 그 속의 인간관계는 갈등과 대립으로 점철되게 된다. 인간관계는 상대적 관계라는 점에서 결국 ‘나만 편하면 된다’는 고도의 이기주의는 남한테 불쾌감이나 혐오감을 주게 됨은 물론 부메랑(boomerang:되돌아 옴)이 되어 자신을 불편하게 하고 고독하게 한다.

존중과 배려는 사람다운 자격을 말하는 인격(人格)과 인간으로서의 필요요건인 양식 등을 진원지(震源地)로 한다. 이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구비하여야 할 가장 소중한 덕목이다. ‘타가 있기에 나도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존중과 배려는 곧 나를 위한 행동덕목‘인 것이다.

그렇기에 사회구성원 모두는 존중과 배려의 행동덕목을 실천하여야 한다. 더 나아가 사회문화로 꽃피워야 한다. 존중과 배려는 마치 물과 거름 같아서 적당히 사용하면 사회라는 대지를 한결 비옥하게 만들게 되고 그 대지를 터전으로 하여 삶을 영위하는 사회구성원들은 행복의 찬가를 부를 수 있게 될 것이다. 인격과 양식에서 우러난 존중과 배려 문화의 조성에 앞장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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