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조철호 동양일보 회장 시집 ‘다시 바람의 집’ 출간
평론가 “자아가 쌓은 아주 오래된 퇴적층 같은 시”

스위스의 철학자 아미엘은 예술을 두고 사람들의 정신 속에 존재한 비밀스러운 것들이 드러나고, 어렴풋했던 것이 분명해지며, 복잡했던 것이 단순해지고, 우연이었던 것이 필연이 되는 것과 같은 사람에 대한 작용이라고 말했다.

진정한 예술가는 언제나 모든 것을 단순하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는 아미엘의 말이 꼭 맞는 옷처럼 잘 어울리는 시인 조철호(69·청주시 상당구 율량동 1070·043-218-7117) 동양일보 회장의 시집 다시 바람의 집이 발간됐다. 1978년 등단 이후 발간한 두 번째 시집이다.

그리움과 상처, 쓸쓸함과 연민으로 퇴적된 초로(初老) 시인의 혜안이 70여 편의 시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삶을 가장 열심히 살아낸 사람에게서 풍기는 단단한 향이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한숨 편히 자 본 적 없이(잠자리’) 일만 해 온 자신을 보고, 몸을 배신하고 제 일만 해 온(병든 몸을 바라보며 3’) 자신을 본다. 그러니 하늘도 무심히 지나친 게 당연하다고 여긴다. 병든 몸을 객관적 상관물(병든 몸을 바라보며 3’)로 대치시키기도 하고, 그러다가 울컥 고맙단 말 한마디 들어보지 못한/무정의 긴 세월’(발바닥을 만지며’)이었다며, 인간적인 직설을 토하기도 한다.

나는 어쩔 수 없는/한 마리 일벌이었구나//눈부신 4/바다로 가는 차창 가에서/시시한 시집이나 펼치고 있으니/그러니 철든 자식놈들은 저만치 있고/철없는 손자놈이나 찾아드는

바람이야기 12-초로의 풍경1’ 전문이다.

아마도 백지 위에 자신이 살아온 모습을 곤충으로 비유해서 그려보라면 그는 분명 일벌을 그릴 것이다. 자신을 한 마리 일벌로 의물화시킨 의도 속에는 시적 화자의 쓸쓸함, 서운함, 허전함, 아쉬움 등 복합적인 감정들이 내재되어 있다. 거대한 탑을 쌓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연들이 있었을까. 그러나 시인은 소재적인 것들의 뼈대를 일체 드러내지 않고, 언어 스스로 울려 언어 자체가 소리를 내도록 시적 긴장감을 유지시킨다.

때로는 신입사원과 소주를 걸치는 행복한 소망적인 꿈(wishful thinking)을 꾸어보기도 하고, 자신을 별빛 눈물로 자리바꿈(displacement)해 보기도 하지만, 종국에는 자신의 영어(囹圄)를 나쁜 기운으로 돌리며 원망과 불안과 우울을 극복한다. ‘이 봄쯤에 이르러 인생의 유한함을 그들도/깨닫기 바라노니/이 담담한 바람도 옥살 때문일까’(바람 이야기 8 옥살고 2’).

이것이 시인 조철호의 상처 치유 방식이다. 상처의 길을 밖에서 들어가지 아니하고 자신의 내면에서 들어감으로써 자신을 밝히는 아주 멋진 상처 극복 방식인 셈이다.

신경림 시인은 발문에서 조철호 시인과의 만남이 계속될 수 있었던 것은 시에 대한 그의 열정이 식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 시인은 신문의 경영자가 되면서 그 신문이 시와 관련되는 일을 특별히 많이 한 것은 그가 시에 대해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며 특히 정지용, 조명희, 조벽암 등 고향 선배 시인들을 기리고 아직 밝혀지지 않은 가치를 찾아내는 데 그가 기울인 노력은 평범한 기자였으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라고 시인과 언론인으로서의 조 시인에 대해 평했다.

권희돈 문학평론가는 조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다시 바람의 집은 아주 오래된 퇴적층을 연상케 한다이 퇴적층의 무늬들은 사회적 자아가 만들어 낸 게 아니라, 개인적 자아가 쌓아놓은 것이기에 보다 본연적이고 순수하고 단단하다고 논했다.

조 시인은 세상과 사람의 품성이 변한 것처럼 시도 변했을 것이다. 그러나 많이 변했다는 세상과 사람과 시가 다 그대로 있듯, 시의 감동 또한 힘센 것이어서 그 영역을 헤어날 수가 없었다신문을 만드는 현장에서, 투르판의 혹한과 에티오피아의 황막한 고원에서, 심지어 암과 싸우던 병실에서 조차도 나를 따뜻하게 감싸 안았던 시에게 감사한다고 밝혔다.

1945년 청주에서 출생한 조 시인은 청주고와 청주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충청일보·합동통신 기사와 연합통신 취재반장·충북지국장을 거쳐 동양일보를 창업했다.

1978년 월간문학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으며 저서로 시집 살아 있음만으로와 장편 여행에세이집 중국대륙 동서횡단 25000’, 중국어판 들끓는 중국이 있다.

충청북도문화상과 중국 장백산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충북문인협회장과 충북예총 회장을 지냈다. 현재 동양일보 회장으로 한국시낭송전문가협회 회장과 충북예총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 출간 축하모임은 99() 오후 3시 청주 선프라자 신관 1층 그랜드 볼룸에서 열린다.

문학세계사, 142, 8000.

<김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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