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일(극동대학교 언론홍보학과 교수)

  지난 23일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가 종료되었다. 7월 2일 시작하여 무려 53일간 활동했으나 여야 간 이견으로 결과보고서조차 채택하지 못한 채 끝나고 말았다. 새누리당은 보고서에 여당과 야당의 입장을 각각 담자고 한 반면 민주당은 진실이 가려질 수 있다며 보고서 채택 자체를 반대한 것이다. 국민들 입장에서는 이렇게 끝날 것을 뭐하러 그렇게 사사건건 부딪히며 막말과 고성을 주고받았는지 실망스러울 수 있다. 그런데 국정조사가 끝나자마자 일부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국정조사 ’무용론’을 내놓기 시작했다. 진실규명보다는 정파 간에 치열한 정쟁으로 치닫기 일쑤인데다 일부 특위 위원들의 몰지각한 언행으로 정치에 대한 불신만 가중시킨다는 이유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제기되는 국정조사 ‘무용론’은 왠지 석연치 않다. 본래 국정조사는 행정부에 대한 입법부의 견제장치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에 여당과 야당 간에 대립구도 형성은 불가피한 것이다. 더구나 이번 국정조사는 갓 출범한 새 정부의 정당성과 직결된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을 다루는 것인 만큼 치열한 정쟁은 예견된 것이다. 정부조직법 통과 때문에 마지못해 국정조사를 수용한 새누리당은 처음부터 대놓고 ‘방탄국조’를 자임하고 나섰다. 특위 위원 선임에서부터 증인채택 문제, 회의 진행방식을 놓고 계속 발목을 잡았다. 그러다보니 전체 53일의 활동기간 가운데 실제 조사활동을 벌인 날은 5일에 불과했고 그나마도 매끄럽게 진행된 적이 없었다.

  민주당도 파행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게 강력하게 국정조사를 요구했으면서도 어렵게 청문회 자리에 불러낸 증인들의 ‘모르쇠 증언’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증인들의 말을 반박하거나 거짓을 입증할만한 자료가 제대로 준비되지 않다보니 괜한 호통을 치거나 막말을 해서 증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밖에 할 것이 없었던 것이다. 혹시라도 증인들이 발끈해서 진실을 털어놓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던 듯하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핵심 증인인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16일 청문회에 출석해서는 현재 재판 중인 사안이라는 이유로 증인선서를 거부해버렸다. 출석 거부로 고발당할까봐 청문회장에 나오기는 했지만 증인선서를 거부한다는 것은 대놓고 사실을 말하지 않겠다는 뜻 아닌가. 실제로 김 전 청장의 발언에 거짓이 있음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증인선서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별다른 조치를 취할 방법이 없었다.

  사실 이런 결과는 현행 국정조사 제도가 가진 한계에 기인한 것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어떤 사안이든 국정조사를 통해서 모든 진상을 파헤치는 것이 불가능하다. 실제로 지금까지 치러진 22번의 국정조사에서 여야 합의로 결과보고서가 채택된 경우는 12번에 불과하다고 한다. 따라서 지금은 국정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번 국정조사를 거울삼아 보다 효율적인 국정조사 진행방식, 증인의 출석 거부나 위증을 막을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방안, 국정조사 특위의 상설화 방안 등에 대해 다각적으로 검토하는 계기가 마련되어야 한다.

   성과가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다. 완전히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제기되었던 의혹의 일부가 사실로 확인되었다. 국정원의 조직적인 개입 의도가 있었으며, 경찰에서 이를 축소·은폐하려 한 정황이 있었던 것도 드러났다. 일부 증인들의 증언 태도를 보면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진실이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또 어떤 방식으로든 국정원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국민적 공감대도 형성되었다. 이것만으로도 국정조사의 본래 목적인 행정부에 대한 견제 기능이 ‘유용성’이 있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남은 의혹은 사법부의 재판과정에서 낱낱이 밝혀지기를 기대하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