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준(청양군 부면장)

 

우리지역 한 마을에서 축제를 준비 중이다. 마을 이름은 동막골. 동쪽이 막힌 마을이라는 지리적 특성에서 유래했다. 동막골은 충남의 알프스 청양 산골짜기라서 옛날부터 누에와 인연이 깊은 곳이다. 그래서 축제의 주제는 누에의 번데기로 정했다. 여기에 번데기의 가장 큰 특징인 주름을 붙여 ‘동막골 뻔데기 주름축제’라는 축제명이 탄생했다.

 축제명 설문조사 과정에서 5개의 후보군이 있었다. 그 중 뻔데기 주름축제가 어감상 재미있고 기억하기 쉽다는 특성으로 최다득표를 얻었다. 그러나 단순한 재미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이름이란 모름지기 재미와 함께 의미가 깊어야 사람들 마음속에 오래 남을 수 있다. 번데기 주름이 이번 축제의 대표적 상징이 된 비하인드 스토리는 따로 있다.

   주름은 노인의 상징이다. 시골에서 평생 힘든 일만하며 어렵게 살아온 마을 노인들... 주름은 또한 5령의 과정을 모두 거치며 뽕잎만 먹으며 살아온 누에 번데기의 상징이다. 그렇게 노인은 번데기로 투사된다. 한 평생 스스로 나비인 줄도 모르고 일에 묻혀 살아 온 안타까운 시골마을 번데기들. 본래 번데기의 꿈은 나비였다. 번데기는 나비가 되어 날아야 한다. 축제는 마을노인들의 깊은 주름에서 우러나오는 번데기들의 나비우화 퍼포먼스를 보여 줄 작정이다. 이름하여 ‘뻔데기 합창단’.

 뻔데기 합창단은 65세이상 마을 노인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그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골라 무대에 선다. 합창단의 노래연습은 번데기들이 날개를 얻으려는 몸부림이다. 번데기들이 누에고치 속에서 혼신의 몸부림을 통해서 날개를 얻듯, 노인들은 가슴 설레는 축제 공연을 준비하면서 날개가 돋는 것이다. 축제날 무대는 그들이 새로 얻은 날개를 확인하는 시험비행이다. 무대공연은 스스로 나비임을 자각하는 희열이다. 그들은 공연을 통해서 여생을 즐겁게 살아 갈 신명을 얻을 것이다. 관객들은 따뜻한 격려의 박수로 나비 우화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고.

 당초에 노래를 잘 할 필요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요즘 세상 노래 잘하는 사람들은 널리고 널렸으니까. 노인들이 정성껏 즐겁게 준비한 공연이면 충분하다. 무대에서 실수 좀 하면 또 어떤가. 건강한 웃음 속에 짠한 공감이 다가 올 것이다. 노인은 모든 인간의 미래이므로... 축제의 백미 뻔데기 합창단의 컨셉이다.

 뻔데기 합창단은 본래 10명이하의 뻔데기 중창단으로 기획되었다. 지원자가 많지 않으리라는 예상 때문이었다. 결과는 정반대였다. 단원모집과정에서 거의 전 마을 노인들이 지원하는 바람에 결국 합창단으로 규모를 늘려야 했다. 주 2회의 연습시간은 끼와 신명을 발산하는 웃음의 장이다. 단지 공연만을 위한 연습이 아니다. 함께 모여서 즐겁게 노래하는 일은 그 자체가 이미 축제다. 준비 과정이 이미 축제 중이다.

 주민들은 축제를 준비하면서 스스로 축제의 주인공이 되기로 했다. 손님만을 위한 축제가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스스로 주인공이 되는 잔치를 여는 것이다. 보여주기 위한 축제는 재미없다. 축제는 다함께 즐기기 위한 것이다. 남을 위한 축제가 아니라 스스로를 위한 축제다. 축제를 준비하는 과정부터 함께 눈을 맞추고 미소를 건네면서 함께 만들어낸 자잘한 즐거움들을 공유할 것이다. 함께 사는 공동체의 즐거움을 나눌 것이다. 주인공 코스프레의 핵심은 물론 뻔데기 합창단이다.

 축제에 뻔데기 합창단 공연만 있는 건 아니다. 있을 건 다 있다. 우선 먹거리. 먹거리의 핵심은 번데기 퓨전요리다. 번데기 하면 어린 시절 삼각으로 접은 신문지 봉지의 번데기 맛을 떠올릴 것이다. 고소한 추억이다. 축제에서는 추억을 재료삼아 일상에서 즐길 수 있는 다채로운 번데기 퓨전요리를 준비했다. 번데기 외에도 몸에 유익한 뽕잎과 오디를 재료로 하는 다양한 요리들도 선을 뵌다. 양잠 부산물 종합 요리다.

 볼거리도 많다.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열심히 준비한 사물놀이와 끼 있는 귀농인의 자발적 재능기부를 통한 공연이 어우러지는 소박한 무대를 꾸민다. 가급적 우리끼리 어울려 축제를 치룬다는 원칙 때문이다.

 누에의 생태를 통해 자연의 신비함도 느낄 수 있다. 누에는 변신의 귀재다. 알에서 성충까지 완전변태를 한다. 애 누에는 25일동안 4번의 허물을 벗으며 80mm까지 자란다. 5령의 큰 누에는 약 1.5km의 비단실을 뽑아 고치를 만들고 그 속에서 번데기가 된다. 번데기는 고치 속에서 하늘을 나는 나비의 꿈을 꾼다. 모든 과정들이 자연의 신비다. 사람들은 동막골 뻔데기 주름 축제를 통해서 조화로운 자연을 느끼고 바람직한 생태를 배우는 뜻깊은 기회가 될 것이다.

 한 가지 더. 번데기가 유엔에서 정한 미래 식량이라는 건 아시는가. 석 달 전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200쪽짜리 두툼한 보고서를 냈다. ‘곤충이 미래의 식량’이란 주제다. 소고기에 비해 10분의 1의 땅과 12분의 1의 사료면 충분하다. 미네랄, 비타민, 아미노산이 풍부하다. 결국 번데기가 인류의 미래 영양을 책임질 친환경 웰빙 먹거리라는 것이다. 축제날은 9월 28일. 딱 한 달 남았다. 건강한 웃음과 소박한 감동이 있는 ‘동막골 뻔데기 주름축제’에 놀러 오시라. 맛보고 즐겨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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