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선(본사 상임이사)

그날 밤 그 도시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27일 밤 8시, 한 지방도시에서 신선한 음악회가 열린다는 소식에 조금 일찍 일을 정리하고 몇 사람과 함께 그 도시로 갔다.

밤 8시라니? 일반적인 오후 공연시각인 7시도 아니고 7시30분도 아닌, 8시라니. 서울같은 대도시에서는 왕왕 8시 공연이 있지만 그것은 퇴근시간 후 교통혼잡을 피하도록 하기 위한 배려의 시각이 아니던가. 중소도시에서 밤 8시는 참 어정쩡한 시간이다. 저녁식사를 하고 집으로 들어가기엔 조금 이른 시각이고, 그렇다고 집에 들어갔다가 새잡이로 나오긴 더욱 귀찮은 시각이고, 공연을 보기 위해선 기다려야 하는 시각이다.

그렇게 기다렸다가 공연장에 도착한 뒤 깜짝 놀랐다. 공연장 입구는 꼬리를 문 관객의 행렬로 혼잡했다. 그 행렬의 대다수는 학생들이었고, 그것도 쇼트커트의 남학생들이 많았다. 걸그룹이나 아이돌 음악같은 대중음악이나 즐길 아이들이 학교의 지시로 할 수 없이 떼밀려 왔구나 생각하니 속으로 걱정이 됐다. 모처럼 나들이 나와 음악감상을 하려 했는데 소란스런 분위기로 망치겠구나 생각했다.

입구에서의 예상대로 공연장은 입추의 여지가 없이 가득 찼다. 1층 500석, 2층 240석을 다 채우고도 모자라 통로마다 관객이 앉았고, 입석의 관객들이 빼곡이 공간을 메웠다.

8시, 무대가 열렸다. 무대가 꽉 차게 자리 잡은 50명 가까운 교향악단은 요한 시투라우스의 곡으로 서곡을 열었다. 우아하고 경쾌한 곡이 객석으로 흘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객석이 숨죽인 듯 조용했다. 성인들이야 클래식을 듣고자 찾은 관객들이지만 클래식에 낯설 것 같은 남학생들이 움직이지도 않고 섬세한 선율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떠들거나 장난치면 어쩌나 우려했던 그런 아이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지휘자가 유도하면 박수로 화답하고, 첼로 협주나 소프라노 테너의 노래가 끝나면 ‘앙코르’를 청할 줄도 알았다.

기뻤다. 그리고 흐뭇했다. 아, 이 아이들이 이날 느낀 클래식의 감동은 일생동안 클래식을 접할 때마다 생각날 것이다. 대중음악만 재미있는 것이 아니라 클래식으로도 이렇게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학생들을 공연장으로 보낸 선생님들이 고마웠다. 

음악회가 끝났을 때 그 도시의 시장을 비롯한 어른 관객들은 기립박수를 했다. 누군가 그 도시에서 기립박수를 보는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날 음악회는 교육적인 면에서만 의미있는 음악회가 아니었다.

두 지휘자의 아름다운 우정과 연주자들의 화합이 만들어낸 감동의 음악회였다.

충주시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인 이강희 교수, 그리고 충북도립교향악단의 지휘자인 양승돈 교수. 두 지휘자가 이뤄낸 하모니였다.

두 지휘자는 서로 이끌고 있는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함께 연주회를 열기로 했다. 마침 충주에서 개최되고 있는 2013 충주세계조정선수권대회 기념으로 충주에서 뮤직페스티벌을 기획했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서로 자존심이 센 연주자들을 한 무대에 올리려다 보니 불만들도 있었다. 그러나 두 지휘자의 열정으로 두 단체는 서로 만나 연습을 했고 마침내 지난 27일 밤 충주시 학생회관의 무대에 오른 것이다.
이날 지휘는 충주시 오케스트라의 이 교수가 맡았다. 청주에서 원정간 도립교향악단의 지휘자인 양 교수가 양보를 한 것이다. 이들은 청주에서 연주를 할 때는 양 교수가 지휘봉을 잡을 것이라고 했다. 게스트 출연자들도 감동적이었다. 첼리스트 홍소진 씨의 기품있는 연주와 국내 최고 수준인 테너 신동호 교수와 소프라노 서혜연 교수의 열정적인 무대는 함성의 박수를 받았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앙코르곡이 끝난 뒤였다. 관객들이 자리를 뜨지 않고 박수를 보내자 지휘자는 난처해 했다. 앙코르 곡을 1곡 밖에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관객들의 계속된 박수에 두 교향악단은 한 번도 맞춰보지 않은 곡을 즉석으로 연주하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곡이었다. 그리고 그 도시의 밤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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