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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어깨 -그리운 나의 스승님!-
선생님의 어깨 -그리운 나의 스승님!-
  • 동양일보
  • 승인 2013.09.02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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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옥<운호고 교사>
   나는 요즘도 종종 고향과 함께 중학교 시절을 꿈속에서 만난다. 집 뒤에는 나지막한 산이 넓은 품으로 마을을 감싸고 있었고, 집 앞으로는 너른 들판이 시원하게 펼쳐진 평화로운 곳이었다. 집을 나서면 개울물이 졸졸 흐르고 소나무 숲이 기품 있게 자리하고 있었다.
  논과 논 사이로 난 좁은 길을 걸으며 친구들과 도란도란 얘기꽃을 피우다보면 어느덧 학교가, 집이 눈앞에 보였다. 봄에는 한 아름 봄꽃이 손에 들려 있었고, 가을이면 낙엽을 주워 책갈피에 곱게 끼워 두었다가 마을이 온통 새 하얀 눈으로 덮일 즈음 곱게 잘 마른 그 낙엽을 꺼내 편지지에 붙이고, 사연과 함께 친구에게 보냈던 기억이 새롭다.
  그 시절 중학교 3학년을 코앞에 둔 어느 날, 수학 선생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순옥이는 다른 과목은 곧잘 하는데, 수학이 많이 부족하구나! 내가 3학년 때 수학을 가르치게 될 텐데, 앞으로 선생님이 이끌어 줄 테니 따르겠느냐’ 라고 말씀하셨다. 교무실 복도만 가도 가슴이 콩콩거렸던 시절, 나는 잔뜩 겁을 먹고 고개만 끄덕이다가, 모기만한 소리로 ‘저 선생님 기초가 부족한데도 잘 할 수 있을까요?’라고 말씀드렸더니, ‘3학년 과정을 하다가 필요하면 1,2학년 내용을 짚어주며 할 테니까 아무 걱정 말고 따라와라’ 라고 말씀하셨다.
 그땐 그저 한 번도 배워본 적 없는 그 선생님이 어렵기만 했고, 잔뜩 긴장만 했었다. 이제와 생각하니 참으로 고마우신 스승님이셨다. 3학년을 시작하기도 전에 당신이 맡아 가르치실 학급의 학생 성적을 분석하시고, 한 명 한 명 불러 그에 맞는 처방을 내려주셨던 것인데, 그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교사의 길을 걷고 있는 지금에서야 뼈저리게 느낀다. 늘 잡무에, 상담에, 교재 연구에, 수업에.. 등등의 이유를 들어 정작 꼭 필요한 많은 것들을 놓치기 마련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 시절 선생님은 학교 옆 사택에 사시면서 사모님과 함께 텃밭에 상추며, 고추, 토마토 등을 심고 가꾸셨다. 저녁 무렵엔 지게를 지고 학교 뒷산에 올라 가셔서 손수 나무를 해오시던 부지런한 분이셨다. 그 해 일 년 내내 방과 후에는 늘 수학 질문을 받아주셨고, 일요일에도 학교에 나와 혼자 수학 문제를 풀고 있으면, 언제 오셨는지 한 손에 토마토를 들고 가만히 웃고 서 계셨던 선생님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몇 해 전 고 1 담임을 할 때, 평소 성실하게 계획을 세워가며 꾸준히 공부하는 한 학생이 상담을 요청해 왔다.
 “선생님 저는 아무리 국어 공부를 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아 걱정이에요. 국어 성적만 오르면 전체 성적이 쑥 올라 갈 것 같은데 고민이에요.”
 불현듯 내 어린 시절의 그 수학 선생님이 생각났다. 가슴이 뭉클해졌다. 선생님은 내가 상담을 요청하기도 전에 날 부르셔서 훌륭한 처방전을 내려주셨고 1년간 묵묵히 치료해 주셨다. 지금 나에게 온 학생은 스스로 문제를 진단하고 처방전을 내려달라고 요청해 온 것이다. 그것이 성적이든 교우관계든 한 명, 한 명 더 관심을 갖고 그들의 고민을 먼저 알아차리지 못한 미안함과 함께 스스로 자신의 부족한 점을 진단하고 적극적으로 상담해 온 학생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그 학생과 상담 후 테스트를 해보니 언어영역 중 현대시 부분에서 많이 어려워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후 나도 그때의 스승님처럼 1년간 난이도를 조절해 가며, 문제를 제공하고 풀이 과정을 점검해 주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난 어느 날, 그 학생은 몰라보게 향상된 성적표를 가지고 달려왔다. 본인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열심히 따라주었던 것은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감사하다고만 했다. 정작 고마운 건 나였는데도 말이다. 참으로 행복한 순간이었다.
  해가 갈수록 교직에 대한 사명감과 학생에 대한 사랑이 식어가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면서, 당시 40이 넘으셨던 내 스승님의 어깨를 바라본다. 학원은 커녕 참고서도 문제집도 한 권 없이 오로지 선생님의 어깨에만 매달려 상급학교 진학을 준비하고 고민했던 그 산골의 학생들에게 선생님은 유일한 지팡이였고, 등불이었다. 얼마나 그 어깨가 무거우셨을까!
 “밤마다 너희들이 아른거려 잠을 못 이룬다.”
 고교 입시가 가까워진 어느 날 선생님께서 토로하셨다. 선생님의 그 말씀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그 해 나는 시내에 있는 상급 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어느 날인가 창문 두드리는 소리에 얼른 문을 열고 나가보니, 선생님께서 거짓말처럼 서 계셨다. 수학 문제집과 과자를 한 아름 안고서 환한 미소로 거기 서 계신 분이 분명 나의 스승님이셨다. 나는 왈칵 눈물이 솟았다.
 그때 그 나의 제자도 지금은 교대에 합격하여 사도의 길을 걷고자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청주에서 먼 곳에 가 있는 그에게 나도 한걸음에 달려가 꼭 안아주고 싶다.
  나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그리운 스승님이 계시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내 사랑하는 제자들이 있지 않은가!
 들녘에 황금물결이 너울거릴 즈음, 지금은 연로하신 스승님을 찾아뵙고, 사랑하는 제자에게 전화라도 한 통 걸어볼 일이다. 오늘 새벽엔 가을이 성큼  다가온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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