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자 / 수필가

   컴퓨터 앞에 앉기가 겁이 난다. 아니, 겁이 난다기 보다 분노가 치민다. 이런 못된 짓을 하는 인간이 내 옆에 있다면 멱살이라도 잡고 ‘왜 그러느냐? 나한테 무슨 억하심정으로 이러느냐?’고 따져 묻고 싶다. 하지만 그런 인간쓰레기들의 실체가 보이지 않으니 문제다.
  며칠 전부터 내가 이용하는 다음(daum)을 열려면 생각지도 않은 화면이 턱 와서 붙는다. 영화나 음악을 무료로 다운 받으라고 꼬드기는 광고, 구두를 사라는 광고, 멋진 모델들이 갖가지 옷을 차려입고 예쁜 옷을 사라는 광고, 보험에 들으라는 광고들이다. 번번이 화면을 지우느라 애를 먹다보면 일을 할 수가 없다.
   한 밤중에 아들에게 전화를 건다. 바이러스에 오염된 것 같으니 컴퓨터를 껐다가 다시 켜보라, 알약을 자동시켜보라. 시키는 대로 이것저것 해 보지만 똑같은 상황의 반복이다. 화가 치밀다 못해 분통이 터진다. 화를 내 봤자 상대가 없으니 분풀이도 못하고 나만 손해다.
  주말에 내려온 아들이 컴퓨터와 몇 시간 씨름을 한 끝에 바이러스를 잡았다며 그제야 다음이 열렸다. 아들은 밤중에 돌아갔고 나는 휴-하고 한숨을 쉬며 작업을 서둘렀다.
  이튿날 새벽에 컴퓨터를 다시 열었다. 이건 또 뭔가. 다음 화면 앞에 ‘금융감독원’이라는 큼직한 화면이 가려져 있다. ‘공인인증서가 본 pc에 설치되었나요?’ ‘보안카드를 이용 중이신가요?’ 하는 질문이 큰 글씨로 쓰여 있다. 그 밑에는 ‘보안관련 인증절차를 받으시면 더욱 더 안전하게 인터넷뱅킹을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그럴 듯하다. 또 그 밑에는 몇 개의 은행 로고가 떠 있고 그 중에서 내가 거래하는 은행을 클릭하란다. ‘금융감독원’ 이라고는 하는데 이건 수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화면을 지워 버리려 애를 쓰지만 요지부동이다.
  고객 상담 번호를 찾아봤지만 없다. ‘그래, 너의 정체가 무엇인지 어디 한 번 보자’ 하는 심정으로 농협을 클릭했다. 농협 화면이 제대로 열렸다. 내 이름과 주민번호를 넣으란다. 이건 아닌데 싶었지만 ‘이미 내 주민번호 같은 건 유출 된지 오래일거라.’는 생각이 들어 시키는 대로 써 넣었다. 화면이 바뀌더니 이번에는 내 통장 번호와 비밀번호를 써 넣으란다.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농협의 고객 상담 번호를 찾았다. 우여곡절 끝에 여직원과 통화가 되었고 내 상황설명을 듣더니 ‘피싱’ 메일이라며 통장비밀번호를 넣었느냐고 다그쳐 묻는다. 넣지 않았다고 했더니 참말 다행이라며 전화 잘 해주었다는 것이다.
  세상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벼룩의 간을 내먹지. 몇 푼 안 되는 내 돈을 빼가겠다는 것인가. 하느님은 뭘 하고 계신 걸까? 이런 못된 인간들 벌을 주시지 않고 왜 살려두시는 걸까? ‘봉황의 깊은 뜻을 참새가 어찌 알리요,’ 일까? 하느님, 너무 하십니다. 귀신은 이런 쓰레기들 안 잡아가고 뭣들 하고 있는 걸까.
  다음(daum)은 안 열리니 네이버를 열었다 ‘금융감독원’이라고 쳤다. 왜 이렇게 사칭하는 것들을 그냥 두고만 보는 거냐고 호통을 쳐보리라고 말이다. 그런데 이건 또 뭔가. 피해사례가 떠있고 ‘금융감독원 피싱 화면을 지우는 방법‘이라는 내용이 떠있다. 순간 반갑다. 지시문을 보니 거의 영어로 되어 있었지만 그래도 내 힘으로 따라해 보려고 무진 애를 썼다.  쉽지 않아 결국 포기 하고 말았다. ‘알약’을 작동시켜도, “네이버 크리너’를 작동시켜도 소용이 없다.
  아들을 또 불러댔다. 금융감독원얘기를 했더니 아들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며 나를 나무란다. 평생에 처음 보는 모습이다. 주민번호를 왜 넣었느냐며 어찌 그리 어리석으냐고 한심스럽단다.
  “금융감독원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돼요? 다 긁어 갈 뻔 했잖아요.”
‘긁어’ 라는 말에 소름이 돋는다. 내 pc에 1급 비밀이 내장 되어 있을 리 없으니 분명히 몇 푼 안 되는 돈을 긁어 간다는 말인 것이다. 머쓱해진 나는 나도 모르게 “더러운 세상” 이라고 독백처럼 지껄인다.
  경찰청에 따르면 가짜 사이트로 유도하는 파밍은 올해 1~7월 1263건이 시도돼 피해액이 63억5000만원, 스마트폰에 악성코드를 심어 돈을 빼 가는 스미싱은 1~6월 1만8631건이 발생해 피해 규모가 37억8000만원에 이르렀다고 한다. 정상 금융 사이트에서 개인정보를 빼 가는 신종 메모리 해킹은 6~7월 112건이 발생해 6억9000만원의 피해를 끼쳤단다.
  사이버 금융사기수법이 교묘해져 개인이 주의해서 막을 수 있는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대통령님, 복지도 좋지만 우선 이런 잡쓰레기 같은 놈들부터 좀 잡아주실 수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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