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복(흥덕새마을금고 이사장)

 꺾일 줄 모르는 기세를 자랑하던 폭염이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고 아침저녁으론 제법 선선해졌다. 어느 샌가 한낮의 시끄러운 매미소리도 잦아들었다. 자연의 섭리는 참 신묘(神妙)하다. 한순간 약속이나 한 듯이 지독했던 더위도 물러가고 사위(四圍)도 조용해졌으니 말이다. 지구온난화 영향 때문인지 올 여름은 유난히 무더웠다. 연일 수은주가 30°를 넘나들고 계속된 열대야(熱帶夜)는 온갖 기록을 갈아치웠다. 영영 다른 계절이 오지 않을 것처럼 붉은 열기가 대지를 달구던 것이 어제였는데, 이제 여름의 끝인가 보다

 언제부터인가 땀으로 진득해진 여름이 싫어졌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더위에 시달리다보면 입맛도 잃고 하루 종일 무기력하게 늘어지는데 이런 모습이 내 자신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유달리 다른 사람보다 여름을 타는 체질(體質) 때문에 매년 겪는 여름이건만 홍역을 앓는 어린아이처럼 힘겹다.

 사람들은 더위를 피해서 산으로, 바다로, 떠난다. 같은 시기 같은 생각으로 떠나다 보니 세상 곳곳이 사람들로 넘쳐나 가도 가도 더 이상 편히 쉴 곳을 찾지 못한다. 아니 세상어디에도 인간이 편히 쉴 공간은 없는지 모른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생물학적으론 노화(老化)되는 것을 의미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세월의 편린(片鱗)속에 원숙(圓熟)해가는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눈앞에 다가오는 일상에 묻혀서 자신을 반추(反芻)해볼 여유가 없다. 그러니 변화를 눈치 채기 어렵다. 매일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가족이나 이웃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우연히 발견된 빛바랜 사진 한 장이나, 어느 날 꺼내본 일기장, 등에서 달라진 자신의 모습과, 그동안 무심히 지나쳐온 세월의 그림자를 마주하게 된다. 특히 오래된 사진은 과거의 흔적(痕迹)뿐 아니라 내면에 켜켜이 쌓여있던 삶의 궤적(軌跡) 같은, 그저 잊고 있었던 소소한 일상까지도 떠오르게 한다. 돌이켜 그때는 그렇게 하는 것이 최상인줄 알았는데, 금방 무슨 일이 날것처럼 절박했는데, 지금생각해보면 그리 대단한일도 아닌 것을 왜 그토록 힘들어했는지......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낯선 길을 떠난 여행자처럼 새로운 임사(臨事)를 체험하는 것이다. 모두들 처음 장거리를 뛰는 마라토너처럼 목표에 대한 의욕과 자신감으로 충만(充滿)하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젊음의 표상(表象)처럼 여겨졌던 열정(熱情)과 결기는 점차 자취를 감추고 끝내 도달하지 못할 것 같은 저마다의 불안감에 시달린다. 신체적(身體的)으로 여기저기서 전에 없었던 낯선 징후(徵候)들이 나타나고 종종 자신의 한계(限界)를 경험한다. 어느 때부터인가 몸과 맘이 따로 인 것을 느낀다. 그러함에도 순순히 인정하기 싫은 까닭은 왜일까.

 과거에 싫어했던 음식이 좋아진다거나 하고 싶지 않았던 일을 하는 등 그동안 알지 못했던 그 무엇이 자기 내면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음악·미술과 같은 예술 작품에서 드러나는 여백 같은 미완성.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가정이나 사회에서의 위치가 다르게 변해간다는 것이며, 더 많은 분량의 책임(責任)을 짊어져야한다는 뜻이다. 사회적 위치란 자기분수(自己分數)를 아는 것이다. 이를 들어 공자는 사십대를 ‘불혹’(不惑)이라했고 오십대를 ‘지천명’(知天命)이라했다. 세상과 하늘의 이치를 깨닫고 어떠한 일에도 미혹(迷惑)되거나 제약(制約)받지 않아 행동거지가 정돈된 자연인(自然人)이 돼가는 것이다.

 유한(有限)한 생을 살 수밖에 없는 인간의 숙명(宿命)은, 생과사의 경계에서 끊임없이 길흉화복(吉凶禍福)에 시달리기 마련일터, 그렇기 때문에 삶의 여정은 불안정(不安定)하다. 그러므로 외로우면 외로운 대로 성성한 솔잎을 이고 몇 백 년을 지나는 노송(老松)처럼 의연함을 잃지 않는 것이 나이 듦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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