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광섭 청주시문화재단 문화예술부장

올 여름은 유난히도 뜨겁고 질기며 고단했다. 몸도 마음도 혼미해져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그 방황의 틈새에 가을이 비집고 들어오고 있다. 가을 숲으로 달려가야 할 시간이 된 것이다. ‘숲’이라는 말을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보자. 그 어느 말보다도 마음이 아늑해지고 꿈결같은 아련한 추억이 떠오르지 않는가. 당장이라도 숲속으로 달려가고 싶은 생각에 설레고, 기억 속 어느 순간이 애틋하게 떠올라 물결치는 숲의 바다가 내 안에서 출렁이는 것 같지 않던가. 숲이 아늑하고 편안한 이유는 피톤치드가 주는 신선한 공기와 맑고 향기로운 기운 때문이기도 하지만, 누구나 그곳에서의 가슴 시린 기억을 하나씩 품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기억이 아니어도 좋다. 산길 들길 따라 바람처럼 들꽃처럼 뛰어다니던 시절의 추억도 있을 것이고, 가난하지만 순수한 열정으로 살았던 시절의 이야기도 있을 것이며, 짙푸른 녹음 속에서 하룻밤의 달콤한 추억을 쌓기도 했을 것이다. 그 날 밤 세상에서 가장 반짝이는 별을 보며 가슴 떨리는 사랑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던가. 아니, 저잣거리의 고단하고 막막한 삶에서 탈출하고 싶을 때 숲 속으로 달려가지 않았던가.
9월의 숲이 미치도록 아름다운 것도 이 때문이다. 햇살과 구름, 바람소리와 계곡의 쏟아지는 물소리가 크고 작은 나무들과 잎새들과 꽃잎들과 함께 바스락거리며 흙냄새 풀냄새 솔솔 향기롭다. 녹음으로 가득하던 것이 하나 둘 오방색 잎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나무들이 야위고 귀뚜라미 울음은 소슬하고 바람이 어깨만 스쳐도 눈물이 날 것 같다. 그래서 숲속에서 귀를 기울이면 ‘수굴~, 수굴~’ 소리가 난다. 숲의 또 다른 이름이다.
올 가을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고 싶다면 짙은 향기로 빛나고 은유의 풍경으로 사위어가는 숲속 여행을 하자. 그 곳에서 나만의 내밀함을 만들어보자. 문명으로부터 벗어나 삶의 여백을 만드는 숲속 여행. 가을은 우리 모두의 것, 사랑하는 사람의 것이다.
 



최민솔 (서양화가) 작, ‘식물원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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