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간의 양적완화를 회수하는 미국의 출구전략을 과연 한국이 견뎌낼 수 있을지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국의 금융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 단단한 방어력을 선보이고 있다.

경기 회복이 점차 가시화되는 가운데 외환보유액과 단기외채 비중, 경상수지 등 경제의 기초 체력이 2008년 금융위기와 다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5년간 선진국 양적완화 이후 넘쳐난 자금의 물결이 한국을 피해갔다는 사실도 호재다.

그럼에도 한국이 안전지대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신흥국 위기의 확산 가능성이 있는 데다 소규모 개방경제인 한국이 양적완화 회수라는 전세계적인 흐름 속에서 독야청청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경기회복 가시화 금융시장 '선방'

8일 현재 한국의 금융시장은 미국의 출구전략 시행에 따른 영향권에서 여타 국가보다 유독 강세를 보이고 있다.

선진국 양적완화 축소에 따른 일부 신흥국을 중심으로 자금 회수가 가시화되고 있지만 한국시장으로는 되레 자금이 유입되는 양상이다.

코스피지수는 신흥국 위기가 불거진 지난달 하순을 기해 강세로 돌아서 1950선을 훌쩍 넘어섰고 원·달러 환율도 달러당 1,100원선을 밑돌만큼 원화는 강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증시 및 통화가치 급락으로 요약되는 인도·인도네시아 등 동아시아 신흥국과 차별화된 흐름이다.

외국인들은 이달 들어서만 국내 주식시장에서 1조5천억원을 순매수했고 채권시장에서는 1천억원 가량 순매도했다.

이런 현상의 이면에는 점차 가시화되는 한국의 경기 회복세가 있다는 분석이 많다.

경기선행지수 순환변동치가 3월 이후 상승세를 유지하는 데다 소매판매액 지수가 2개월 연속 증가세를 보이는 등 국내 경기가 회복의 전조를 보이는 데다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수출도 완만한 개선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 "한국 경제가 전반적으로 부진하다"고 평가했던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이번달에는 "완만한 경기 개선을 시사하는 지표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고 평가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2분기에 1.1%로 9분기 만에 0%대를 탈출했으며 같은 기간 실질 국민총소득(GNI)은 전 분기보다 2.9% 늘어 2009년 2분기(4.8%)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한국이 5일 10억 달러 규모의 미국 달러화 표시 외평채 10년물을 사상 최저 금리로 발행한 것도 이런 흐름이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바뀐 기초체력…자본 유입액도 크지 않아

신흥국 위기 상황에서 한국이 선방하는 이유로 정부는 우선 달라진 기초체력을 거론하고 있다.

올해 7월말 기준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사상 최고치인 3297억달러를 기록 중이다.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외채 비중은 6월말 기준 36.6%로 금융위기가 발생했던 2008년 말의 74.5%의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경상수지는 지난 7월까지 18개월 연속 흑자로 정부 목표치인 올해 380억달러를 달성할 가능성이 커졌다.

총외채에서 단기외채가 차지하는 비중도 6월말 기준 29.1%로 2008년말의 47.2%와 상당한 격차를 보이고 있다.

선진국 양적완화 자금이 유입 규모가 크지 않았다는 점도 현재로선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인도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국가의 경우 선진국의 양적 완화 자금이 대거 들어왔다가 다시 빠져나가면서 혼란을 겪고 있다.

2008년 1월부터 2013년 7월까지 외국인이 한국 증시에서 순매수한 금액은 3370억원에 불과했다. 이는 한국증시의 시가총액인 1242조원에 비하면 매우 미미한 금액이다.

한국이 8분기 연속 0%대 성장률을 기록하는 등 경기 침체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면서 선진국의 자금이 들어오지 않은 것이 현재 국면에서는 들어온 돈이 없으니 나갈 돈도 없는 일종의 호재로 작용하는 것이다.'

●상대적 양호한 여건…"안전지대 아니다"

한국이 현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선방하고 있지만 선진국의 출구전략에서 안전지대에 들어 있는 것은 아니라는 분석이 많다.

대외 변수 중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인도와 인도네시아 등 국가를 주축으로 진행되는 신흥국 위기가 태국이나 말레이시아 등 인접국으로 확산하는 것이다.

한국의 대(對) 인도 및 인도네시아 수출 비중은 2.2%, 2.5%에 불과해 큰 영향이 없지만 관련된 나라가 늘어나면 상황은 달라진다. 재정건전성이 떨어지는 나라를 중심으로 도미노처럼 붕괴하는 현상이 벌어진다면 한국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중동 정세 불안에 따른 유가 상승, 일본의 아베노믹스, 중국 경제의 경착륙 가능성 등도 한국 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 중 하나다.

내재적인 부분에서는 민간의 경제 활력이 가장 큰 변수다. 상반기에 경기 회복세가 다소나마 감지됐지만 이는 정부의 재정지출에 따른 결과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민간 부문에서 본격적인 투자·고용에 나서주지 않으면 하반기에 3%대 성장률을 달성하려는 정부의 목표도 물거품이 될 수 있다.

위험수준으로 성장한 가계부채와 사실상 정부 부채로 볼 수 있는 공기업 부채 역시 한국경제의 건전성을 위협하고 있다.

LG경제연구원 이근태 연구위원은 "미국의 출구전략을 한국이 견뎌낼 가능성이 크다"면서 "다만 신흥국 위기가 증폭돼 태국·말레이시아 등으로 확대되면 한국 역시 영향권에 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여러 여건으로 볼 때 한국이 미국의 출구전략에 따른 영향권에서 상대적으로 벗어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안전지대라고 보지는 않는다"면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위기관리계획을 재점검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