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일(극동대학교 언론홍보학과 교수)

  2년 전 MBC에서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았다. 자신만의 개성과 탁월한 가창력으로 아성을 이룬 가수들의 무대를 평가하여 꼴찌는 탈락시키겠다는 발상 자체가 발칙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평가에 참여한 청중들은 이들의 노래실력이 아니라 자신들이 받은 감동의 순위를 표현한 것일 뿐이다. 이를 알기에 가수들은 무대에 설 때마다 최선을 다했고 청중들도 아낌없는 박수갈채를 보냈던 것이다. 대중들의 기억 속에 잊혀져버린 가수들은 물론 숨어있던 실력자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프로그램의 인기도 올라갔다. 
  이후 다른 채널에서도 유사한 프로그램이 속속 등장했다. KBS2의 ‘불후의 명곡’은 초기에는 아류작으로 평가받았지만 나름의 개성을 갖고 지금까지도 꾸준히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종편채널 jTBC에서 방송한 ‘히든싱어’는 오로지 귀로만 진짜 가수와 모창자를 구별하는 독특한 포맷을 선보였다. 최근 파일럿으로 방송된 SBS ‘슈퍼매치’는 선배와 후배가수들이 짝을 지어 노래경연을 펼쳐 듀엣판 나가수로 불렸다. 이 프로그램들은 재미를 위해 다양한 평가장치를 가미했지만 그 본질은 누구도 평가할 수 없는 ‘노래의 감동과 즐거움’을 주는 데 있다.
  지난 8월 30일 첫 방송을 시작한 케이블채널 tvN의 ‘퍼펙트싱어VS’ 역시 유사한 노래경연 프로그램이지만 더 발칙해졌다. 프로그램의 기본 포맷은 기성 가수들로 구성된 가수군단과 가수가 아닌 이들로 이루어진 드림싱어로 나누어 1:1 노래대결을 벌이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들의 노래실력을 평가하는데 전문 심사위원이나 청중평가단이 아니라 기계가 동원된다. V스캐너라 불리는 이 기계는 음정과 박자의 정확성은 물론 가수가 가진 노래 스킬까지 체크할 수 있다고 한다. 음을 자연스럽게 이어 부르는 올림음과 내림음, 음의 처음을 강하게 시작하는 강조음, 목소리를 자연스럽게 떠는 바이브레이션, 음을 적당히 분배하여 화려하게 포장하는 꾸밈음까지 측정된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기술적으로는 물론 예술적으로도 원곡을 얼마나 완벽하고 충실하게 재현하는가를 평가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계가 아무리 정밀해도 노래하는 사람이 가진 고유의 음색이나 개성, 노래할 때의 애드리브를 측정할 수는 없다. 더욱이 무대에서 가장 중요한 청중들의 감동을 평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다보니 예상과는 다른 반전이 속출하고 청중의 반응과 다른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이 때문에 불편해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사실 이 프로그램의 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노래실력을 평가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발칙한 것이라면 차라리 컴퓨터 게임하듯이 기계에 맡기는 것이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속 편할 듯싶다. 그러니 가수 박완규가 개그맨 이동윤과 배우 류태준에게 충격의 2연패를 당하고서도 “나를 은퇴시킬 셈이냐”는 농담을 던질 수 있었던 것이다.
  기계로 측정할 수 없는 감동의 무대도 계속 되었다. 첫 방송에서 ‘나 가거든’을 부른 팝페라 가수 이사벨 조는 조수미 못지않은 풍부한 감정과 청아한 음색으로 감동을 선사했다. ‘칠갑산’을 부른 국악인 고금성 또한 노래와 하나가 된 듯한 절절한 가창력으로 깊은 여운을 남겼다. ‘거위의 꿈’을 성악 버전으로 소화한 바리톤 서정학은 점수는 제일 낮았지만 무대를 즐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2회에 출연한 개그우먼 김미려의 놀라운 가창력은 청중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뮤지컬 배우 최우리는 춤까지 추면서 한 편의 뮤지컬 같은 즐거운 무대를 펼쳤지만 그 때문에 음정이 불안해져 점수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V스캐너는 이들의 노래에 야박한 점수를 주었지만 이들이 선사한 무대는 청중은 물론 시청자들에게도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과 감동을 주었다. 제 아무리 발칙한 경연 프로그램이라도 노래가 주는 감동과 즐거움에 변함이 없다면 제몫을 다한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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