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팔(논설위원, 소설가)

 솔갯골을 오르는 창길 씨가 헉헉댄다. 일흔일곱 나이 탓만은 아니다. 골짜기 비탈길이 가파르다. 젊었을 적 나뭇짐을 지고 내려오려면 무릎이 부들부들 떨리고 경사면이 지게목발을 치받아 몇 번이나 앞으로 고꾸라졌는지 모른다. 그 팔부능선 쯤에 남향받이 묘소들이 마치 공동묘지 방불하게 들어차 있다. 동한네 종산이다. 동한네 문중의 선대들이 대대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창길 씨는 지금 여기를 오르고 있다. 어젯저녁에 전화가 왔다. “형님, 나 동한이예요, 무고하시지요?” “아이구 그럼, 그럼, 벌초 땜에 또 전화했구먼. 걱정하지 마 그렇지 않아도 내일 하려던 참여. 그리구 인제 돈은 부치지 말아 이게 어디 돈 보고 하는 것인감 ” “별 말씀을, 그건 그렇구요 이번엔 어떻게든지 한번 내려가 볼려고 그래요. 그 동안 형님한테만 맽겨놓구 너무 무심했으니 자손된 도리도 아니고 형님하테 면목두 없구 해서요.” “아이구, 별 말을 다 하는구먼. 그래 몸은 좀 좋아진겨?” “풍이라는 게 어디 좀체로 나아지는 병인가요. 금방 죽지도 않으면서 질질 끄는 거라잖아요. 그래서 여태까지 살아 있습니다. 형님은 얼마나 좋으셔 저보다 세 살이나 위이시면서 정정하시니.” “나도 골골햐. 그렇지만 자네 부모님 묘소 벌초할 기력은 있으니께 그건 걱정 마 하여튼 한번 내려온다니 반갑네 그때 보세.” 창길 씬 동한이가 몸이 성치 않은 이후 4년 동안 동한이 부모묘소 벌초를 해 온다. 그는 낫 두 자루를 들고 올라간다. 예초기가 있지만 짊어지고 갈 기운이 부친다. 그도 그렇지만 자신에게는 존귀한 어르신인데 윙윙 벌떼 소리 나는 예초기는 아무래도 예의가 아니란 생각에서다. 그는 어려서 동한의 선친께 천자문을 배웠다. 하여 그가 초등학교의 학력이지만 살아오면서 한자 섞어 편지 쓰고 남들과의 대화에도 문자 섞어 표현할 수 있게 된 것도 다 그 덕택인 것이다. 마침내 묘소에 도착했다. 여기가 바로 그 묘소다. 4년 전 동한이가, “솔갯골 우리 부모님산소 아시지요?” 했을 때, “여보게, 내가 누군가. 아무리 칠십 넘은 늙은이지만 선생님 모신지 수십 년 넘었기로서니 몰라보겠는가 걱정 말게 내 힘껏은 마음 써서 깎아 드릴 테니.” 했던 일이 새롭다. 1년 동안 잔디가 무성히도 자랐다. 하지만 잡풀 하나 없다. 해마다 한식 때 사초하고 추석맞이로 벌초한 까닭이다. 벌써 주위의 몇 기는 벌초를 한 게 보인다. 그런데 바로 옆 묘소는 올해도 잡초가 무성한 채로다. 해마다 방치된 상태로 있는 걸 보면 아무래도 자손 끊긴 묵은 묘 같다. 보기가 싫고 딱하다. 창길 씨는, 오늘은 이것까지 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는 낫질을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낫질을 하다 보면 옛날 동한과의 일이 생각나곤 한다. 이에 얽혀서 동순이도 애처롭게 떠오른다. 동순인 동현이 두 살 위 누나다. 그러니까 창길 씨보다 한 살 아래다. 17살 창길인 동순일 마음에 두고 있었다. 그걸 동한이도 눈치 채고 있었다. “동한아, 이거 누나 갖다 줘!” 별 것도 아닌 것을 생기기만 하면 챙겼다. “야, 니 누나가 왜 안 보이냐 어디 갔냐?” 하루만 안 보여도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 뿐이 아니고 노골적 표현도 했다. 솔갯골로 둘이 나무를 하러 가면 자기 것을 먼저 후딱 지게에 짊어 놓고는 아직 못 채운 동한의 지게를 한 짐 잔뜩 채워주는 것이다. “형, 고마워!” 하면, “너, 집에 가면 내가 이렇게 해줬다구 니 누나한테 꼭 말해, 알겠지!” 그 속내를 아는 동한인, “형이 하라는 대로 누나한테 말했어. 오늘두 또 누나한테 그렇게 말할까?”하고 속 보이게 수를 쓰곤 했다. 그 동순이가 열여섯을 못 넘기고 죽었다. 뇌염이라고 했다. 그 후 창길이 군에 있을 때 동한인 서울로 유학을 갔다. 그게 지금까지 두 사람을 갈라놓았다.

  창길 씨는  마음먹은 대로 옆의 묘까지 말끔하게 깎았다. 누군진 몰라도 시원해할 것이다.

 그리고 이틀 후, 동한이가 왔다. “아니 금방 왔네?” “금방이 뭐예요 벼르고 별러서 이제야 왔는데.” 창길 씨는 동한일 부축하고 솔갯골로 올라갔다. “아이구, 말끔하게 해 놓셨네.” 그리곤 주위를 두루두루 살피더니 준비해 온 주과포를 봉분 앞에 차려 놓는다. 그런데 아차, 옆의 묘소다. 창길 씨는 손을 홰홰 저었다. “여보게 오랜만에 오더니 헷갈리나 보네 거기 맞나, 잘 살펴봐!” “이 자리가 맞습니다. 보세요, 이렇게 제가 박아 놓은 표석이 바로 제 뒤에 있잖아요. 저는 항상 이 표석을 뒤로하고 절을 올립니다. 아직 정신은 말짱합니다.”

 순간 창길 씨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그렇기는 하면서도 일변 가슴을 쓸어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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