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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만남
어떤 만남
  • 동양일보
  • 승인 2013.09.11 22: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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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은순(문학평론가)

 제천에서 호텔업을 시작한지 세 달이 다 돼 간다. 첫 달은 일머리를 파악하느라 제천에 머무는 날이 많았고 전혀 모르는 분야인지라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직원들과 소통하는 법이나 고객들의 성향을 파악하는 일, 제천의 지역적인 특성을 헤아리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숙박업은 여름 휴가철이 성수기라 호텔을 인수하자마자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다. 하루하루 시행착오를 줄이며 일이 돌아가는 걸 파악하게 되었고 서서히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일을 도와주는 후배가 워낙 꼼꼼하게 일처리를 잘 해주었고 모르는 일이 생기면 둘이 생각을 모아 풀어나갔다.

 차츰 자리가 잡히며 일주일에 며칠만 제천서 머물러도 될 정도가 되었다. 그동안은 일에 쫓겨 정신을 못 차리다 다소 여유가 생기자 차분히 현실을 돌아볼 기회를 갖게 되었다. 내가 어쩌다 제천서 호텔업을 하게 되었나 하는 의문이 새삼스레 고개를 들었고 제천이 나와 전생에 어떤 인연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혼자 제천에 있을 때면 근처에 있는 의림지를 어김없이 찾곤 하는데 산책도 하고 생각도 정리하며 혼자 어슬렁거리기에 딱 좋은 곳이기 때문이다. 호텔서 차로 십분 정도면 갈 수 있고 적당히 사람들도 있고 잔잔한 저수지 주위로 고즈넉한 풍경이 어우러져 간단한 산책을 하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

 그날도 혼자 의림지에 나와 산책을 하다 벤치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는데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초록빛 블라우스를 입은 멋쟁이 여인이었는데 이곳이 의림지 맞느냐고 했다. 노트북을 손에 든 걸로 보아 평범한 가정주부 같지는 않았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녀는 제천에 힐링센터를 열 준비를 하고 있는 제법 큰 회사의 CEO였다.

 삼십 년 넘게 외국생활을 했고 편찮으신 노부모를 모시다 대체의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 일을 계기로 팔년간 물밑작업을 하며 준비를 해 왔노라고 했다. 자연풍광이 수려하고 약초골로 이름이 나있는 곳이라 제천을 사업장으로 택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지 않아도 외국에서 오는 의료관광팀들이 머물수 있는 숙박업소가 필요하던 터였는데 내가 호텔을 운영하고 있다고 하자 잘 됐다며 도움을 청했다.

  그녀는 현대인들이 고질적으로 앓고 있는 당뇨병이며 아토피며 완치가 어려운 분야에 그동안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고 했다. 세계적인 전문가들을 찾아나서 도움을 청했고 양방과 한방을 아우르며 좋은 치료법을 찾아 나섰다고 했다. 노트북과 메모지를 동원해 다양한 약품과 식품, 치료법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했다. 문득 전날 밤 꿈이 생각났다. 난데없이 내가 전혀 낯선 곳에서 몸에 좋다는 별의별 희귀한 식품들을 먹는 꿈을 꿔 왜 이런 꿈을 꾸었을까 싶었는데 오늘 그녀와의 만남이 있으려는 징조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낯가림을 많이 한다는 그녀는 내가 참 편하다며 처음 만난 이를 만나 이렇게 진지하게 많은 이야기를 나눈 적이 그동안 한 번도 없었다고 참 묘한 인연이라고 했다. 나 또한 그녀가 부담이 없었고 오랫동안 알던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녀와 나는 비슷한 점이 많았다. 외국생활을 하다 같은 해에 들어왔다는 점, 늘 독경을 하거나 법문을 읽는 다는 점, 늘 뭔가를 끄적인다는 점 등이 그랬다. 마침 의림지 근처에 약초 한정식을 하는 곳이 있어 그녀에게 점심 식사를 함께 하자고 했다. 처음 만난 이와 오랜 시간을 보내며 나 또한 이상한 인연도 있구나 싶었다.

  서울로 돌아간 그녀는 몇 차례 이메일을 보내왔고 며칠 뒤 청주에서 볼일이 있는데 만나자는 기별을 해왔다. 이번에 그녀는 직원과 함께였고 점심 식사를 하고 나자 내가 속한 갤러리 구경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녀 또한 미술 애호가였고 미술품이 필요하다고 했다. 갤러리에서 미술품을 둘러보며 대화를 나누다 보니 미술에 대해 예사롭지 않은 안목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회사에서 만든 무공해 비누를 선물로 주었고 불면증이 있는 나를 위해 아로마향과 건강보조제를 보내주겠다고 했다. 제천 의림지에서 우연히 만나 친구가 된 그녀 덕에 요즘 난 성인병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새로운 만남으로 삶의 다양성을 거듭 실감하게 되고 만남은 삶의 축제라는 생각을 새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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