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길재(판화가) 작, ‘나무’



행복을 위한 일탈

이덕자

 

새벽 5시, 아직 어둠이 거치지 않은 것을 보니 가을이 가까이 오고 있나보다. 끈질기게 기승을 부리며 버티던 더위도 흐르는 절기 앞에서는 어쩌지 못하는지 새벽 공기가 제법 서늘하다. 상쾌하고 풍요로운 가을이 아침 햇살에 서서히 열리는 동안 나는 마당에 서서 잠시 깊은 호흡으로 숨을 고르며 이 가을, 달콤한 일탈을 꿈꾼다.

주부로서 쉼 없이 반복되는 일상들, 달력에는 이미 많은 날들이 선약과 계획으로 빼곡하게 내 발목을 잡고 있다. 그렇다고 빈 날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찾아낼 수 있는 잠깐의 여유, 그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자고 욕심을 부려본다.

금수강산 곳곳에서 펼쳐지는 풍성한 문화행사들…. 가을엔 온 나라 안이 축제장 아니던가. 서울도 2시간이면 가는데 멋진 뮤지컬, 연극 공연, 명화전시회…. 조금 사치스러운들 어떠랴. 간절히 원한다면 또 불가능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거기에 하루쯤 훌쩍 길 여행이라도 떠날 수 있다면 그 또한 얼마나 가슴 뛰는 즐거움이겠는가.

세월은 빨리 가기도 하고 느리게 가기도 한다. 같은 24시간이라 해도 어떤 날은 길고, 어떤 날은 짧다. 생각해보면 추억이 될 만한 일이 많았던 날과 아무 것도 기억에 남는 일이 없었던 날의 차이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가을이 시작되는 문턱에 서서 푸르게 맑아지는 하늘을 보며 행복한 추억을 만들기 위해 일탈을 모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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