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선(동양일보 상임이사)

아침신문에서 전 세계 억만장자 숫자가 처음으로 2000명을 넘어섰다는 기사를 보았다.

미국의 경제전문방송인 CNBC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1200∼1600명 정도로 추정됐던 억만장자 숫자가 올해 2000명을 넘었고, 이들이 보유한 재산은 프랑스와 독일의 국내총생산(GDP)을 합친 것보다 많다고 했다.

백만장자니 억만장자니 영화 속 얘기처럼 쉽게 말하지만 도대체 억만장자라면 얼마나 많은 재산을 가진 사람일까?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헤아리기 힘들 만큼 많은 재산을 가진 사람'이라고 설명돼 있다.

어차피 부자들에겐 흥미가 없어서 큰 관심이 가지 않는 기사이고, 마침 요즘 인터넷으로 떠도는 '중산층의 가준'이라는 글이 생각나 함께 공유해 보자는 의미에서 몇줄 옮긴다.

여러 곳을 떠돌며 정리된 글이겠지만, 나라별로 중산층의 기준이 다르단다.

직장인 대상 설문결과 한국의 중산층기준은 △부채없는 아파트 30평 이상 소유 △월급여 500만원 이상 △자동차는 2000CC급 중형차 소유 △예금액 잔고 1 억원 이상 보유 △해외여행 1년에 한차례 이상 다닐 것이 기준이고, 프랑스 퐁피두 대통령은 ‘삶의 질’에서 정한 프랑스 중산층의 기준으로 △외국어를 하나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하고 △직접 즐기는 스포츠가 있어야 하고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어야 하며 △남들과는 다른 맛을 낼 수 있는 요리를 만들 수 있어야 하고 △'공분' 에 의연히 참여할 것과 △약자를 도우며 봉사활동을 꾸준히 할 것을 주문한다.

영국의 중산층 기준도 있다. 옥스포드 대에서 제시한 중산층 기준이라는데, △페어플레이를 할 것 △자신의 주장과 신념을 가질 것 △독선적으로 행동하지 말 것 △약자를 두둔하고 강자에 대응할 것 △불의, 불평, 불법에 의연히 대처할 것. 그리고 미국의 공립학교에서 가르치는 중산층의 기준은 △자신의 주장에 떳떳하고 △사회적인 약자를 도와야 하며 △부정과 불법에 저항해야 하며 △테이블 위에 정기적으로 받아보는 비평지가 놓여있을 것을 교육한다. 

이 글을 보는 이들의 반응은 대략 두 가지로 나뉜다. 외국은 중산층의 기준을 정신적인 가치로 보고 있는 것에 비해 왜 우리는 유독 물질의 소유로 그 기준을 삼는지에 대한 반성과, 다른 하나는 중산층의 산(産)이라는 글자 자체가 재산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므로 중산층은 유산층과 무산층의 사이에 위치한다는 것. 따라서 '주택보유, 월 급여, 자동차, 자산'의 기준이 틀리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그럴까? 정신적인 가치를 제외하고 물질의 기준으로만 판단한다 해도 우리의 중산층 기준은 과연 합당한 것일까?

과거를 돌아보면 선조들이 살던 조선시대에도 중산층의 기준은 있었다.

그 기준은 △두어 칸 집에 두어 이랑 전답이 있고 겨울솜옷과 여름베옷이 각 두어벌 있을 것 △서적 한 시렁, 거문고 한 벌, 햇빛 쬘 마루 하나, 차 다릴 화로 하나, 늙은 몸 부축할 지팡이 하나, 봄 경치 찾아다닐 나귀 한 마리 △의리를 지키고 도의를 어기지 않으며 나라의 어려운 일에 바른말 하고 사는 것. 그것이 기준이었다.

지금의 기준보다 훨씬 융통성이 있고 정신적인 가치와 멋도 아는 선조들이었다.

 재산은 몸을 뉘일 집과 전답, 여름 겨울옷만 있으면 된다는 것. 그런데 그 기준의 표현이 멋스럽다. 집은 두어 칸짜리면 되고, 전답은 두어 이랑, 그리고 옷은 겨우 두어 벌이면 정도면 충분한 것이다. 30평 아파트에 2000CC 자동차, 1억원 예금... 처럼 가이드라인을 숫자로 지정하지 않았다. 게다가 서적 한 시렁, 햇빛 쬘 마루 하나, 차 다릴 화로 하나...그 마음에 미소가 절로 난다. 그 뿐인가. 의리를 지키고 도의를 어기지 않으며 바른말 하고 사는 것이 중산층의 기준 했다. 참으로 외국의 그 많은 중산층의 기준 모두를 합쳐도 이만한 기준이 있겠는가. 검소하면서도 풍류를 알고 사람답게 사는 도리와 가치를 아는 사람. 그것이 바로 제대로 된 진짜 중산층인 것이다.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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