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복(흥덕새마을금고 이사장)

 

 

나는 산을 좋아한다. 한동안 산악회에 가입하여 주말마다 이산저산을 누비고 다녔다. 같은 산일지라도 어느 계절에 오르느냐, 어느 방향이냐에 따라 만나는 풍경은 사뭇 다르다. 가파른 산길을 한걸음 두걸음 오르다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은 턱까지 차고 비 오듯 땀이 쏟아진다. 금세 온몸이 땀으로 흥건해진다. 내가 남들보다 땀을 많이 흘리는 체질 탓이다.

누구나 처음엔 가슴이 터질 듯 답답하고 발걸음도 무겁지만 점차 익숙해지기 시작한다. 몸이란 항상성이 있어서 예전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성질이 있는 반면, 낯선 외부영향에 적절히 적응하려는 성질도 함께 가지고 있다. 마라토너들이 레이스를 시작하고 몸이 적응하기 전까지가 힘든 것처럼 산행 또한 마찬가지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잠자고 있던 우리 몸이 깨어나 반응하기 시작한다. 닫혀있던 감각기관이 열리는 듯, 풋풋한 산 냄새와 함께 시원한 청량감이 슬슬 밀려온다. 짊어진 배낭 무게에 더해져 전해지는 가쁜 호흡마저도 기분이 좋다. 바람까지 불어준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한주일 내내 각종 잡다한 스트레스로 억눌려 무거워진 머리가 더 할 수 없이 상쾌해진다. 가슴은 뜨겁고 머리는 차가워진다고 할까.

누구나 경험하는 것이지만 정상에서 느끼는 시원한 해방감이 자꾸 산을 생각나게 한다. 또 몸에 몹쓸 병이 들거나 아픈 사람들은 구원의 희망으로 산을 떠올린다. 그들 대부분은 무작정 산으로 달려간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산은 결코 준비하지 않고 올라선 안 된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산을 너무 만만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체력을 과신한 나머지 만용을 부린다. 산이 항상 같은 얼굴로 머물러 있는 줄 아는 까닭이다. 천만의 말씀이다. 산은 말없이 교만한 인간들에게 항상 겸손 하라는 따끔한 가르침을 준다. 이것을 깨닫기 까지는 여러 차례 산을 경험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 인간은 문명발달에 따른 물질적 풍요는 얻었지만 정서적 메마름은 훨씬 커졌다.

미국의 저명한 의사 ‘비어드’에 따르면 인간 삶의 경쟁속도가 과거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빨라져 ‘신경쇠약’이라는 문화병을 양산 시켰으며, 사회부적응 현상이 만연해졌다고 한다.

인간은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상의 그늘에서, 그 어느 것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단절을 경험한다. 단절은 세대간, 계층간, 가족 간에도 일어난다. 섬처럼 자기만의 세상에 갇혀 독립적 자아를 상실하고 어느 부류에도 섞이지 못하는 이방인이 돼가는 것이다. 인간의 소외는 많은 사회적 문제를 야기한다. 편리함에 매몰되어 편안함이 실종돼 여유 없이 늘 조급하다. 차를 타고가도 급하고, 밥을 먹어도 급하다.

세상역시 온통 빠른 것투성이다. 하루 종일 TV나 라디오를 통하여 반복되는 광고카피도 빠름이다. 오죽 빠르게 돌아가면 이처럼 빠름이라는 말이 유행할까. 불그레하게 상기돼 있는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맨 모습이 드러난다. 인간은 불안한 것이다. 어찌 보면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불안한 것인지도 모른다. 불안의 실체는 다분히 심리적이다. 누군가 옆에 있어도 불안하고 없어도 불안하다. 불투명한 앞날이 불안하고, 복잡다단한 사회가 불안하다. 한마디로 각다분한 세상자체가 본질적 불안에 눌려있는 것이다. 그런 연유로 사람들은 끊임없이 불안한 현실을 벗어나려 일탈을 꿈꾼다.

 


이러한 현대병을 치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길을 걷거나 산을 오르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은 너도나도 길을 찾아다니고 산을 오르느라 법석을 떤다. 그러다보니 지방자치단체도 경쟁적으로 올래길이니 둘레길이니 하는 길 만들기에 팔을 걷어붙였다. 가는 곳마다 공사가 한창이다. 개발과 보존이 종이 한 장 차이라지만 이처럼 무분별하게 멀쩡한 산을 끊고 파헤쳐도 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산이란 그렇게 우리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니 해서는 안 된다. 산은 먼 미래 후손들의 자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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