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논설위원, 청주대 명예교수)

정치권의 도를 넘은 정당이기주의와 고위공직자의 부적절한 행보로 세상이 시끄럽다. 현직 국회의원이 내란 음모 혐의로 구속되어 수사를 받고, 정국타개를 위해 개최된 국정최고책임자와 여야대표간의 3자 회담 결과를 놓고 여야가 대치상태를 이어가는가 하면 제일 야당이 장외투쟁을 계속한 채 국회에 등원하지 않음으로써 입법부의 핵심기능인 국정감사와 결산 승인 및 예산심의 등이 표류되고 있다. 그리고 가장 도덕적이어야 할 법질서 확립의 사령탑인 검찰총장의 혼외아들 유무 및 사표제출 문제로 정가와 공직계가 술렁이고 있다. 본인은 뼛속까지 평화주의자이고 사법기관에서 떳떳하고 당당하게 진실을 밝히겠다고 호언장담한 내란 음모 혐의자가 국정원과 검찰에서 묵비(?秘)로 일관하는 것이나, 제18대 대선시 국정원의 댓글에 대하여 현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한 것이 수용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국회가 아닌 장외에서 투쟁을 벌이는 야당대표의 처신이나, 정의의 최고파수꾼으로서 누구보다 정정당당하여야 할 검찰의 수장이 자신의 도덕적 문제에 대하여 한 치의 거짓도 없이 진실을 밝히는 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인데도 법무부 감찰지시 발표 1시간여 만에 사표를 제출하고 등청을 하지 않고 있으니 이를 어찌 정상적인 국정책임자들의 모습이라 할 수 있겠는가.  정치권과 고위공직자의 이와 같은 탈궤도적인 행각들을 보면서 국민들은 아연실색하고 있다. 실망을 넘어 허탈해 하고 있다. 국리민복을 위하여 노심초사하여야 할 국정책임자들을 거꾸로 국민이 걱정하여야 하는 정반대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과 고위공직자들은 국민들의 이러한 실망과 걱정 등이 눈과 귀에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가보다. 때문에 국민들은 이구동성으로 정치권과 공직계가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과 공직계가 어쩌다가 이렇게 눈이 멀고 무감각해졌으며 국민무시의 행태를 갖게 되었단 말인가. 이에 대하여는 정부가 산업의 고도화에 치중한 반면 정신문화의 창달을 소홀히 함으로써 국민들로 하여금 물질만능주의에 빠지게 하였고, 교육계가 인성이나 정신의 비옥화보다는 지식과 기술 습득에 집중함으로써 교육이 수단적 개념으로 변질되게 하는 등을 비롯하여 여러 측면에서 고찰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가나 사회는 물론 국민들이 본질을 중시하는 철학과 얼마나 친하게 생활하였는가의 여부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철학이란 지(知와 智)를 사랑한다는 뜻의 애지를 세계관으로 하는 용어로 모든 영역에 걸쳐 사물의 근본원리를 추구하는 지적인 활동을 말한다. 이러한 철학은 진리 및 본질과 맥을 같이 한다. 진리는 사실과 친한 것으로 언제나 또는 어떠한 경우라도 타당하다고 인정되는 인식의 내용을 말하고, 본질은 존재하는 그 자체 또는 사물의 필연적이고 근본적인 속성을 말한다. 그러니까 진리는 철학의, 본질은 진리의 구성요소가 되는 관계인 것이다. 그러므로 철학이 철학으로서의 지위를 가질 수 있기 위해서는 먼저 본질을 구성요소로 하는 진리로서의 요건을 갖춰야한다. 진리를 생명으로 하는 철학을 인간의 정신세계와 행동양식에 대입하면 철학은 인간으로 하여금 어떤 현상이나 사안을 판단하고 실행함에 있어서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지식이나 판단을 뜻하는 상식(常識)과, 옳고 바른 마음을 뜻하는 양심(良心) 등을 기준으로 삼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쉽게 풀이할 수 있다. 원래 철학의 핵심 요소인 본질은 추상적인 것이어서 머리로 이해하거나 손으로 만질 수 있거나 가슴으로 느끼기가 어렵다. 그러나 철학의 핵심요소인 상식과 양심을 동원하여 머리를 대면 쉽게 이해가 되고, 손을 대면 분명하게 만져지며, 가슴을 대면 실체가 그대로 느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모든 현상이나 사안을 상식과 양심으로 판단하고 행동하여야 한다. 이를 철학적 접근 내지 생활이라 말할 수 있다. 철학적인 접근이나 생활은 이렇듯 쉽다. 그러나 인간들은 실생활에 이를 접목시키지 못하고 철학과 동떨어진 판단과 행동을 일삼는다. 그럼으로써 철학의 실종시대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정치권과 공직계가 철학적인 판단과 행동을 도외시하고 있다. 상식과 양심에 벗어난 행동을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위의 3대 사건 당사자들이 대표적인 예가 된다.

정치권과 공직계의 상식 및 양심의 일탈 행동은 인간의 존엄성을 스스로 방기하는 것이 된다. 그리고 자신과 국민에게 죄를 범하는 것이 된다. 상식과 양심을 언행의 지표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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