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팔(논설위원, 소설가)

 언덕 위에 자리 잡은 남향받이집이다. 철따라 꽃피고 새 모여드는 나무들이 집을 둘러싸고 있어 여름엔 아주 시원한 바람이 놀다 가는데 이건 외면하고 겨울엔 바람깨나 받는 바람받이라 얼마나 춥겠냐고 이집사람들을 안됐어 한다. 또 집 아래로는 왼쪽에 텃밭, 뒤쪽엔 텃논이 이어져 붙어 있는가 하면 오른쪽엔 소나무와 참나무 들이 빼곡하고 잡 수풀 우거져 있는 동산이 둘러쳐져 있어 그야말로 문전옥답, 풍치 수려함이 따로 없다 하겠으나 이런 것들은 다 젖혀두고 동네사람들은 동네에서 뚝 떨어져 있는 언덕진 산꼭대기로만 여기고 이집 이름을 ‘뫼봉집’으로 지어버렸다. 지금 이 뫼봉집엔 같은 72세의 신(신장실) 영감내외가 93세의 노모를 모시고 산다. 물론 애초부터 3식구는 아니다. 신 영감 부친은 2년 전 90세에 돌아가시고 2남4녀 여섯 자식들은 다 시집장가 가서 대처에 나가 살고 있어서다. 이걸 보고 이제야 동네사람들은 뫼봉집 터가 명당자리라 자손들이 모두 잘돼 나갔고, 뫼봉이 풍치 좋아 공기 맑고 바람 시원해서 신 영감내외가 그 나이에 건강하며 그의 선친 장수했고 노모 역시 장수하는 것 아니냐고 부러워한다.

 그런데 이 뫼봉이 요즘 좀 시끄럽다. ‘엄니, 엄니!’하는 소리가 아침, 점심, 저녁 끼니때를 맞춰서 목청을 올린다. 신 영감이 노모를 찾는 소리다. 노모가 귀가 어두워서 큰소리로 부르는 게 아니다. 노모의 귀는 아직도 깨알 굴러가는 소리도 듣는다. 하지만 밭고랑이나 논둑성이나. 숲속어딘가에는 노모가 계실 것이지만 시방같이 밭작물 장성하고 벼 포기 무성하고 수풀이 우거져 있을 땐 조그마한 노모의 체구가 이것들에 묻혀 보이질 않으니 사방에 대고 불러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엄니, 엄니!’ 소리에 반응이 있으면 ‘진지 잡수셔유!’ 소리가 뒤를 따른다. 그러니까 노모의 소재가 파악되었을 때다. 곧 ‘엄니, 엄니!’ 의 소리를 노모가 들으면, “그래, 그래!” 하고 모기소리만 하게라도 대답을 하든가, ‘나, 여기 있다’ 는 신호로 손을 흔들어 보일 때에야 ‘진지 잡수셔유!’ 소리가 후렴조로 따라 붙는다는 말이다. 이로 인해 아래 동네사람들은 이 소리가 아침에 들리면 아침끼니때가, 점심때 들리면 점심끼니때가, 저녁에 들리면 저녁끼니때가 됐다는 걸 절로 알게 돼서 삼시끼니때를 알려주는 알람시계가 따로 없어도 되었다.

 그러면 왜 신 영감은 이렇게 끼니때마다 소리 높여 노모를 찾아야 하는가? 노모가 새벽 일찍 눈만 뜨면 하루 종일 밖에 나가 일을 하기 때문이다. 농한기 농번기 따로 없이 밭에서 산다. 심고 매고 거두기는 물론 마당 잡초 뽑기 꽃가꾸기도 하고 심지어는 하우스 세우기 창고 짓기까지도 거든다. 식사라곤 밥 반 공기도 못 들고 채식으로 일관하면서다. 그래도 매년 초겨울에 한 번씩 보건소에서 독감예방주사를 맞는 것 외엔 막무가내로 약도 병원도 먹지 않고 가지 않는다. 그래서 인제 신 영감도 지쳤다. 어찌 할 도리 없이 당신 고집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 대신 찾아 부르지 않으면 종일이라도 밭에서 굶고 일만 하실 노모를 위해 자식 된 도리로 할 수 있는 일은 끼니를 거르지 않게 함으로써 노모의 건강을 도모해야겠다는 다짐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신 영감은, 끼니때가 되면 이렇게 소리를 높이면서 사람을 찾는 일은 노모가 먼저라는 걸 기억한다. 어린 시절, 삼시 중 저녁끼니때가 되면 엄마들은 황혼의 서녘하늘에 대고 자식들 이름을 소리 높여 불렀다. 그 중에 신장실이의 엄마도 있었다. ‘장실아, 장실아!’ 부르면 ‘알었어, 알었어!’ 로 답한다. 그러면 ‘빨리 와 전녁 먹어!’ 엄마의 재촉하는 소리가 높이 따라 붙는다. 그래도 장실인 엄마 말을 듣지 않는다. 재밌는 놀이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또 지체되는 만큼 엄마의 부름소리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이어진다. 하루는 장실이가 이웃마을 학교친구네 집에 갔다가 놀이에 빠져 거기서 저녁밥까지 얻어먹고 오게 되었다. 그때 어두컴컴한 속에서, ‘장실아, 장실아!’ 하는 엄마의 낮 익은 소리가 연거푸, 연거푸 들려왔다. 참으로 반갑고 기쁜 소리였다. “엄마, 나 여깄어!” “이것아, 저녁밥 먹어야지 워디 갔던겨?” 그랬다 그건 자식 찾는 엄마의 노랫소리로 들려 왔었다.

 오늘도 신 영감은 저녁 무렵, “엄니, 엄니!” 부른다. 노모가 깨밭고랑 속에서 손목만 내보이며 홰홰 젖는다. ‘나, 여기 있다’ 는 신호다. “진지 잡숴유!” 이 소리도 노랫소리로 들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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