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준(청양군 목면 부면장)

나는 주로 새벽에 인터넷을 즐긴다. 새벽시간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세상을 주유하는 오롯한 내 시간이다. 자유로운 항해를 즐기기도 하고 즐겨찾기에 등록된 블로그를 통해 관심분야가 같은 사람들과도 소통한다. 이 시간에 컴퓨터 화면은 세상을 비추는 작은 창문이다.

며칠 전 새벽에 웹서핑을 하다가 자주 다니는 블로그에서 농업기술센터와 ‘효소’라는 글을 읽었다. 설탕물을 두고 불치병을 낫게 하는 명약인양 과대 포장된 효소열풍을 꼬집는 글이었다. 그는 농업기술센터에서 조차 엉터리 효소담그기 교육에 앞장서고 있는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귀농자들의 효소사업을 예로 들었다. 효소는 별다른 기술이 필요없고 재료에 동량의 설탕을 더하여 놔두기만 하면 되니 누구에게나 손쉬운 돈벌이가 된다는 것이다. 아담하게 집 한 채 지어놓고 개량한복 입고는 귀농이니 '효소'니 건강이니 적당히 떠들어주면 방송에서 고맙다며 달려든다며. 그는 잘못된 효소문제를 통해 사람의 건강은 아랑곳없이 오로지 돈벌이에 한통속이 된 세상인심을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농업기술센터에서 ‘효소’사업에 열을 올리게 된 사연도 이해는 간다. 농산물은 점점 소득이 신통치 않게 되고 별다른 소득원이 없는 농촌 에서 손쉬운 효소사업이 새로운 주민 소득원으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당장 구미가 당기는 아이템이다. 그렇게 해서 지방 산업발전과 농민소득을 보조 한다는 명목으로 효소관련 식품산업을 장려하고 지원하게 된다. 주민소득에 도움만 될 수 있다면 다른 문제들은 별로 따지지 않는 행정환경이 문제다. 면밀한 검토가 없는 사업선정은 결국 부정적 사회비용의 부메랑으로 되돌아오게 돼 있다는 진리를 간과한 결과다. 

논란의 진원지를 검색해 봤다. 한 종편 방송에서 효소의 문제점을 심층적으로 조사한 리포트가 논란의 중심이었다. 리포트는 사람들이 흔히 알고 있는 효소 효능의 허구성을 자세한 실험과 전문가의 의견을 덧붙여 가며 조목조목 반박했다. 효소에는 효소가 없다고 했다. 효소는 단지 설탕물일 뿐 효소도 발효액도 아니라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본디 효소라는 건 우리 몸의 신진대사를 돕는 촉매제라는 것이다. 효소는 크게 소화효소와 대사효소로 나누는데 소화효소는 위와 장에서 분비된다. 몸에 필요한 에너지원인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은 작은 크기로 분해하는 소화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소화 효소가 작용을 하게 된다. 대사효소는 수천가지에 이른다. 제각각 다른 역할을 하여 우리 몸의 기능을 유지시킨다. 대사효소는 세포내 존재하며 몸에 에너지를 생성하고 두뇌활동에도 관여한다.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 몸의 소화구조상 입으로 먹어서 몸에 보충할 수 있는 효소는 없다는 거다. 효소는 몸 안에서 자연적으로 만들어지는 물질이라고 했다.

화면에 잠깐 효소제조사 수업이라는 현수막이 비쳤다. 생활한복을 입은 사람이 등장하여 이번에는 효소가 아니고 발효액이라고 주장한다. 리포트는 다시 반박한다. 발효액도 아니다. 발효란 음식물이 미생물에 의해서 변화가 일어나서 인간에게 더 도움이 되고 좋아지는 것을 발효라 하는데 효소는 발효가 일어날 수도 없는 환경이라는 것이다. 다량의 당에 의한 강한 방부역할로 미생물이 증식할 조건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당연히 발효도 일어날 수 없다. 미생물이 생육할 수 없는 환경에서 발효가 일어난다면 그건 노벨상감이다. 우리가 효소라고 부르는 물건은 설탕에 의해 재료의 수용성 성분만 빠져나온 것이다. 결국 효소는 당 침출수, 말하자면 설탕물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보도 후 반응들을 보니 수많은 효소관련 인터넷 카페들이 거의 맨붕 상태다. 그도 그럴 것이. 여태 풍문으로 떠도는 효능만 믿고 가지각색 효소를 만들어 유통시켜왔기 때문이다. 댓글들은 대체로 전문가의 의견을 믿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하다. 더러는 종편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 인기에 영합하려는 작태라고 폄하하는 글들도 눈에 띈다. 믿고 싶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 이렇게 조목조목 다양한 실험과 전문가의 증언을 통해 ‘효소’는 효소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했는데도 불구하고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인가 있다고 주장하고 나선다면 그건 신앙이거나 미신일 것이다. 미신으로 병을 고칠 수 있나. 

검증되지 않은 건강보조식품들을 여과없이 방송하는 것이 문제다. 시청자들은 TV에서 방영되는 것을 '공증'을 거친 것으로 쉽게 오해하게 된다. TV에 소개만 되면 '붐'이 일어나 물건을 많이 팔아먹을 수 있다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다. 돈이 되니까. 요즘 건강식품 붐의 실체다.

더 큰 문제는 생각없는 소비자들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따져서 좋을 게 없다. 좋은 게 좋은 거다. 남들이 하니까 대충 그러려니 하고 그냥 따라간다. 그냥 시류에 영합하여 두리 뭉실하게 사는 게 편하다. 세상이 이렇다 보니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이 들어 설 자리가 없다. 효소없는 효소가 만병통치약으로 판을 치게 된 근본적인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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