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호 (전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

어떤 사람이 오른쪽과 왼쪽 양 어깨에 하나씩의 항아리를 지고 물을 날랐다. 매일 아침 샘에 가서 물을 가득 길어 어깨에 얹어 집에 날랐다. 그런데 집에 오면 늘 왼쪽 항아리는 물이 반쯤 비어 있었다. 왼쪽 항아리는 금이 간 항아리였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오른쪽 항아리는 가득 찬 모습 그대로 물이 담겨 있었다.
물이 부족하면 항아리 주인은 다시 샘에 가서 물을 길어오는데 여전히 왼쪽 항아리에서는 물이 새곤 했다. 항아리 주인은 늘 같은 일을 반복하였다.
왼쪽 항아리는 주인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주인에게 요청했다.
"주인님, 나 때문에 항상 일을 두 번씩 하는 것 같아서 죄송해요.
금이 간 나 같은 항아리는 버리고 새 것으로 사서 쓰세요."
그러자 주인이 항아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도 네가 금이 간 항아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단다. 네가 금이 간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바꾸지 않는단다.
보아라. 우리가 지나온 길 양쪽을. 물 한방울 흘리지 않는  오른쪽 길에는 아무 생명도 자라지 못하는 황무지이지만, 왼쪽에는 아름다운 꽃과 풀이 무성하게 자리지 않니? 너는 금이 가서 물이 새지만, 너로 인해서 많은 생명이 자라나는 모습이 아름답지 않니? 나는 그 생명을 보며 즐긴단다."
우리는 완벽함을 추구한다.
자신의 금이 간 모습을 수치스럽게 여긴다. 금이 너무 가서 어떤 때는 자신을 가치없는 존재로 여겨 낙심에 빠질 때도 많다.
금간 인생을 바라는 사람이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세상이 삭막하게 되는 것은 금이 간 인생 때문이 아니라 너무 완벽한 사람들 때문일지도 모른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라는 소설가는 개미들에게서 실제로 일을 하는 개미는 개미집단의 5%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빈둥거린다고 하였다. 하지만 5%의 일하는 개미를 들어내 없애면 빈둥거리는 개미 중에서 디시 5%의 일하는 개미가 생긴다고 하였다. 그리고 여전히 95%의 개미는 빈둥거리면 논다.
인간세계도 비슷하다. 창조적인 일꾼은 5%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95%의 인간은 무임승차꾼들이요, 5%의 인간에 기생하는 존재들인가.
완벽함을 추구하는 관점에서 보면 그렇지만 금이 간 인생론에서 바라보는 관점에서는 정반대다.
사실 95%의 나머지 인간들이 없으면 5%의 인간은 존재할 수가 없다. 쓰레기를 치워주지 않고, 스트레스와 위안을 주는 술집이 없고, 자기를 알아주는 못난 대중의 존경심이 없으면 어느 누가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사실은 창조적 인간 5%를 비창조적 인간 95%가 창조해 내는 것인지 모른다.
혹 당신은 금이 가지 않은 남편은 아닌가. 완벽한 남편인가.
그렇다면 당신의 아내는 죽어갈지 모른다. 풀 한포기 나지 않는 오른쪽 길에 살기 때문이다.
당신은 금이 간 남편인가. 늘 모자라고 불만이고 핀잔을 받고 있으며 살고 있는가. 그래서 당신의 아내는 당신에게 늘 어머니같이 잔소리하며 곁에 붙어 있지는 않은가. 그래서 아내는 죽지 않는다.
나는 어제도 금이 간 하루를 보냈다. 속이 많이 상했다.
그래서 친구를 찾고, 아내에게 기대고, 다른 사람들에게 의지하였다.
오늘 하루도 금이 가는 하루가 시작될 것이다. 속이 많이 상하는 하루를 보낼 것이다. 길가에 물을 흘리며 주변의 인생에 풀과 꽃들을 피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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