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복(흥덕새마을금고 이사장)

 가을은 날씨가 선선하고 쾌적해서 다른 계절에 비해 생활하기가 수월하다. 옛 선인들은 가을을 등화가친(燈火可親) 이라 하여 계절을 벗 삼아 책을 가까이 할 것을 가르쳤다.

 누구나 느끼겠지만 한층 높아진 쪽빛 하늘을 바라보면, 솟아오르는 감성에 한번쯤 젖게 마련이다. 푸르름이 더하다 못해 눈이 시린 짙푸름. 그래서 어느 시인은 눈물이 날 것 같다고 읊었다. 시인이 아니어도, 서정으로 물든 문학가가 아니어도,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한 가을하늘은 보는 이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두레박을 던지면 금방이라도 희망으로 가득찬 파란 생명의 물빛이 가득 퍼 올려 질것 같다. 아 아, 이 가을엔 뭔가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조바심에 몸서리친다.

 요즘 사람들은 컴퓨터와 인터넷 이라는 문명의 이기 탓에 예전만큼 독서를 하지 않는다. 예전엔 원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도서관에 가서 이책 저책 많은 책들을 뒤져야만 가능했다. 그것은 싫던 좋던 책을 읽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이제는 많이 달라졌다. 단 한 번의 클릭만으로 원하는 정보를 실시간 펼쳐볼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따라서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할 수고로움이 없어졌다. 또 책을 통해서만 지식의 습득이 가능했던 과거와 달리 여러 방법으로 정보와 지식을 습득하게 되었으며, 특히 최근에는 각종언론매체 뿐만 아니라 컴퓨터가 우리 생활 전반을 지배하는 시대가 되었다.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정보는 그 진위 여부조차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해저 가히 정보 홍수시대라 할 수 있다.

 정보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캠퍼스 풍경도 많이 달라졌다. 과거엔 그늘이나 벤치에서 책 읽는 학생들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지만 그런 풍경은 사라진지 오래다. 남녀노소를 막론, 장소에 관계없이 휴대폰이나 노트북 같은 전자기기를 만지작거리고 각종 전자게임에 흠뻑 빠져있다. 이제는 TV를 보거나 휴대폰으로 인터넷을 검색하는 일이 하루도 거르지 않는 일상이 됐다. 주변사람이야 보든 말든 자기만의 세상에 갇혀서, 타인에 대한 존재 의식 없이 반복되는 일인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습관적으로 이루어지는 행위는 사람의 뇌를 단순화에 길들게 한다. 마치 즉석에서 조리된 인스턴트 음식을 먹는 것처럼 영양을 생각하기보다는 감각적 입맛에만 의존하게 돼, 지식의 불균형이 일어난다. 지식을 쌓는 일은 속도나 양(量)이 아니다. 그러므로 천천히 음미하고 사색해야 깊이 있는 지식의 교류가 생겨나게 된다.

 책을 읽는 것은 어느 정도의 인내와 사고(思考)를 필요로 한다. 준비과정과 같은 번거로움도 동반된다. 한꺼번에 많은 분량을 소화할 수도 없다. 시간과 노력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한 겹 두 겹 쌓이는 연륜과 같다고나 할까.

 책을 읽은 후에는 상당기간 이를 되새기는 여운이 남게 되는데, 이런 과정을 통해서 독서에 대한지구력이 길러지고, 자기 안에 내용을 담아두는 기간 역시 길어지게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생각의 깊이가 더해지는 일이다.

  반면 특별한 의미 없이 눈을 통해 전달되는 영상이나 기계음 같은 신호 등은 사람에게 여운이나 자극을 주지 못하고 금방 사라진다. 그러니까 오래 지속되는 감동이나 여운 같은 것이 없다. 게다가 장시간 전자파에 노출되면 시력 저하, 기억력 감퇴와 같은 부작용에 시달린다.    한때 TV의 출현으로 아날로그식 매체 신문이 사라질 것으로 예측 했지만 상당기간이 지난 지금도 신문은 변함없이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요즘에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 같은 새로운 정보공유방식이 각광받는다. 그러나 아무리 정보기술이 발전해도 책에 의존하는 인간의 지식 습득방법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휴대폰만 하더라도 각종 전자신문이나 사전 등을 손쉽게 검색해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행위가 지식의 습득으로 연결된다 볼 수 없는 것은, 지식이란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얻어지는 각고의 산물인 까닭이다. 지식에 대한 갈증이 깊어지는 이 가을 독서의 바다에 빠져봄이 어떠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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