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옥 운호고 교사

얼마 전 이사를 하고 집들이를 했는데, 한 지인이 포도 상자를 들고 들어오셨다.
어찌나 색깔이 곱고 향이 좋은지 오신 손님들이 모두 포도의 달콤함에 흠뻑 취했다.
나는 불현듯 포도송이처럼 향기로웠던 현이와 그 가족과의 소중한 인연을 떠올렸다.
당시 중학교 1학년이었던 현이를 만난 것은 30대 초반의 젊은 시절이었다. 하루는 배를 부둥켜안고, 교무실로 왔는데, 증세가 심상치 않아 바로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급체를 했다는 진단이 나왔고, 처방을 받아 바로 약을 먹으니, 증세가 호전되었으나 버스를 타고 30분가량 가야하는 현이의 집까지 혼자보내기에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20여명 교사 중에 3명만이 자가용이 있었다. 나는 마침 수업이 비는 선생님께 부탁을 드려 셋이서 현이를 집에까지 데려다주고 나왔다. 다음날 아침 출근을 하니 교무실 책상 옆에 까만 비닐 봉지가 두 개가 놓여있었고 달콤한 향이 솔솔 흘러 나왔다. 꺼내보니 먹음직스런 포도송이였고, 현이의 메모가 들어 있었다.
“선생님, 할머니께서 선생님께 드리라고 하셨어요. 어제 들에 나가 일을 하시느라고 인사도 못드렸다고, 너무 너무 감사하다고 하셨어요.”
 나는 방과 후에 현이를 불러 선생님들과 맛있게 잘 나누어 먹었다고, 할머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해달라고 했다. 그날 현이와 상담을 하며 진솔한 얘기를 서로 나눌 수 있었다. 어머니는 현이가 세 살 되던 해 돌아가셨고 아빠는 외지에 있는 회사에 다니신다고 했다. 그런데 얼마 전 아빠가 재혼을 하셨고, 새어머니는 동생 둘을 낳으셨다고 했다. 그럼 너도 아빠 집으로 가서 공부하지 그러냐고 하니, 여기는 할머니가 혼자 계시고, 아무래도 새어머니가 불편해하실까 봐 못가겠다고 했다. 중학교 1학년이면 아직도 한 참 어린 나이인데, 철이 일찍 든 현이는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났는지, 말끝을 흐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세월이 흐르고, 나는 시내의 학교로 전근을 왔다. 마침 우리 큰 애가 초등학교 입학을 했는데, 1학년은 부모님들이 조를 짜서 급식 배식을 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점심시간에 나올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그런 며느리를 대신하여 당시 칠순이 넘으셨던 시아버님께서 손녀의 손을 잡고 등교 시간에 가셔서 점심시간까지 기다리셨다가 급식을 돕고 다시 손을 잡고 집에 데리고 오시기를 여러 날, 하루는 아파트 단지에서 아버님이 우리 큰 애와 같은 반인 ‘영이 어머님’이라며 한 분을 소개시켜주셨다. 참 곱고 밝은 인상의 젊은 분이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집에서 살림만 하셨던 영이 엄마는 본인의 딸과 같은 반이라는 이유 하나로, 내가 퇴근이 늦어지면 우리 아이들을 데려다 씻기고 저녁을 먹이고 숙제도 봐주시며 6년을 한결같이 큰 도움을 주셨다.
어디 그뿐인가? 운동회 날이면 우리 아이들 몫까지 김밥에 유부초밥, 갖가지 과일을 싸가지고 나무 그늘이 가장 짙은 곳에 일찌감치 돗자리를 깔고 앉아서 엄마 노릇을 제대로 해주신 분이셨다. 나는 지금도 그 엄마를 잊을 수가 없다.
  그런데, 사람의 인연이라는 것이 참으로 기묘하다. 어느 날 아파트 앞 슈퍼를 가다가 예전의 그 제자, ‘현이’를 만난 것이다. 나는 너무도 반가워 부둥켜안고 한 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네가 여기는 어쩐 일이냐? 그동안 잘 지냈는지? 학교는 어디로 진학했는지? 묻고 대답하며 반가움을 감추지 못했다. 근처 제과점으로 들어가 서로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정담을 나누며 시간가는 줄 몰랐다. 할머니의 안부를 물으니 아직 건강하시고, 포도 농사도 계속 지으신다고 했다. 오늘은 아빠가 아파트 주민들께 할머니가 지으신 포도를 주문받으셔서 트럭으로 실어오시는 길에 따라 왔노라고 했다. 그리고 두 동생 이야기를 하며 이 아파트에서 아빠와 새엄마가 사신다고 했다. 나는 그동안 영이 엄마의 시댁에서도 포도 농사를 지으신다며 일 년에 한 두 번, 아파트로 가져와 포도를 판매할 때 사먹었던 기억이 나서 동생 이름이 누구냐고 물어보았다. 역시 ‘영이’였다! 나는 순간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을 느꼈다.
시골에서 현이 담임을 하면서 현이의 새엄마가 조금 야속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현이를 어떻게든 데려다 잘 키워주면 얼마나 고마울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현이가 아팠던 날, 텅 빈 집에서 혼자 누워있을 현이를 생각하며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걸렸고, 다음 날 포도를 따서 보내주셨던 할머니의 마음이 전해져 가슴 한 켠이 먹먹해졌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 새엄마가 6년간 우리 아이들은 그토록 정성껏 보살펴 주신 마음씨 고운 영이 엄마였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고 한편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직장 생활을 하는 엄마들은 항상 아침이 부산하고, 오후가 걱정스럽다. 엄마보다 일찍 집에 와 있을 자식들 걱정 때문이다. 그런 걱정을 6년 간 말끔히 씻어 준 인정 많은 영이 엄마와 새엄마의 입장을 생각해서 아빠와 같이 살기를 포기했던 어린 현이!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는 고운 마음이 깊어서 그네들은 아마도 함께 살기를 포기했었구나! 각자 생활 공간은 달라도 현이는 새엄마와 가슴 훈훈한 정을 나누며 살고 있었구나! 이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사람의 인연이 긴 세월 속에서 이렇게 오묘하게 씨실과 날실처럼 이어진다는 생각을 하고보니, 오늘 나의 곁을 스치가는 그 어떤 사람도 소중하지 않은 인연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누구도 그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자신의 잣대로 섣불리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되겠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오늘 새로 이사한 집에서 지인들과 정담을 나누며 입안 가득 터치는 포도 향기 속에서 나의 소중한 제자 현이와 그의 마음씨 고운 새엄마를 떠올려 본다. 인연의 소중함을 느끼며 오늘 다시 진심을 담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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