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복(흥덕새마을금고 이사장)

 우리는 어머니 품으로부터 태어나 이런 저런 인연을 맺으며 살아간다. 최초로 시작되는 가족이라는 인연, 가족은 부모 자식 간 혈연으로 맺어지는 관계다. 이는 인간의 뜻이 아닌 하늘이 정해준 것으로 마땅히 지켜야할 도리라는 천륜이다. 그러나 최근엔 이러한 천륜조차 거스르는 일이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인간성이 상실된 삭막한 사회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불가(佛家)에선 옷깃이 스치는 인연이 있기까지는 전생에 헤아릴 수조차 없이 많은 만남이 있어야 가능할 일이라고 했다. 그만큼 인연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말이다.

 인연은 물과 같다. 어느 한곳에만 머물러 있지 않으며 만났다가 헤어지고 또 헤어졌다가 만난다. 그래서 이를 회자정리(會者定離) 거자필반(去者必返)이라 한다.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 우리 삶의 여정인 까닭이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 기억이 있기 마련인데,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보다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지워지지 않고 오래간다. 그것은 인간의 뇌 속에 기억을 관장하는 해마가 심한 자극을 받았기 때문이다. 해마는 외부자극이 클수록 왕성하게 발전하고 오래 저장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기억 메커니즘은 뇌를 통하여 습득된 정보를 시냅스로 연결 기억 중추에 저장한 것이다. 그러므로 충격이 컸던 기억이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원하던 원치 않던 인연을 만들어가게 되는데, 그러한 과거의 만남 중에서도 특히 남자들 세계에서 평생토록 회자되는 것은 단연 군대 이야기다. 전국각지에서 모여든 각양각색의 젊은 영혼들이 눈물과 한숨으로 지샜던 곳, 정상적인 대한민국 남자들이라면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었던 사연 많은 인연의 일단이 군대시절 아니고 무엇이 있으랴.

 요즘이야 군대도 민주화되어 복무기간도 짧아졌고 선임병 들이 후임 병을 함부로 괴롭힐 수 없지만, 수십 년 전만 해도 호랑이 담배 먹던 어둑한 시절이라 군기확립이라는 허울 좋은 미명아래 구타가 공공연히 자행됐다.

 최근엔 금기시되던 군 생활을 TV로 까지 방송한다. 한마디로 상전벽해(桑田碧海)다. 과거와 비교가 안될 만큼 훨씬 자유화, 현대화 된 모습이다. 각종 시설이나 군 장비의 현대화 측면뿐 아니라, 훈련과 같은 근무시간 이외는 휴식을 취하거나 운동을 하는 등 개인 활동이 철저히 보장되는 긍정적인 면이 많이 소개된다. 이러한 점은 젊은이들에게 군대라는 폐쇄된 집단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걷어낼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하고, 군대가 더 이상 개인의 발전을 저해하는 단절과 고립의 한시기가 아니라 병영의 색다른 경험을 통한 자아실현의 과정이 될 수 있음을 홍보하게 되는 것이다.

 다음은 결혼이라는 인연이다. 인생을 하나의 긴 여정으로 볼 때, 유년기에 해당하는 시기다. 각기 다른 삶을 살던 두 남녀가 부부라는 이름으로 이루어가는 여적. 지나온 과거로부터 먼 미래를 향해가는 행로다.

 


 누구에게나 신혼은 대부분 물질적 결핍이 커서 경제적으론 고달팠던 시절이다. 그럼에도 희망 넘친, 눈부신 기억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부부간 공유된 사랑이라는 믿음 때문이리라. 부부는 가정이라는 범위를 넘어서 점차 동료, 친구, 이웃 등으로 생활에 대한 사회적 분화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많은 인연을 만나고 겪는다.

 인연은 하얀 종이위에 그림을 그리듯, 우연과 필연으로 만들어가는 선택의 과정이다. 그러기에 인생 연극의 주인공은 반드시 자신이 돼야만 하는 것이다.

 옛 선인들은 흐르는 세월을 유수(流水) 같다고 했다. 무상한 세월의 흐름 속에 지나온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라는 사색의 의미가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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