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원(신성대학교 복지행정과 교수)


 독일의 안톤 시나크((Anton Schnack)는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라는 수필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정원 한 모퉁이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가을의 따사로운 햇볕이 떨어져 있을 때,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게다가 가을비는 쓸쓸히 내리는데 사랑하는 이의 발길은 끊어져 거의 한 주일이나 혼자 있게 될 때...
 달리는 기차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어스름 황혼이 밤으로 접어드는데, 유령의 무리처럼 요란스럽게 지나가는 불 밝힌 차창에서 미소를 띤 어여쁜 여인의 모습이 보일 때...
 자동차에 앉아 있는 출세한 부녀자의 좁은 어깨. 유랑극단의 여배우들. 세 번째 줄에서 떨어진 어릿광대. 지붕위로 떨어지는 빗소리. 휴가의 마지막 날. 사무실에서 때묻은 서류를 뒤적이는 처녀의 가느다란 손. 만월의 달. 개 짖는 소리. 철창 안으로 보이는 죄수의 창백한 얼굴. 무성한 나뭇가지 위로 내려앉은 하얀 눈송이 - 이 모든 것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한다’.
 기억의 저편에 묻혀있던 안톤 시나크의 수필이 문득 떠오른 것은 요즘 신문에서 본 기사들이 나를 슬프게 하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장례 후 부의금만 챙겨 삼 남매가 사라졌다는 기사가 나를 슬프게 한다. 지난 5월 폐렴 증세로 해당 병원에 입원해 있던 노모가 숨지자 유족인 삼 남매는 조문객과 부의금을 받은 후 발인을 미룬채 입원비와 장례비를 내지 않고 종적을 감춘 것이다. 삶이 너무 팍팍하다보니 노모의 마지막 가는 길이 부담으로 작용하였던 모양이다. 또한, 월세 10만원짜리 다세대주택에서 숨진 지 5년 만에 백골 상태로 발견된 60대 여인의 기사가 나를 슬프게 한다. 더구나 유일한 혈육인 이복오빠로부터 시신수습도 거부당했다는 안타까운 기사는 나를 더 슬프게 한다. 미혼으로 살아 온 그녀의 세월과 세상과의 마지막 이별이 너무도 애처로웠기 때문이다. 과연 ‘가족이 무엇인지’ ‘사는게 무엇인지’라는 생각을 새삼 다시 해 본다.
 한편, 도박 등으로 빚을 지며 생계가 곤란해지자 어머니의 재산을 노려 숨지게 하고 이어서 형까지 살해한 20대 아들의 보도가 나를 슬프게 한다. 살인사건 피의자인 아들은 어머니를 살해할 당시 눈빛을 보지 않기 위해 얼굴에 두건을 씌운 후 밧줄로 목 졸라 살해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돈이 사람을 이렇게까지 변할 수 있게 한다는 현실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이밖에 어머니가 어릴 때부터 구박해 며칠 전부터 죽이려 마음먹었다며 이를 실행에 옮기다 여동생까지 흉기로 찔러 살해한 20대 대학생에 대한 기사도 눈물겹도록 나를 슬프게 한다. 어머니의 구박이 어느 정도였는지 그렇다면 아들은 그동안 어떤 행동들을 했었는지 지나온 시간들이 안타깝기만 하였다. 이러한 비정한 사연들은 나를 절망하게 하며 ‘과연 부모란 무엇인가?’를 거듭 생각하게 한다.
 언제부터 이 땅에서 어머니가 아들에게 당했는지 시기는 잘 모르겠지만 어머니가 아들에게는 이렇게 막 취급되어도 좋은 존재인가? 그동안 이 땅의 수많은 어머니들이 아들을 낳기 위해 얼마나 고생을 했고 아들을 낳았을 때 뛸 듯이 기뻐했을텐데 이러한 보도는 아들이 있는 어머니들을 허망하게 만든다. 아들을 남부럽지 않게 잘 키운다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어머니들을 그렇게 황망하게 어처구니없이 저 세상으로 보내서는 안된다. 어머니가 아들을 애지중지하며 키웠던 시절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문의 또 다른 한 페이지에는 부모님을 위해 장기를 기증한 자식의 기사, 하늘나라로 갔지만 이웃들에게 장기를 기증한 사람들의 기사, 매년 꾸준히 주변의 어려운 이웃에게 현금과 물품을 기증한 사업가의 미담, 그리고 주말이나 휴일이면 어김없이 후미진 사회복지시설 등을 찾아 사랑나누기 봉사활동을 실천하고 있는 공무원들에 대한 보도도 있다. 세상에는 슬픈 일도 많지만 희망을 포기하기에는 너무 이르다. 더불어 사는 우리 이웃과 사람냄새 풍기며 사는 가족들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또 이렇게 어울리며 돌아가고 있었다. 깊어가는 가을에 희망을 안고 새롭게 또 하루를 시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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