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수길(논설위원, 소설가)

지난 14일부터 국정감사가 시작 됐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첫 국감이다. 8개월여의 짧은 기간이지만 그간의 정책수행과정 점검과 향후국정방향을 조율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다. 그래서 국민들은, 여야가 입을 맞춘 듯이 다짐하는 ‘정책국감’ ‘민생국감’에 기대를 걸었었다.

 그러나 기대는 초반부터 빗나갔다. 내달 2일까지, 20일간 열릴 국감이 벌써 절반 가까이 지났다. 그런데 보도를 통해 접하는 국감장 풍경은 여야의 기 싸움과 지겨운 이념논쟁에 애먼 증인 불러다 호통 치기로 보냈다. 그렇게 입을 맞춘 듯 다짐하던 민생은 간 데 없고 정책조율 모습도 안 보인다.

 ‘시작이 반’이랬다. 출발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정권초기 첫 국감. 정석대로라면 민생을 비롯한 각종 정책수행과정은 합당한가, 향후 4년여 간 펼쳐나갈 국정방향은 합리적이고 긍정적결과예측이 가능한지를 따져보고, 불합리한 부분에 대한 보완책이나 대안모색을 위해 감사담당 의원이나 정책수행자가 고민을 함께해야 할 시기다. 하지만, 낯내고 호통 칠 일이 많은 의원들은 요구 자료와 증인선택을 놓고 다투느라 바빴고, 실무자들은 자료준비에 진땀을 흘리는가하면, 영문 모른 채 증인명단에 오른 기업인들은 곤혹스러워 한단다. 

 16개 상임위원회가 20일간 628개 기관을 감사해야한다. 평균 잡아 1개 상임위가 하루에 2~3개 기관을 감사해야 한다는 수치가 나온다. 거기에 법(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에 명시 된 대상기관 외에, 감사받을 의무가 없는 기업인 200여 명을 증인으로 불러들인다니, 초반 1주를 알맹이 없는 논쟁으로 허송한 의원들이 이를 어떻게 감당할 건지 가늠이 안 간다. 아니, 감사의 성과를 가늠하기 전에 실망이 앞선다고 해야 옳다.

 2009년 법정관리를 신청, 구조조정으로 한 바탕 홍역을 치른 쌍용차의 노조위원장 김규한 씨는, 작년 9월 ‘쌍용차 정리해고 관련 청문회’ 호출에 이어, 이번 환경노동위원회 국감장에 다시 불려나왔다. 그는 ‘희망퇴직자와 해직자 복직’을 질기게 요구하는 의원들에게 ‘희망퇴직자 1904명을 무턱대고 받는 것보다 기업의 가치와 존속을 위한 고민도 해야 한다’는 항변과 함께 ‘이제 그만 부르라’고 호소했단다. 기업의 존속을 위해 ‘근로자들의 인내’를 요구해야할 의원들이 ‘무리한 복직’을 요구하고, 그 반대 입장에 있는 노조위원장이 ‘기업이 살아야 근로자의 살길도 열리니, 제발 기업경영에 정치인들이 간섭하지 말라’고 호소한 것이다. 이런 걸 두고 주객전도라 하나 본말전도라 하나? 적절한 비유가 마땅찮지만, 누군가가 등 가려운데 발바닥 긁는, 헛다리짚은 것만은 분명하다.

 국감장의 촌극은 그 뿐만이 아니다. 상임위별로 한꺼번에 수십 명씩 호출 돼 왔던 경제계 인사들 중엔 긴 호통을 듣기만하고 단 1분도 안 되는 답변마저 중도에 잘린 이들이 부지기수, 더러는 질문 한  마디조차 듣지 못하고 퇴장하기도 했단다.   

 사상초유로,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국감증인출석 요구서를 받은 TV조선과 채널A의 보도책임자들이, 어떤 질문, 어떤 호통을 듣고 어떻게 반응할지도 궁금하지만, 국정감사권이 민간언론에까지 작용할 수 있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언론의 편향성(?)을 시정하겠다는 의도였는지 몰라도, 자칫하면 보복성 호통이나 언론탄압으로 오해될 소지가 없지 않다.

 관련 없는 사람들 불러놓고 생색내기 요구나 한풀이 호통 치기보다, 국정수행 당사자들이 그 책임을 다하고 권한을 올바로 행사 했는가를 호되게 따지고 물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피해자 5만여 명, 피해금액 2조원의 금융 사고를 낸 동양그룹의 부실징후를 포착하고도, 적법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방치한 금융감독원의 안일, 그와 유사한 관료의 나태로 국민이 피해를 보는 일, 정책부실로 세금을 낭비하는 일, 직권을 팔아 뇌물을 받거나 국민혈세로  개인의 배를 불리는 관료를 샅샅이 찾아내서, 그 책임을 묻고 따질 일은 많다.

 민주국가에서 민(民)은 당연히 갑(甲)이다. 그런데 살다보면 민은 언제나 약자다. 관청, 은행, 여타기관의 ‘부당한 갑질’에 압도되고 속고 당하기 때문이다. 이런 부당한 일들을 파헤치고 바로잡으라고 의원들에게 감사권을 줬다. 이걸 자신과 소속당의 생색내기나 한풀이로 이용한다면 이 역시 ‘부당한 갑질’이다. 국감. 당연히 ‘민’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본래의 취지와 어긋난 문제를 들춰내어 야당은 물고 늘어지고 여당은 감싸고, 그래서 호통만 높아지는 공방전은 정책국감도 민생국감도 아니다. 민의를 저버린 정쟁의 연속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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