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일(극동대학교 언론홍보학과 교수)

  지난 14일 새벽. 인천 남동구의 한 술집에서 취객들 간에 시비가 붙었다. 피해자는 상대방으로부터 두 차례 뺨을 얻어맞고 그 와중에 휴대전화가 파손됐다고 한다. 밤늦은 시간 시내 유흥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매일 같이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사건과 사고 속에서 그리 대단한 뉴스거리로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이 사건은 인터넷과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확대되었고 본격적으로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했다. 사건의 당사자가 프로축구 인천 유나이티드 소속 이천수 선수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천수 선수 본인 입장에서는 상당히 당혹스런 일이다. 시합이 없는 휴식날 모처럼 지인들과 만나 술 한 잔 하다 일어난 일인데 마치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쏟아지는 관심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는 축구 국가대표까지 지낸 유명 스포츠 스타이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당연하다. 그만큼 신중하게 처신해야 하는 공인이다. 더군다나 그는 지금 어렵사리 얻은 재기의 기회를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스페인 프로축구 프리메라리가에 진출했던 이천수 선수는 2005년 국내 리그로 복귀했다. 울산 현대, 수원 삼성을 거쳐 전남에 입단했지만 시합중 심판모독 행위로 중징계를 받는가 하면 전남 코치들과 물리적으로 충돌하며 구단을 뛰쳐나가고 말았다. 복귀 요구를 거부한 채 출국하여 해외 리그를 전전했지만 2011년 이후에는 더 이상 받아주는 곳이 없어 그의 축구 인생은 사실상 끝이 나는 듯했다.

  그런 이천수 선수에게 2013년 한국 축구는 다시 한 번 손을 내밀어 주었다. 그의 재능을 아까워 한 프로축구연맹이 전남 구단을 설득하여 임의탈퇴 조치를 풀어주었고, 여러 가지 우려를 무릅쓰고 인천 구단에서 그를 영입한 것이다. 마침내 올해 3월 31일 국내 무대를 떠난 지 1,300여일 만에 다시 그라운드를 밟았고, 5월 말 부산 원정에서는 복귀 후 첫 골을 신고하며 재기에 성공했다. 과거와 달리 선수 교체 때면 관중을 향해 90도로 인사를 하고 구단의 모든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달라진 모습으로 그는 팬들의 사랑을 다시 찾아가고 있었다.

  이렇게 지난 8개월 동안 ‘풍운아’ 이천수의 극적인 재기의 드라마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랬기에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되어 이름이 거론되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절체절명의 위기로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사정이 어찌됐든 일단 불미스런 일에 연루된 것에 대해 사과하고 재빨리 수습했어야 한다. 그렇게 했으면 쉽게 끝날 수 있는 일이었다. 이천수 선수에 대한 동정론도 강했고 피해자도 더 이상 문제를 확대할 생각은 없었던 듯하다.

  하지만 그는 공인으로서는 절대 해서는 안 될 최악의 선택을 하고 말았다. 사건 다음날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상대방이 먼저 시비를 걸어왔고, 자신은 그 자리에 동석했던 아내를 보호하기 위해 맥주병을 깨는 행동을 했을 뿐 폭행 사실이 없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러나 그의 해명은 하루 만에 거짓으로 밝혀졌다. 16일 저녁 이천수 선수를 조사한 인천 남동경찰서는 정황상 그의 폭행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히고 폭행 및 재물손괴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그가 현장에 있었다고 주장했던 아내는 상황이 끝난 뒤에 왔던 것이라고 한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고 거짓해명을 했지만 상황은 오히려 악화되고 말았다. 그의 입장을 두둔했던 팬들도 돌아서기 시작했다. 그의 해명만 믿고 있었던 인천 구단은 할 말이 없어졌고, 그에게 다시 기회를 준 축구연맹의 입장도 곤란해졌다. 이제 그는 자신의 행동만 아니라 말에 대한 책임까지 져야 한다.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하물며 그 말이 거짓이면 평생 자신의 발목을 잡을 천근만근의 족쇄가 될 수도 있음을 어찌 몰랐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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