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팔 (논설위원, 소설가)


판로 개척

                                                                박 희 팔

 

 원상 씨가 시골에 내려와 어느덧 철바람을 4번이나 보내고 다시 석 달이 지나니 새로 가을바람이 분다. 벌써 추분도 지났다. 원상 씨는 고구마를 캐기로 했다. 며칠 전 아내가 내려왔을 때 애들 갖다 주라고 한번 캐본 것이 놀랍게도 큰 것은 흔한 말로 애들 머리통만하게 다 커서 반 영감께 자문을 구하러 갔다. 반 영감은 지난 초여름에 수박 묘를 얻어주고 이걸 노지에 심고 기르고 따먹을 때까지 하나하나 자상하게 지도를 해준 영감이다. “할아버지, 우리 고구마 캘 때 됐나 봐주세요, 몇 개 캐보니까 제법 크던데요.” “그래, 그럼 캐면 되겄네. 어디 가 보세.” 이래서 캐도 되겠다고 하여 캐기로 한 건데 그때 반영감은, “근데 이 많은 걸 혼자 어떻게 캘껴. 그렇다구 놉을 얻자니 그렇구. 그나저나 이걸 다 워떻게 처리한다지  집에서 다 먹을 리는 만무구.” “내야지요.” “아니, 그럼 이것들을 자네가 장에 갖다 판다는 얘기여, 아니믄 트럭에 실쿠 서울 경동시장에라도 가져가겠다는겨?” “무슨 수를 써야겠지요.” “하긴 뭐 자넨 수단꾼이구 손이 걸으니께.” 수단꾼이란다. 원상 씨가 명퇴하고 시골로 내려와 그동안 농사를 지으면서 경로당 할머니들에게 자주 들르곤 했다. 인사를 깍듯이 하고 언사를 바르게 하니 된 사람이라 하고, 들를 때마다 사탕봉지나 음료수박스를 들고 가니 반갑게 맞아들였다. “할머님들, 저 농사엔 무식하고 어리석기 짝이 없습니다. 농사박사이신 할머님들의 가르침에 무조건 따르겠으니 하나하나 일러만 주십시오.” 그래서 할머니들은 난체하지 않는 귀농인 원상 씨를 밉게 보지 않고 밭일도 거들어주고 그동안 당신들의 경험을 살려 농사에 대한 지식이나 정보를 자상히 일러주었다. 그러니까 원상 씨에게 온통 마음이 끌려든 것이다. 이걸 보고 반 영감이 원상 씨를 수단꾼이라 보는 것이다. 홀아비인 당신의 농사일을 거들어주기는커녕 말 한번 제대로 섞지 않는 할망구들을 어떻게 수단을 부렸기에 그리도 마음을 홀랑 빼앗을 수 있느냐다. 또 원상 씨 손이 걸다는 건 이렇다. 농사엔 왕초보라면서 700여 평의 밭이 비어 있는 데가 없을 뿐 아니라 심은 작물마다 무럭무럭 잘도 자라니 보는 사람마다 특히 할머니들은, 도회지에 살아서 농사엔 손방이라더니 백년 농사꾼 뺨친다며, “손도 걸지, 손만 대면 잘도 자라니 말여.” 하고 혀를 끌끌 차던 것이다.
 이 즈음해서 뚝별 씨, 우식 씨, 근섭 씨 들이 원상 씨 집을 찾아가기로 했다. 이 셋은 어릴 적 원상 씨 고향친구들이다. 원상 씨가 서울직장서 명퇴하고 귀농한다고 했을 때 극구 말린 친구들이다. 그래도 원상 씨가 고향마을서 20여리 떨어져 있는 지금의 마을로 내려와 이들 셋을 초청했을 때 죽마고우 정리로 셋은 그의 집을 찾았었다. 그때 이들은 원상 씨가 이미  밭을 마련하고 작물을 심어 잘 가꿔놓은 것을 보고 적이 마음을 놓고 돌아왔었다. 하지만 늘 걱정이었다. 그간 자리는 잡혀가는지 그게 궁금했지만 각자의 농사일로 차일피일 미루다 오늘에 이른 것이다. 와보니 친구는 고구마를 캐고 있는 중이었다. “고구마를 일찍 심었나벼 벌써 캐는 거 보니께?” “조금 일찍 심기는 했지. 캐도 된다는구먼.” “이걸 혼자 다 캐겄어?” “하는 데까지 해봐야지.” “판로두 문젠데 어떡케 할 생각여?” “우선 오늘 것은 장에 가져가볼 생각이야.” “오늘이 마침 여기 장날이구먼. 그럼 같이 빨리 캐서 실쿠 가보자구.” 넷은 점심 전까지 캔 걸 가지고 장으로 갔다. 13박스였다. 장터엔 차 세울 장소가 없어 주변 하천 둑 위에 세워놓았다. 그런데 원상 씨가 앞장서 장 복판으로 들어가더니 손나팔을 하고 외친다. “집에서 농사 진 고구마가 왔습니다. 한 박스에 만 오천 원 만 오천 원, 사실 분은 저 뚝방으로 오십시오!” 그리곤 몇 번을 연거푸 더 외쳐댔다. 그랬는데 이게 웬일인가 구매자들이 둑으로 몰려와 삽시간에 동이 나버렸다. 원상 씨가 다시 부리나케 농협으로 달려간다. 셋도 뒤를 따랐다. 농협은행엔 늘 사람들로 붐빈다. 원상 씨가 또 거기서 소리친다. “고구마가 한 박스에 만 오천 원입니다. 사실 분은 전화 주세요. 받는 즉시 곧 배달해 드립니다.” 그리곤 휴대폰번호를 일러준다. 그는 또 2층 회의실 쪽으로 뛰어 올라간다. 거긴 마침 면 부녀회장회의가 끝나고 있었다. 거기서도 또 그는 고구마구매 광고를 외치고 휴대폰번호를 일러준다. 이러는 걸 보고 세 친구들은 돌아왔다.

 그리고 사흘 후, 세 친구들이 궁금해 원상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랬는데, 각처에서 주문이 들어와 90박스가 팔렸다는 것이다. ‘그것 참, 되레 우리가 배워야겠구먼!’

 셋이 서로 쳐다보며 허허허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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