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은순(문학평론가)

 단풍철이 되니 내가 운영하고 있는 호텔은 다양한 손님들로 북적인다. 아직 호텔을 운영한지 오래되지 않아 철철이 다양하게 찾아드는 사람들을 보며 또 다른 방면에서 삶을 엿볼 수 있는 싱그러움이 있다.

 며칠 전엔 전직 외교관 십여 명이 우리 호텔을 찾았다. 그들 중에 몇 사람은 이미 몇 번 만난 적이 있고 나머지 분들도 만나보니 그리 낯설지가 않았다. 쉰 중반을 넘고 보니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을 만나면 친구가 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젊어서 처럼 잘난 척 할 것도 없고 잴 것도 그다지 없어 누구에게서나 막역함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손님들이 오기로 한 시간에 맞춰 청주서 제천가는 기차를 타고 호텔에 도착하고 보니 이미 그들은 체크인 한 상태였다. 아침 일찍 서울서 제천으로 내려와 금수산 등반을 마친 그들을 저녁 식사 자리에서 만났는데 한눈에 모두 점잖고 순수한 사람들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게다가 날씨가 아주 화창해 기분 좋은 가을 산행을 했다며 소년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특히 문학에 관심들이 많아 내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며 문학적 호기심을 드러내 각별한 친근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한 달에 한권씩 책을 선정해 읽은 뒤 만나 토론회를 열고 있었는데 이번 모임을 위해 선정된 작품은 “하워드의 선물”이라는 책이었다. 그 모임의 회장으로 있는 분이 철학박사이기도 하고 삶의 본질에 대한 관심이 지대해, 쉬운 일이 아님에도 정신의 풍요를 위해서 필요하다며 반강제적으로(?) 추진되고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각자의 느낌을 발표하고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는 걸 경청하다 보니 슬그머니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정작 글쟁이인 나는 과연 어떠한가 자신을 모습을 돌아보았기 때문이다. 일선에서 퇴직하고 나서도 독서클럽을 만들어 영혼의 풍요를 도모하고 정기적으로 산행을 하며 호연지기를 구하는 그들의 모습이 참 보기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대화를 통해 어떤 사람은 독서광이고 어떤 이는 영화광이고 한가지의 악기는 대부분 다룰 줄 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떤 사람은 오카리나를 어떤 이는 대금을 어떤 이는 섹소폰을 배운 터라 함께 모여 음악회를 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균수명이 길어져 누구나 노년의 삶을 고민하는 건 마찬가지일 터 그들의 대화를 통해 배울 점이 참 많다는 걸 깨달았다.

 세계 각국에서 얻은 그들의 경험담은 다른 데서 들을 수 없는 내용들이 많아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특히 독일에서 외교관 생활을 했던 어떤 분이 무심히 던진 말은 내게 큰 울림을 주었다. 환경을 더할 나위 없이 중시하는 독일에선 수도세에 이미 폐수 처리비용이 포함되어 수도세가 아주 비싸다는 것과 그림이 취미인 그 외교관이 초창기 독일사회의 시스템을 잘 몰라 그림을 그리고 나서 수돗물에 물감을 씻어 버렸는데 동네를 통해 추적이 들어와 적발 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참 대단한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호텔에서 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의림지 산책을 나갔는데 의림지의 역사며 풍수지리까지 꼼꼼히 살피는 그들을 보며 참 많은 걸 느낄 수 있었고 특히 멋진 의림지 소나무에 열광하며 사진을 찍어대는 그들의 모습에 나 또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떤 이는 외교관이 되지 않았더라면 영화감독이 되었을 것이라며 영화에 대한 꿈을 드러내기도 했고 어떤 이는 스님이 되었을 것이라 했고 어떤 이는 화가의 길을 가고 싶었다는 말을 들으며 나 자신의 길에 대해 생각해 보기도 했다.

 


 특히 나와 가까운 한분은 현재도 국제교류기관에서 분주하게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예사롭지 않아 보이는 큼직한  카메라 장비를 챙겨와 사진작가로 변신을 했다며 수시로 셔터를 눌렀다. 그가 타고 다니는 자가용은 허름하기 짝이 없는데 그의 카메라는 좋은 승용차 값을 능가한다고 했다. 다음 달 토론을 위해 선정된, 금년 노벨상 수상작가인 캐나다의 여류작가 ‘앨리스 먼로’의 단편집을 이미 준비해 나눠 주는 모습을 보고 참 보기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멋진 가을 손님들을 만나 잔잔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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