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희(강동대학교 교수)

  지금은 한창 가을 단풍이 제멋을 최대한 뽐내고 있다. 우리 아파트 단지 내의 단풍나무도 물감을 머금은 듯 멋진 가을 그림을 연출하고 있다. 주말이면 국토가 단풍나들이 객으로 인하여 교통체증이 빚어지고 있다. 단풍의 남하속도는  하루에 20 ~ 25 km 속도로 원색의 행진을 하고 있다. 더불어 주말이면 산을 찾는 등산객도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멋진 금수강산의 단풍을 즐기고자 하는 등산객이 많은 것이다. 그런데 눈으로 즐기고 마음으로 만끽하는 가을 산과 더불어 입이 즐거우면 더욱 좋을 것이다. 이렇다 보니 정상에서 맞이 하는 가을 단풍과 인풍의 모습이 매우 이채롭다. 멋진 단풍과 더불어 음주를 즐기는 흥건한 등산객의 모습이 기쁨반 근심반으로 만감이 교차한다. 음주가무를 즐기는 우리 한국인의 모습이야 아름답기도 하지만, 건강을 찾아 등산한 의미가 부분적으로 일그러지기도 한다. 하여튼 이 가을 아름다운 우리 금수강산을 살펴보고 멋진 가을의 감흥도 느끼어 보자. 더불어 우리 선조들의 지혜와 현명한 세상의 처세술도 살펴보고 불취무귀(不醉無歸)의 깊은 뜻을 새기며 이 가을의 멋진 단풍과의 감흥을 만들어 보자.

  우리 선조들의 소통 지혜는 어떠했을까?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읽고 소통하기 위하여 지혜를 발휘했는지 알아보자. 세종대왕께서는 언통은 경연을 통해 이루었고 심통은 연회를 통해 이루었다. 세종대왕의 음주 습관은 적중이지(適中而止)로 적당할 때 그친다는 의미이다. 적당히 기분 좋을 만큼 즐기며 마음의 벽을 살짝 낮추고 마음을 나누는 것이다. 본인이나 상대방이 너무 취해버리면 심통이 이루어 지지 않는다. 오히려 논쟁이나 격투로 이어진다. 적당한 기준을 두고 정도를 넘지 않으면서 마음을 통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조는 술을 굉장히 좋아했으며, 서민이 즐기는 탁주를 좋아했고 주안상에는 기름진 고기 안주 보다는 민초들이 먹는 소박한 푸성귀 안주를 즐겼다. 근엄한 왕이 아닌 백성과 술잔을 기울이고 그들의 말을 귀담아 듣겠다는 인간 정조의 모습이 엿보인다. 어느 날 과거시험에 합격한 성균관 유생들을 창덕궁 희정당으로 초대한 후 “술로 취하게 한 뒤 그 사람의 덕을 살펴보았다. 오늘 취하지 않은 사람은 결코 돌려보내지 않겠으니 각자 양껏 마시도록 하라”고 정조실록이 전하고 있다. 불취무귀(不醉無歸)는 정조의 건배사로 유명한 글귀다. 정조는 “백성 모두가 풍요로운 삶을 살면서 술에 마음껏 취할 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주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백성을 위해 성정을 베푼 그는 화성 축성 당시 기술자들을 격려하기 위한 회식 자리에 “불취무귀(不醉無歸)”라 엄명했다. 이는 취하지 않으면 돌아가지 못한다는 말로, 실제 취해서 돌아가라는 말이 아니라 자신이 다스리는 백성들 모두가 풍요로운 삶을 살면서 술에 흠뻑 취할 수 있는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주겠다는 의미이다. 한편 도연명(陶淵明)은 귀거래사(歸去來辭)에 묘지명으로 “단한재세시(但恨在世時) 음주불득족(飮酒不得足)”이라는 문구를 새겼다. 세상살이 중 단 하나 한스러운 것은 술 마신 것이 만족스럽지 못했다라는 의미이다. 이처럼 사람의 삶에 있어서 역사적으로 술이 주는 의미가 어떠했는지를 의미심장하게 숙고해 보아야 하는 것이다.

 


  벌써 10월의 마지막 주이다. 다음 주면 11월 12월 연말로 치닫는다. 금방 흰 눈이 내리고 강추위가 이어지는 12월이 다가온다. 올 한해도 이렇게 마무리 되는구나 하면서 빠른 세월을 탓하기 보다는 세월이 무상한 것을 탓한다. 이게 인생인가 세월의 흐름인가 하고 생각도 되내 이지만, 너무나 빠른 시간의 흐름이 아쉬우면서도 무섭게 느껴진다. 다가오는 연말연시 미리 계획하고 대비하여 후회 없는 시간으로 마무리했으면 한다. 술이 인생에서 좋은 점도 있지만, 육체의 만병을 초래하기도 하니 건강을 챙기면서 마음의 질환도 치유하는 음주가 되기를 바란다. 좋은 시절의 육체도 세월 앞에는 무너지니 말년의 정신적 치유를 위한 적당량의 음주를 즐기기 바란다. 더불어 우리의 건강을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불취무귀의 숨은 정신을 되새기며 10월의 마지막 한 주를 마무리 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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