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원(신성대학교 복지행정과 교수)

 남자들이 군에 입대해서 훈련을 받고 제대를 하는 것과 여자들이 임신을 해서 분만을 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힘든 일일까? 군 입대와 임신이 남성과 여성이라면 누구나 살아가면서 겪어야만 하는 通過祭儀의 하나인가?
 모든 통과제의는 미숙한 상태에서 성숙한 상태로 가기 위한 필수적인 고통과 시련의 코스를 가지고 있듯이 군복무와 분만도 그런 특성을 가지고 있다. 군복무와 분만이 함축하고 있는 특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 단절과 분리를 가져온다. 군에 입대한 신참자나 갓 결혼해서 아이를 가진 신부는 예전에 자기가 누렸던 모든 익숙한 관계에서 단절되고 분리된다. 이러한 단절과 분리는 새로운 세계로 빠져들기 위한 초기진통이지만 슬픔과 외로움을 동반한다.
 둘째, 시련과 고통이 있다. 남자들은 보통 군대에서 육체적 및 정신적 한계에 도달할 때까지 훈련과 교육, 동원, 기합 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운 것들을 무수히 반복ㆍ경험한다. 여자들 또한 임신 중에 신체적 및 정신적으로 미묘한 변화와 분만의 극한 고통을 체험한다. 그런 시련과 고통은 남자와 여자에게 어떤 한계상황을 극복한 자부심과 성취감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셋째, 이런 과정을 무사히 통과하면 새로운 세계로 진입한다. 계란이 병아리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알에서 깨어나야 하듯이 중도에 포기하거나 일탈하면 자유로운 날개 짓을 할 수 없다.
어느 시인은 말했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 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있는 가를“
  이처럼 군복무와 분만은 남자와 여자에게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다가와 자리 잡고 있다. 그것은 누구나 겪는 평범한 일상 중 하나였다. 그러나 최근 군대 내에서의 사고와 저출산문제는 이러한 통념적 인식을 깨뜨리고 있다.
 무엇이 그러한 변화를 초래하게 하였을까?
 한 가지 이유는 군 입대와 분만은 필연이 아니라 우연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소위 말해서 빽(?)이 든든한 부모의 자식은 군대를 안가도 된다. 인사청문회에 등장하는 후보자들의 자식들을 보라. 아버지가 잘났으니까 자식은 당연히 군대를 안가지 않는가. 이런 점에서 잘 나가는 집안의 자식이냐 아니냐 또는 잘난 놈이냐 아니냐는 군대를 가느냐 안 가느냐를 가지고 판단할 수 있다. 한편, 임신을 선택할 수 있듯이 분만 또한 자유로운 선택의 결과이다. 따라서 임신을 했다고 반드시 출산을 하는 것은 아니다. 자식을 하나만 낳는 풍토에서 군 입대와 분만은 자연스럽게 대물림되기 어려운 우연과 선택의 연속선상에 있을 뿐이다.  
 또 다른 이유는 중도포기자들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군 입대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성숙한 인간이 되기 위해 병역의무를 다했던 남자들의 낭만은 이제 옛 추억의 한 모퉁이로 밀려갔다. 여자들 또한 결혼을 하면 당연히 아이를 갖는 것이라는 생각은 박물관에서나 찾을 수 있는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했다.
 군 입대와 분만이 자기의 인생에 도움이 되느냐 아니냐는 순전히 본인의 판단에 달려있다.
‘남자는 군대를 갔다 와야 진정한 남자가 된다’는 감언이설(?)과 ‘여자는 분만을 통해서 완전한 여자가 된다’는 거짓정보(?)는 지식정보화 시대에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군 입대와 분만이 개개인의 인생에 진정으로 어떤 도움을 얼마나 주고 있는지는 경험을 통해서만 입증될 수 있다. 경험의 영역을 확대하고 동참자들을 끌어 모을 수 있는 길은 유경험자들이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다. 선배들이 이러한 경험을 통해서 현실을 극복해나가는 힘과 미래를 개척하는 용기를 보여주고 비전을 제시해야 미성숙한 자아(?)들이 희망을 발견하고 서서히 대열에 합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군 입대와 분만이 존재하는 이유를 현실과 무관하게 논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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