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준 <청양군 목면 부면장>

남자는 사업과 먹는 것 외에는 특별한 관심이 없다. 당연히 예술에는 문외한이다. 집안은 온통 아내의 취향이다. 예쁜 것만 추구하는 아내가 꾸며놓은 꽃무늬 가구와 벽지로 둘러싸여 살고 있다. 어느 날 남자는 아내에게 이끌려 보러 간 연극의 여주인공에게 한 눈에 반하게 된다.

노처녀인 그녀는 문화적 소양이 없고 경박한 남자를 경멸한다. 남자는 그녀의 예술인 친구들을 쫒아 다녀 보지만 항상 놀림감이다. 줄기차게 술값도 내고 그들의 그림도 사주다가 결국 그녀에게 딱지를 맞는다.

남자가 다른 여자를 만나면서 취향에 눈을 뜬 걸까. 아니면 아내의 꽃무늬 취향에 싫증이 나 버린 걸까. 자기가 사 온 추상화를 아내가 치워버린 것을 알고 남자는 아내에게 소리친다. “이 집에 내가 고른 물건이 있어? 내가 좋아하는 거 하나쯤 그냥 놔두면 안 돼? 여기는 완전히 인형 가게 같아. 핑크색에 온통 새 그림, 꽃 그림. 더 이상은 못 참아.” 남자는 아내의 취향으로부터 탈출한다. 짐을 싸들고 집을 나와 버린 것이다.

남의 취향을 전혀 존중할 줄 몰랐던 아내는 불행하게 혼자 남는다. 그녀가 불행해진 이유는 자신의 취향을 남자에게 강요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나중에야 그걸 깨닫지만 때늦은 후회다. 남자와 연극의 여주인공은 다시 만난다. 각자 예술에 대한 컴플렉스와 허영심을 극복하고 상대의 취향을 존중하면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타인의 취향>은 프랑스 영화다. 시골 마을에 사는 여러 커플의 에피소드를 시트콤처럼 엮었다. 이 영화는 타인의 취향을 존중해야 사랑도 얻을 수 있다는 지혜로운 메세지를 담고 있다. 세상 구조를 단순화해보면 둘이 살면서 만들어 지는 갈등이 전부인지도 모른다. 둘이 함께 살려면 서로 배려하고 존중해야 한다. 취향이 조화를 이뤄야 삶이 행복하다.

취향만큼 사람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게 있을까. 삶에서 중요한 관계를 이루는 사람을 만나는 일에서부터 옷이나 커피, 점심 메뉴를 고르는 가벼운 선택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매순간 취향이 작동한다. 게다가 이 세상에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취향이 존재한다. 이런 취향들이 어떻게 부딪히지 않고 서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을까.

해답은 엔딩에 있다. 영화 속에서 간간히 플루트를 연습하는 남자의 경호원의 모습이 보인다. 그는 영화 내내 줄기차게 한 가지 음만 연습한다. 감독의 의도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야 비로소 그 비밀이 풀린다. 사람들이 각각 자신의 악기를 들고 연습실로 모인다. 경호원이 영화 내내 연습했던 음을 불기 시작하고 모였던 사람들이 함께 연주를 시작한다. 그의 플루트는 혼자 연습했을 때는 엉성한 한 가지 음에 불과 했지만 여러 사람의 합주 속에서 아름다운 화음으로 변한다. 마법이다.

영화 속에서 감독이 묻는다. 우리네 삶도 같은 거 아니겠냐고. 엉성한 플루트가 다른 악기들과 만나서 멋진 하모니를 이루는 것처럼 서로 다른 타인의 취향들이 모여 사회를 이루고 세상을 어우러지게 하는 거라고. 다양한 취향을 극복하고 함께 살아가려는 감독의 해법이다. 다른 사람의 취향을 인정하고 그 안에 자신의 소리를 내며 살아가자는 것이다.

현실은 영화처럼 만만치 않다. 가족이라 해도 취향이 같지 않다. 저절로 교감되는 법 없다. 개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좋다고 느끼는 것을 상대가 공감해 주지 않는다. 가까운 사람에게 공감받지 못하면 삶이 외로워진다. 최소한 부부는 취향이 같은 사람들 끼리 만나야 되는 이유다.

공감없는 취향은 불통을 낳고 감정을 공유하지 못한 관계는 균열이 생긴다. 부부는 점점 말이 없어진다. 이런 경우 어떻게 하나. 자의반 타의반 서로를 쿨 하게 인정하고 사는 쪽을 택하게 된다.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하고 반드시 함께 해야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삶은 선택이다.

당신에게 파트너 운이 없다면 이제 와서 난관을 헤쳐 나갈 뾰족한 방법도 별로 없다. 영화 속의 남자처럼 집을 뛰쳐나가든 현실을 인정하고 각자 즐겁게 사는 길을 택하든 그건 온전히 당신 선택이다. 어떤 길을 선택하든 잊지 말아야 할 건 삶은 단 한번 뿐인데다 유한하기까지 하다는 사실이다.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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