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서 '삭발'이 또 등장했다. 통합진보당 소속 광주·전남 지방의원 25명이 7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정부의 정당해산 심판청구에 반발해 삭발했다. 전주연 광주시의원을 비롯한 광주 지방의원 15명과 전남 지방의원 10명은 삭발 후 진보당 소속 공직자 100여명과 서울시청 주변에서 삼보일 배를 했다. 앞서 통합진보당 소속 국회의원 5명은 6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당사수결의대회에서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에 항의하며 삭발을 하고 정부투쟁에 나섰다.
정부는 5일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 통합진보당의 정당 활동 정지 가처분 신청도 함께 냈다. 청구 취지에는 통합진보당 의원직 자격 상실을 요구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헌법 제 8조는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그 해산을 제소할 수 있고, 정당은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의하여 해산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부가 정당에 대한 해산심판을 청구한 것은 헌정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이에 따라 헌재는 심판청구일로부터 180일 이내에 통합진보당 해산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헌재 재판부는 재판관 7명 이상 출석으로 사건을 심리해 6명 이상의 찬성이 있으면 정당해산을 결정할 수 있다. 2011년 12월5일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 통합연대가 통합해 출범한 통합진보당은 이로써 2년 만에 존폐의 갈림길에 섰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통합진보당은 강령 등 그 목적이 우리 헌법의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에 반하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것이고, 핵심세력인 RO(혁명조직)의 내란음모 등 그 활동도 북한의 대남혁명 전략에 따른 것으로 분석됐다"고 밝혔다.  존폐 기로에 놓인 통합진보당은 격렬히 반발하고 있다. 통합진보당은 "박근혜 대통령이 우리 헌법을 정면으로 위반·능멸하고 있다"면서 "소중하게 피워 온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를 짓밟는 행태로 반(反) 민주주의의 결정판"이라고 강도 높은 비난을 쏟아내며 장외투쟁에 나섰다. 하지만 이 문제는 투쟁으로 해결 될 일이 아니다. 헌재의 몫이기 때문이다. 헌재는 내년 5월초까지 헌법과 법률 검토, 증인신문 등 본격심리를 거쳐 통합진보당의 해산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엄중한 책임을 떠안았다. 그러나 헌재의 판단에는 측량하기 힘든 정도의 무게가 담길 수밖에 없다. 단순히 정당의 해산여부만 결정하는 판단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진보정당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어느 정도인지, 어느 선까지가 진보의 영역으로 용인되는 것인지 잣대를 제시하는 의미가 내포될 것이란 점에서다. 벌써 정치권 일각에서는 공안정국 조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부의 조치가 이석기 의원 내란 음모 사건에 대한 법원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성급했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런 만큼 헌재는 국민이 수긍하고 이해할 수 있는, 엄정한 결정을 신속히 내려야 할 것이다. 정치권은 물론이고 시민사회 단체 등 각계는 헌재 결정이 나올 때까지 불필요한 공방을 자제해야 한다고 본다. 당리당략이나 이해타산을 앞세워 목소리를 높이거나 공방을 벌일 것이 아니라 차분히 헌재 결정을 기다리는 성숙함을 보이는 자세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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