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파이브’ 주연 김선아


   
“이번이 열 번째 영화예요. 매번 이게 제일 중요하고 최선을 다한다고 해왔는데, 어느 날 내가 되게 지쳐 있더라고요. 좀 쉬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쯤 만난 작품이 ‘더 파이브’예요.”
김선아(38) 만큼 TV와 스크린에서 공히 사랑받는 여배우를 국내에서 찾기 어렵다.
그는 영화 ‘예스터데이’(2002), ‘몽정기’(2002), ‘위대한 유산’(2003), ‘해피 에로 크리스마스’(2003), ‘S 다이어리’(2004), ‘잠복근무’(2005)로 충무로 로맨틱코미디의 퀸으로 군림하다 안방극장으로 옮겨 걸출한 히트작 ‘내 이름은 김삼순’(2005)으로 신드롬을 일으켰다.
이어 ‘밤이면 밤마다’(2008), ‘시티홀’(2009), ‘여인의 향기’(2011), ‘아이두 아이두’(2012)로 족족 인기를 끌었고 영화 ‘걸스카우트’(2008), ‘투혼’(2011)까지 충무로의 러브콜도 끊임없었다.
드라마와 영화 제작자, 감독들이 ‘믿고 맡기는’ 배우가 되기까지 그가 흘린 땀과 눈물이 적지 않았을 터.
첫 스릴러 도전작 ‘더 파이브’ 개봉을 앞두고 6일 삼청동에서 만난 김선아는 배우로서 지난 10년의 여정을 지나오며 많이 지쳐 있었다고 털어놨다.
“배우라는 길을 온전히 가면서 나를 스스로 가둬버린 것 같아요. 좋아하는 일에는 워낙 집중하는 스타일이다 보니 방해하는 게 싫어서 차단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작품 들어가기 시작하면 내 작품의 울타리 안에서만 있고 그동안에는 사람들한테 연락도 안 하고 다 버리는 거죠. 그게 날 힘들게 한다는 걸 늦게 안 거예요. 집중력은 좋지만 외롭고 고독한 길을 걸을 수밖에 없게 됐고. 그렇게 작품 하나하나에 모든 걸 쏟다 보니 지쳤나 봐요.”
그런 그에게 “운명적인 만남”으로 다가온 작품 ‘더 파이브’는 새로운 활력을 줬다. 특히 이번에 연기한 인물 ‘은아’가 남긴 의미가 크다고 했다. ‘은아’는 사랑하는 남편과 딸을 하루아침에 잃고 휠체어에 의지하게 됐지만 자신을 그렇게 만든 연쇄살인범에게 처절한 복수를 꾸미는 인물이다.
“그렇게 행복했던 여자가 하루아침에 너무 불편하게 살게 돼요. 연기이긴 하지만, 내가 그 삶을 살다 보니 감당이 안 되더라고요. 사람이 아주 작은 거라도 뭘 겪어봐야 감사함을 느끼잖아요. 그런 걸 느끼게 해줘서 ‘은아’란 여자가 참 고마웠어요. 그동안 많은 여성의 삶을 연기했지만, 이 여자만큼 이렇게 가슴 속 깊이 남은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배우로서, 한 인간으로서 지쳐 있던 저에게 내가 가진 것에 대한 감사함을 느끼게 해줬고 배우로서 다시 심장이 뛰게 해줬어요. 영화를 보시는 분들도 그런 걸 느꼈으면 좋겠어요. 스릴러에 상업영화지만, ‘이게 나라면?’이라는 생각을 해보면 좋겠어요.”
그는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읽고 단번에 매료됐다고 했다.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벌써 내가 휠체어 타고 돌아다니는 모습이 머릿속에 쫙 그려졌어요. 이대로의 은아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죠. 가위로 직접 막 자른 듯한, 빨랫비누로 감은 듯한 머리도 그렇게 나왔어요. 감정이 없어졌고 메마른 여자니까. 이전에 누구한테 사랑을 받았을 때와 그렇지 않게 됐을 때의 차이는 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 생각이 감독님과 잘 맞았어요.”
극단의 상황에 부닥친 인물이면서도 감정이 메말라 표현을 거의 하지 않는 연기를 하기가 어려웠다고 했다.
“처음엔 감정 표현이 너무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런데 나라도 그런 상황이 되면 그럴 것 같고 말하고 싶지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누구랑 말을 섞기 싫은데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때의 그 정상적이지 않은 호흡 같은 것을 표현하는 게 어려웠어요.”
복수의 마지막 장면을 찍을 때도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공허함이 밀려오더라고요. 그렇게 어렵게 끝까지 왔는데, 너무 허무한 거예요. ‘아, 이게 정말 사람의 인생이구나’ 싶었죠. 또 이 영화의 모든 사람이 이해가 되니까 가슴이 아팠어요. 다들 힘들게 살아가다 목적이 있어서 모인 사람들이니까요. 심지어 그 ‘놈’(살인마)마저도 그가 사랑하고 집착했던 감정이 이해가 됐죠. 사람이 살아가는 데 처절한 것들, 그런 인간 관계들을 생각하게 되다 보니까 ‘이 영화, 사람 참 힘들게 한다’ 그랬어요(웃음).”
극중 은아가 복수의 조력자인 4인방을 자신이 살았던 옛 집으로 데려가 사랑하던 가족이 살인마에게 어떻게 당했는지 털어놓는 장면을 찍으면서는 통곡을 했다고.
“전날 찍은 마지막 장면의 느낌이 계속 이어져서 더 그랬어요. ‘여기가 그곳입니다’라는 대사를 할 때부터 눈물이 터져서 주체가 안 됐죠. 분장실 들어가서 울었는데, 촬영하면서 이렇게 통곡하기는 처음이에요. 울어야 하는 연기가 아니고 가만히 있어야 하는데, 누를 수가 없어서 정말 미치겠더라고요. 그날 참 힘들었어요.”
반신불수 장애를 안은 인물을 처음 연기하면서 진짜 그렇게 보이려고 공을 많이 들였다고 했다. “연기 모니터는 하나도 안 했는데, 하반신이 1㎜라도 움직이는지 확인하려고 모니터를 봤어요. 사람들한테 ‘저기 담요 움직이지 않았어요?’라고 계속 물어봤죠. 움직일 수 없는 하반신과 내가 하나가 돼야 하는데, 혹시 따로 놀까 봐 신경을 많이 썼어요.”
그는 이번 영화에서 ‘살인의 추억’ 등으로 유명한 김형구 촬영감독, ‘괴물’ 등에 참여한 정영민 조명감독 등 충무로의 쟁쟁한 스태프와 함께한 것도 큰 수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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