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자/수필가

  언제부터였을까. 내 가방 속에 늘 넣어가지고 다니던 작은 수첩이 보이지 않는다. 잃어버린 것은 아닌 것 같고 책상서랍을 뒤지거나 전에 쓰던 다른 가방에서 나올 거라는 믿는 구석이 있기에 얼른 찾아보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 수첩에는 깨알 같은 글씨로 가족이나 지인들, 내가 속한 단체의 전화번호가 가나다순으로 빼곡히 적혀있다. 자주하는 전화번호는 머릿속에 있지만 그렇지 않은 전화를 하려면 그 수첩을 꺼내어 뒤적이며 찾아야만 하니 내 가방 속의 터줏대감이었다. 그러던 것이 어느 날부터 나와 멀어진 것은 핸드폰에서 스마트폰으로 이어지는 디지털 기기 때문이다.

  스마트 폰은 참말 유능한 친구다. 전화번호뿐인가. 간단한 메모, 편지는 물론이고 모든 정보를 그 친구가 다 맡아주니 내가 외어야할 필요도 적어 놓아야 할 필요도 없어진 것이다. 모든 것을 그 친구에게 다 맡겨 놓았으니 편리하긴 한데 그 친구가 내 곁에 없으면 낭패다.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나는 바보가 되고 만다. 그러니 열심히 챙기지 않으면 안 되고 어느 새 정이 들대로 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친구만 믿고 가까이하다보면 ‘디지털 치매(Digital Dementia)’라는 병에 걸린다니 이를 어쩌면 좋은가. ‘치매’ 라는 병은 귀신보다도 무서운데 말이다. 물론 ‘디지털 치매’ 와 ‘치매’는 다르다.  치매는 기억력 감퇴는 물론 언어 능력, 이해력, 판단력, 사고력 같은 인지 기능에 장애가 생겨 정상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어렵다. 하지만 디지털 치매는 단순히 기억력이 약화되는 것일 뿐 뇌 손상이 원인인 일반 치매와는 다르다. 병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증상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하지만 디지털 치매로 기억력 감퇴가 심해지면 치매로 발전할 수 있다니 문제다.

  아는 전화번호를 적어본다. 가족들 전화번호 몇 개가 고작이고 전혀 모르겠다. 그것을 외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때는 얼마나 편리하고 좋았던가. 전화번호뿐인가. 길 찾기는 내비게이션이 다 해주었고, 노래가사는 노래방기기가 알아서 척척 알려주는데 머리 복잡하게 알아둘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모든 정보는 컴퓨터가 다 해주더니 이제는 스마트폰이 컴퓨터의 역할도 TV의 역할도 다 맡아주니 모든 것이 스마트폰 안에 다 있는데 그를 믿을 수밖에 없지 않는가.

  디지털 기기는 기억하려는 노력과 습관을 불필요하게 만든다. 기억력에 한해서는 무능해도 되는 것이다. 의학적으로 사람의 기억은 뇌의 ‘해마’라는 부위에서 주로 담당하는데 기억력을 사용하지 않으면 해마의 위축을 가져오고 기억 용량이 줄어든다고 한다. 평소 운동을 하지 않으면 근육 량이 줄어들고 약해지는 것처럼 뇌도 쓰지 않으면 기억, 인지기능이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 뇌는 치매로 갈 위험이 커지고 예방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쓰지 않으면 퇴화한다는 용불용설(用不用說)의 이론인 셈이다.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온 국민이 모두 스마트폰에 빠져서 사는 지경이니 이미 국민 10명 중 3명 이상이 이 증상이 나타나고 있단다. 방치하면 디지털 기기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심리적 공황에 빠질 수도 있다니 걱정이다. 디지털 치매는 단순히 기억이 나지 않아 생활에 불편을 겪는 것을 넘어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주요 원인이 되면서 그 심각성이 커지고 있다. 나이든 사람보다는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 젊은이들이 더 걱정스럽다.

 
  디지털 치매를 치료하는 방법은 ‘디지털 다이어트’가 우선이다. 디지털 기기에 대한 의존을 줄여야 한다. 스마트 폰이 없을 때도 잘 살아오지 않았는가. 꼭 필요한 때만 쓰고 줄이는 것이다. 습관을 고치기는 쉽지 않겠지만 노력해야 한다. 적절한 휴식과 함께 뇌를 자주 활용하는 습관을 들이라는 것이다. 일기를 쓴다거나 책을 읽고 신문을 읽어 뇌를 최대한 활성화해야 한다. 간단한 계산은 계산기를 쓰지 않고 머릿속으로 해보는 것이다. 정서적 안정을 위하여, 원만한 대인 관계를 위해서라도 디지털 기기의 사용 시간을 통제하고 정신 활동을 늘려야 한다.

   미국의 한 여행사에서 출시한 '디지털 다이어트 상품'이 인기라고 한다. 여행하는 동안은 시계, 전화, 카메라 등 모든 디지털 기기에서 벗어나 아날로그인의 삶을 살다 오는 것이란다. 자신의 의지로는 디지털 기기를 내려놓을 수 없는, 디지털 중독증에 걸린 현대인들을 유혹하는 상품이다.

  스마트폰의 알람 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해 잠자리에 들 때까지 잠시도 디지털기기를 손에서 놓지 못하는 우리 현대인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비만을 극복하려는 뱃살 빼기 보다는 ‘디지털 다이어트’ 가 우선이 아닐까.

  ‘디지털 치매 자가 진단법’ 도 나왔다. 한 번쯤 자신을 진단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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