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메이지신궁봉찬회 조선지부 충북도위원을 지낸 친일파 민영은의 직계 후손이 제기한 토지반환청구소송 항소심 선고 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청주지법 민사 항소 1부는 최근 민영은의 후손 5명이 청주시를 상대로 낸 ‘도로 철거 및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후손들은 해당 토지가 친일·반민족행위재산조사위원회의 국가 귀속 결정 대상이 아니라며 반환소송을 냈고 1심에선 후손이 승소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친일 반민족행위자에 해당하는 민영은이 취득한 땅은 친일행위의 대가로 추정되고 조사위의 국가 귀속 결정에 제외됐다 하더라도 이를 뒤집기는 부족하다”며 “국가의 소유로 귀속된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은 조사위가 국고 환수 대상에서 제외한 토지라 하더라도 친일 대가로 취득한 재산이라면 환수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법원이 친일재산 조사위 결정을 사실상 뒤집은 첫 판결이라는 점에서 앞으로 유사한 재판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일제강점기 ‘후작’ 작위를 받은 친일파 이해승의 후손이 지난 2010년 제기한 300억원대의 토지에 대한 국가 귀속 처분 취소 소송에서 이해승의 친일행적이 일부 인정되지 않아 국가 환수가 취소된 적이 있다.
이에 따라 친일재산의 범위를 넓게 해석한 이번 판결이 앞서 조사위가 국가 귀속 결정을 내리지 못한 친일재산에 대한 추가 조사·환수 작업에 새로운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
조사위가 지난 2010년 4년 동안의 활동을 종료하면서 나름 성과를 거뒀지만 조사위의 심의 과정에서 빠져나간 친일재산이 상당수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충북의 경우 31명의 친일파가 소유한 201만3537㎡의 친일재산에 대해 국가 귀속 결정이 내래졌으나 ‘자작’ 작위를 받은 민영휘 소유로 알려진 상당산성 내 33필지 3만14㎡는 조사위 심사 대상에도 오르지 않았다.
이 토지는 1948년 반민족행위처벌법이 생기며 구성된 반민특위 판단에 따라 이듬해 9월 국가에 귀속됐으나 1970년대 말 민영휘의 후손들이 소송을 제기, 승소하면서 귀속 대상에서 빠져버렸다.
전국에서 이처럼 조사위 심의를 교모하게 빠져나간 친일재산이 곳곳에 산재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사위는 당시 해방 60년이 지난 상황에서 친일재산을 찾아내 일일이 매각 경위를 추적하기 쉬운 일이 아니고 재산이 친일 행적으로 받은 것이라는 점을 입증하기도 어려운 측면이 있었던 탓에 귀속 결정을 내리지 못한 친일재산이 추후 발견될 수 있으므로 이의 처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하지만 조사위 활동이 종료된 뒤 친일재산 처리 문제는 다시 방치돼 있다. 조사위가 국고 환수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한 청주시의 ‘알짜배기’ 땅이 환수 대상에 오르게 된 것은 후손들이 땅을 돌려달라는 ‘분별없는 소송’을 제기한 덕분이다.
만약 이들이 소송에 나서지 않았다면 청주 도심의 노른자위 땅은 계속 민영은의 소유로 남았을 것이다.
따라서 지속적인 친일재산의 조사·환수를 위한 상설조직 또는 전담부서 설치가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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