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수애(충북대 교수)

   봄에 밝은 핑크색의 탐스러운 꽃송이로 즐거움을 주었던 벚나무 가로수가 가을엔 빨갛게 물든 잎사귀로 단풍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주변에 노란 은행나무 잎이 조화를 이루어 만추의 정취를 더해준다. 사람들의 관심과 돌봄이 많지 않아도 말없이 서있는 나무들은 예쁜 꽃과 잎 그리고 열매까지 우리에겐 여러 가지 유익한 선물을 안겨준다. 도로를 가운데 두고 양편으로 갈라져 있지만 서로 마주보고 있는 나무들은 마냥 평화로워 보인다.

   아주 어릴 적 엄마 아빠 중 누가 더 좋으냐는 질문을 받아보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당황해 하는 아이의 표정을 보며 별 생각 없는 어른들은 마냥 재미있어 한다. 아이가 얼마나 난감할지 헤아리지 못한다. 엄마와 아빠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어떤 대답을 해야 이득이 오고 손해를 보지 않을지 고민이 크다. 짧은 시간 내에 자신에게 돌아 올 손익을 계산하느라 분주하다.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엄마와 아빠의 독촉이 이어진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기 매우 곤란해 둘 다 좋다고 대답하면 부모는 모두 실망하며 반드시 어느 한쪽을 택하도록 강요한다. 강제적인 대답 추궁에 조심스레 엄마나 아빠 어느 한 쪽이 더 좋다고 말하는 순간 선택받지 못한 부모는 매우 서운한 눈길을 보내며 아이에게 작은 응징(?)을 가한다. 이런 곤란한 경험을 했으면서도 자신이 부모가 되었을 떄 똑같은 질문으로 자녀를 곤혹스럽게 만들곤 한다. 어쩌면 우린 가정에서 자라면서부터 편 가르기에 익숙해졌는지 모른다.

   청명한 하늘을 보니 가을 운동회의 기억이 새롭다. 푸짐하고 맛있는 음식을 싸가지고 가족들과 함께 즐기는 잔치 날이었다. 전교생은 청군과 백군으로 편을 나누어 경주를 하고 대나무 소쿠리에 담긴 모래주머니를 터트리며 열심히 자기편을 응원하고 상대편의 기를 눌러 놓는다. 푸른 띠와 흰 띠를 머리에 두르고 줄다리기를 한 뒤, 마지막 경기인 이어 달리기를 할 때 트랙을 달리는 선수 뒤를 따라가며 목 터져라 응원을 하고 나면 다음 날은 목이 쉬어 소리도 못내는 친구들이 많았다. 가족이라 해서 같은 편이 된다는 보장이 없으니 한 집 자녀들이 서로 청군과 백군으로 나뉘기도 한다. 이럴 때 부모는 경기가 끝날 때마다 어느 편을 들기 거북해진다. 진 편 자녀를 생각하면 이긴 편의 아이를 마음껏 축하해주기도 눈치 보이는 일이다. 엄마와 아빠 중 누가 더 좋으냐는 물음에 답하기 곤란했던 어린 아이의 마음을 좀 이해할 수 있었을까? 그래도 운동회 때 갈린 편은 오래가지 않았다. 운동회만 끝나면 그만이었으니까.   

   요즘 학생들 사이에서는 자신이 속한 학급이나 성별, 거주지, 환경, 취미활동 등에 따라 친구들끼리 편 가르기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으면 따돌림을 당할 수도 있어 심지어는‘왕따’가 되지 않기 위해 마음 내키지 않지만 ‘왕따’의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해도 편 가르기는 끝나지 않는다. 학연 지연을 기본으로 상사와의 관계에서도 생각을 같이하는 사람끼리 편을 만들고 있다. 직장까지 이어진 ‘왕따’현상을 견디지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안타까운 사건도 일어난다. 같은 편 내에서 개인의 생각이나 행동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같은 편은 생각이 달라도 무조건 동의하거나 묵과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주거나 상대편에게 유리한 빌미가 되었다고 배반이라는 굴레를 씌워 통제하기 때문이다.

 


  사회 곳곳에서 편 가르기 현상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 가지 사안을 두고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의 의견은 첨예하게 대립된다. 어쩜 그렇게 생각의 차이가 큰지 가늠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서로 옳은 점도 있고 그른 점도 있으며, 잘 한 것도 있고 잘 못한 것도 있을 수 있다는 견해는 수용되지 못한다. 내분을 조장한다거나 회색분자라는 오해를 받기 쉬워서 일까? 다양한 의견이 존중되고 토론을 통해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이 자유 민주주의의 기본일진대, 오로지 내편과 남의 편으로 이분되어 격화되는 분위기가 걱정스럽다.

  충북도와 여야 국회의원들이 내년 정부예산 국회 반영 협력과 지역 현안에 대한 정책 공유를 위해 격의 없는 토론과 대화를 통해 지역발전을 모색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편 가르기 같은 정치양상을 우려하는 가운데도 도와 지역 여야 의원들이 함께 협력방안을 논의했다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충북을 위한 중심 역할과 지역 발전을 위한 가속화에 힘쓰겠다는 이번 다짐이 결실을 맺고 전국적인 사회적 합의를 한 걸음 당기는 불씨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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