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일(극동대학교 언론홍보학과 교수)

  지난 6년 동안 국민들의 사랑을 받아온 KBS2의 대표 예능프로그램인 ‘1박2일-시즌2’가 오는 24일 방송을 끝으로 막을 내리고 새로운 시즌을 시작한다고 한다. 시즌3에는 기존 멤버 중 차태현, 김종민만 합류하고 나머지 4명은 하차하기로 했다. 이중 세 사람은 영화촬영과 음반준비 등 자신의 본업에 전념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사단이 벌어졌다. 이 프로그램에서 ‘국민일꾼’으로 사랑을 받아왔던 이수근이 불법도박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지난 14일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의 수사발표에 의하면 이수근을 비롯한 유명 연예인 8명이 불법도박에 연루되었다고 한다. 이미 형이 확정된 김용만을 비롯하여 가수 탁재훈, HOT 전 멤버 토니안, 신화의 앤디, 방송인 붐과 개그맨 양세형 등이다. 이수근의 경우 31개월 동안 3억7천만 원을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이용해 돈을 거는 소위 ‘맞대기’ 도박에 썼다고 한다. 처음에는 재미삼아 소액으로 시작했지만 어느새 상습도박자가 되고 만 것이다.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연예인들의 불법도박 소식은 참으로 안타깝다. 이들이 도박의 유혹에 쉽게 빠지는 것은 연예인이라는 직업 특성 때문일 수도 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치열한 경쟁에서 항상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지만 얼굴이 알려져 있다 보니 밖에 나가서 풀기도 부담스럽다. 그러다보니 남의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쾌감을 느낄 수 있는 도박에 쉽게 빠지곤 한다. 당장 생계가 어려워도 한 번만 뜨면 큰돈을 벌 수 있는 연예계 속성은 그 자체로 도박성이 강한 직업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들에게 면죄부를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같은 처지지만 활발한 사회봉사나 기부활동을 통해 자신에게는 물론 사회에도 도움이 되는 방법으로 풀어나가는 연예인들도 많기 때문이다. 기소된 연예인들은 재판을 통해서 응당한 법적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처벌보다 더 무서운 것은 그동안 이들을 믿고 신뢰했던 이들이 받는 실망감일 것이다. 특히나 이수근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성실과 끈기로 그 자리에 올라 많은 개그맨 후배들이 가장 본받고 싶어 하는 선배 가운데 하나였기에 그 행실이 더욱 아쉽다.
  양평의 한 수련원에서 레크리에이션 강사로 일했던 그가 서울에 올라온 때는 2000년 초였다고 한다. 이정재, 이영애 주연의 영화 <선물>에서 개그맨 역할을 할 출연자를 뽑는 오디션에 참가한 것이다. 오디션장에서 그가 운명처럼 만난 한 사람이 바로 김병만이었다. 각자의 팀에서 유일하게 합격한 두 사람은 이때부터 개그 콤비로 의기투합하게 된다. 그리고 우연한 기회에 ‘개그콘서트’ 작가의 눈에 띄어 방송에 출연할 기회까지 얻었다. 원수지간인 두 사람이 대결을 위해 칼을 뽑지만 허무하게 끝나는 슬랩스틱 코미디였다. 상당한 무술실력과 정확한 합을 맞추는 내공을 갖추지 않으면 어려운 연기였기에 당시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이후 두 사람은 ‘개그콘서트’의 터주대감으로 승승장구하게 된다. 하지만 이수근은 그 자리에 머물지 않고 과감히 새로운 영역에 도전했다. 2007년 8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인 ‘1박2일’에 합류한 것이다. 짜여진 각본에만 익숙해있던 그가 리얼로 진행되는 예능에 적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다른 MC들에 가려 겉돌았지만 그는 특유의 끈기와 성실함을 바탕으로 국민일꾼이라는 자신만의 캐릭터를 구축해내며 자리를 잡는다. 강호동의 갑작스런 하차로 위기에 빠진 ‘1박2일’을 지킨 그는 시즌2에서는 사실상 메인MC 역할까지 수행했다.
  한 토크쇼에서 이수근은 어머니와 생이별을 하고 살아야 했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펑펑 흘렸다. 시청자들은 그동안 그가 오늘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겪어야했던 숱한 어려움과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모두 지켜보았다. 그랬기에 한순간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초라하게 퇴장하는 국민일꾼의 뒷모습은 더욱 씁쓸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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