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준(청양군 목면 부면장)

 

 

영화를 봤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제목이 도발적이다. 영화의 원제를 봤더니 영문도 같은 제목이다. 파울로 코엘료의 동명소설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베로니카는 스물 네 살의 젊은 여자다. 명문대를 나와 유명광고회사에 취직하여 살아가고 있다. 그녀는 지하철 안에서 무료하게 서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삶의 근본적인 질문을 떠올린다.

무료하다. 병원에 가면 의사는 우울증 진단을 내리고 약을 처방하겠지? 수많은 사람들이 다 그런 식으로 살아가니까. 나도 항 우울제를 복용하면서 부모님에게는 정상으로 돌아갈 거라 안심시킬 거야. 그러다 한 남자의 청혼을 받게 되겠지. 좋은 사람이라고 부모님도 기뻐할 테고. 신혼 땐 무시로 사랑을 나누다 한두 해 지나면 뜸해질 거고 서로 지겨워질 무렵 임신을 하게 되겠지. 애들 키우고 일에 적금에 정신없이 살게 될 거야. 결혼 10년 차쯤 되면 바쁘고 지친 나를 핑계로 남편은 바람을 피겠지. 그럼 나는 두 사람 죽이고 나도 죽겠다며 난리치다가 그냥 지나 갈 거고. 몇 년 후 남편이 또 그럴 땐 모르는 척 하게 되겠지. 조용히 넘어가고 싶을 테니까. 그렇게 남은여생을 보내며 내 자식은 나처럼 안 살기를 바라다가도 걔들도 별 수 없다는 걸 몰래 기뻐할 테지.

생각 없이 살아야 삶이 순탄한 건데 생각 때문에 문제가 생겨 버렸다. 그 생각으로 인해 그녀는 지금까지 살아오던 삶의 궤도에서 벗어난다. 한 순간도 자기들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들. 날더러 그런 바보들처럼 그냥 살라는 거야? 돈 버는 것 밖에 모르는 회사의 인간들도 맘에 안 들고 꿈도 희망도 없이 멍하니 서 있는 지하철 안의 산 송장들처럼 사는 것도 싫다. 베로니카는 탈출구가 없는 이 세상의 광기에 동참하느니 차라리 자살을 택하기로 한다.

 
그녀는 생각한다. 사람은 그냥 길들여진 병정개미처럼 피동적으로 사는 게 아니라 자기가 삶의 주인이 되어 살아야 비로소 진짜 삶이라고. 평범하게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자살을 택한 베로니카를 통해 영화는 수동적인 삶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그녀는 산 송장처럼 하루하루 사는 사람들의 무심한 광기를 탓한다. 도대체 누가 미친 건가. 

 

정신에 이상이 생겨서 정상적이지 않은 상태로 되는 것이 미친 거다. 사람들은 평범한 삶의 궤도에서 벗어나면 비정상이라 생각한다. 서울에서 출발한 기차는 정해진 루트에 따라 천안, 대전을 거쳐 종착역 부산까지 가야 하는 거다. 그렇게 삶의 루트를 따라 평범하게 살아야 정상이다. 진짜 그게 정상인가. 영화는 어떤 게 미친 거냐고 되묻는다.

 

수면제를 과량복용하고 앰블런스에 실려 간 베로니카는 정신병원으로 이송된다. 엎친 데 덮친다고 그녀는 수면제 과량복용 우휴증으로 시한부 삶을 선고 받는다. 아이러니 하다. 죽고 싶었는데 시한부 삶이라니.

정신병원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생각이 유별나게 다른 사람들. 그중에 에드워드라는 청년이 눈에 들어온다. 교통사고가 나서 여자 친구를 잃은 후 말을 잃어버린 청년이다. 베로니카는 삶이 몇 주 남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갑자기 삶의 의욕이 강렬해진 것일까. 둘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그걸 마리라는 여자가 눈 여겨 본다.

한때 유능한 변호사였으나 남편과 이혼하고 직장까지 잃은 마리. 정신병원 사람들의 정신적 멘토다. 어느 날 나는 뭐하고 있는 건가 생각했어. 남편도 직장도 집도 전부다 버리고 떠날 용기가 없었지. 남들은 죽을 때까지 평생 만나 보지 못하는 그 한 순간을 넌 이제 찾은 거야. 

베로니카와 에드워드는 정신병원을 탈출한다. 무료해 보이던 세상이 갑자기 빛나 보이기 시작한다. 얼마나 남아 있는지 알 수 없는 삶.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다. 살아있는 동안 하고 싶은 일이 많아졌다. 베로니카의 일탈은 삶에 의미를 갖지 못 한 채 아무런 감흥도 열정도 욕망도 없이 그저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죽음의 의미를 일깨운다.

 
베로니카의 시한부 삶은 원장의 트릭이었다. 그는 죽음을 통해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그녀에게 상기시켜 준 것이다. 그것도 모르는 그녀는 남을 날 하루하루를 아끼며 빛나게 살게 될 것이다.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간결하다. 삶은 짧다. 지금 네가 원하는 걸 하라. 사람들이 널 미쳤다고 생각하더라도 그건 단지 시점의 차이일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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