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주 희(침례신학대 교수)

시인이, 시인이니까 시를 썼다.

 누가 기뻐서 시를 쓰랴 / 새들도 갈 데가 있어 가지를 떠나고/ 때로는 횡재처럼 눈이 내려도 / 사는 일은 대부분 상처이고 또 조잔하다/ 그걸 혼자 버려두면 가엾으니까/ 누가 뭐라든 그의 편이 되어주는 것이다/ 나의 시는 나의 그늘이다  <그늘>

 누가 기뻐서 시를 쓰느냐고, 우리 사는 일 대부분이 상처이고 조잔한데 그걸 버려두면 가엾으니까 편을 들어주는 것이라고, 그래서 자기 시는 빛나는 햇살 아래가 아닌 그늘이라고 이상국 시인이 썼다. 세상 일을 기뻐서만 하느냐고 슬프고 안쓰러워도 한다고, 가엾지 않도록 써서 위무한다고, 그래서 시는 어둠일수도 밝음일수도 있는 경계의 그늘이라고, 시인은 결국 편들어 주는 사람이라고. 시인 정희성은 이상국 시 <그늘>의 한 구절 ‘누가 기뻐서 시를 쓰랴’를 제목으로 삼아 시인답게 시를 썼다.

 꽃이 마구 피었다 지니까/심란해서 어디 가 조용히/혼자 좀 있다 오고 싶어서/배낭 메고 나서는데 집사람이/어디 가느냐고/생태학교에 간다고/생태는 무슨 생태?/늙은이는 어디 가지도 말고/그냥 들어앉아 있는게 생태라고 꽃이 마구 피었다 지니까/심란해서 그러는지는 모르고/봄이 영영 다시 올 것 같지 않아/그런다고는 못하고 <누가 기뻐서 시를 쓰랴>

  시인들의 이런 교류라니. 정희성은 시 <그리운 나무>로 2013년 지용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인 정지용의 시문학 세계를 기리는 이 상은 해마다 지용제에 맞춰 최고의 시 한편을 가리는데 심사평은 정희성의 시 <그리운 나무>가 짧은 시 안에 존재와 존재 사이의 숙명적 거리감을 시적 서정으로 융합시켜 아름다운 합일을 이루어 보여주는 점과 시의 이상적인 전범이라는 점을 높이 샀다. 정희성은 197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작품활동을 시작했고, 시집은 <답청>, <저문강에 삽을 씻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등 시집을 통해 독자들과 공감해왔다. 김수영문학상을 비롯해 여러 문학상을 수상했고, 숭문고등학교에서 35년동안 국어교사로 봉직했다.

 스스로 젊어서는 ‘분노의 감정과 미움의 언어’로 시를 써왔다고 하지만 그의 시선은 최소한의 삶을 유지하기 버거운 삶, 그 삶을 만들어 내는 사회, 그 삶을 아무렇지 않은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풍조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것도 안타까워하는 방식이었을 것인데 점차 대상 자체로 시선을 이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참혹한 현실이 아니라 그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의 절실한 아름다움. 참혹한 현실을 살아내는데 분노의 에너지보다 아름다움의 희망이 수월하다는 것을 체득했기 때문일 터이다. 수상기념 시집[그리운 나무]에서 시인은 대상을 간결하고 정갈하게 호명해 낸다. 폭력을 드러내거나 한계를 제시하는 것을 넘어 대상의 아름다움, 대상의 안쓰러움, 대상의 아까움을 보고 있다. 그것은 일상에서 자체검열하며 퇴색시킨 그리운 것들을 또 생각하게 한다는 미덕이 있다.

 음지식물이 처음부터 음지식물은 아니었을 것이다/큰 나무에 가려 햇빛을 보기 어려워지자/몸을 낮추어 스스로 광량(光量)을 조절하고/그늘을 견디는 연습을 오래 해왔을 것이다/나는 인간의 거처에도 그런 현상이 있음을 안다/인간도 별수 없이 자연에 속하는 존재이므로 <음지식물> 

  시를 쓰며 나이 들고, 나이들어 시 쓰는 일에 이런 공력이 붙는다면, 그래서 자연의 그 모든 것들처럼 순명해야할 인간이라는 자리도 더 깊이, 더 많이 깨달아 가는 중이라면. 그런 시인이 호명해 낸 <그리운 나무>같은 시를 읽는 일은 우리 감정의 호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고맙게도.

 나무는 그리워하는 나무에게로 갈 수 없어

애틋한 그 마음 가지로 벋어

멀리서 사모하는 나무를 가리키는 기라

사랑하는 나무에게로 갈 수 없어

나무는 저리도 속절없이 꽃이 피고

벌 나비 불러 그 맘 대신 전하는 기라

아아, 나무는 그리운 나무가 있어 바람이 불고

바람 불어 그 향기 실어 날려 보내는 기라

 어느 한 때 깊숙이 품었을 그리운 나무를 다시 회복해 낸다면, 아아. 호사스러워질 겨울의 초입. 시인이 기뻐서 시를 쓰지 않듯 누가 기뻐서만 시를 읽으랴고 토를 달아보면서, 그리운 것들 하나씩 불러보며, 속절없이 피고 지는 꽃들 나무들 다시 품어야 할, 지금은 시가 절실한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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