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일(극동대학교 언론홍보학과 교수)

  새누리당이 지난 달 28일 감사원장 임명동의안을 단독처리하면서 여야 간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민주당이 국회 의사일정의 전면 중단을 선언하면서 올해에도 법정시한 내 예산안 처리는 불가능해졌다. 국회에서 예산안 처리가 늦어진 것이 어제오늘은 아니지만 올해는 심의조차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연말까지 처리가 안 되면 결국 준예산 편성이 불가피한데 이 경우 공무원 급여와 정부 유지비 외에는 예산 집행이 불가능해 많은 국민들이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올 정기국회가 시작된 이후 아직까지 법안이 단 한 건도 처리되지 못할 정도로 제 기능을 못하는 국회에 대해 ‘무용론’까지 제기되는 마당이다. 이렇게 제 할 일을 못하면서 국회의원 의석수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은 정말 눈치 없는 행동이 아닐 수 없다. 국민들 속에 열불이 나고 있는 판에 일부 충청권 정치인들이 의석수를 늘리겠다고 나서는 것을 보면 참으로 민망하고 낯 뜨겁다.

  세종시 출범 등에 힘입어 충청권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므로 그에 맞게 국회의원 의석수를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틀린 것은 아니다. 이미 지난 5월 충청권 인구가 처음으로 호남권을 추월하기 시작했는데 현재 국회의원 수는 25명으로 호남보다 5명이나 적다. 이를 인구 비례에 맞게 늘려달라는 것이다. 문제는 지난 대선 과정에서 여야가 국회의원 수를 줄여나가기로 합의한 데다 국회에 대한 최근의 국민정서를 감안할 때 해결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방법이 있다면 의원 숫자는 그대로 유지한 채 인구가 감소한 지역의 의석수를 줄여 충청권으로 가져오도록 하는 것인데 사실 있는 자리를 스스로 내놓을 지역이 어디 있겠는가. 여러 차례 공론화를 시도했지만 별다른 반응이 없자 조급증이 일었던 모양이다. 새누리당 정의택 의원(청주 상당)이 현행 공직선거법의 선거구 획정이 헌법상 평등의 원칙에 위배되고 충청권 주민들의 참정권을 제한하고 있다는 이유로 지난 달 14일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한 것이다. 같은 달 20일 열린 새누리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정 의원은 더 강경한 발언을 쏟았다. 지난 총선을 앞두고 충청과 호남의 국회의원 숫자가 부당하게 결정된 것은 민주당의 호남 출신 의원들의 책임이라고 비난한 것이다. 또 이에 대한 민주당 김한길 대표의 입장과 사과표명까지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집권여당의 최고위원이 국회에서 스스로 논의해서 결정해야 할 일을 헌법재판소에 떠넘기는 것도 이해가 안 되는데, 안 그래도 관계가 틀어진 야당과 특정 지역을 자극하는 발언을 일삼는 것이 과연 지역에 어떤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야당이 장악한 호남 지역이니 자꾸 문제를 제기해서 혹시라도 의석수를 줄일 수 있다면 여당 입장에서는 손해 볼 게 없다는 계산인 듯하다. 그런데 야당에서 논의에 응할 가능성은 없으므로 헌법재판소를 끌어들여 판을 한 번 흔들어 보자는 의도일까. 실제로 헌법재판소가 지난 2001년 국회의원 선거구별 인구편차가 3대 1을 넘으면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려 선거구 조정이 이루어진 적이 있다. 따라서 이번에 다시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리면 선거구 조정을 통해 인구가 증가한 충청지역의 의석수를 늘릴 명분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계산이었음이 곧바로 드러났다. 민주당 충북도당은 정 의원 주장대로 인구만을 기준으로 의석을 다시 배분하면 호남에서 5석이 줄어드는 것은 맞지만 충청권 의석수는 변동이 없고 수도권에서 10석이 늘어나게 된다고 반박했다. 심지어 충북 지역은 인구 하한 기준에 못 미치는 충북 보은·옥천·영통이 통합대상 선거구가 돼 되레 1석이 줄어들게 된다. 결국 헌재가 어떤 판단을 내리든 충청권은 아무런 이익도 얻지 못한 채 괜히 갈등과 분란만 일으키는 꼴이 된 것이다. 참으로 유감스러운 국회의원의 헌법소원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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