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연 기(한국교통대 교수)

201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출제 오류로 촉발된 논란이 결국 소송 사태로 번지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지난 11월 26일 ‘출제 오류 논란이 제기된 세계지리 8번 문제의 정답에는 변함이 없으며 8번 문제의 정답인 2번이 고교 과정에서는 최선의 답’이라는 납득하기 어려운 해명을 한 바 있다. 논란이 된 문제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와 유럽연합에 대한 옳은 설명을 선택해야 하는 문항으로 교육과정평가원은 ‘EU가 NAFTA보다 총생산액 규모가 크다’는 보기가 맞다는 설명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전문가들을 포함한 관계자들은 최근 세계은행의 통계를 들어 EU의 총생산액은 16조5700억달러이고 NAFTA는 18조6800억달러이므로 보기가 틀렸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총생산액의 정의와 그에 따른 최근 통계에 대한 확인여부이다. 적어도 교육과정평가원 측의 ‘고교 과정내에서는 최선의 답’이라는 해명은 사실과 진실만을 다루어야 할 국가 주관 시험의 책임자의 발언 치고는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시험 출제오류로 가장 떠들썩했던 사건은 1964년 12월 7일에 치루어진 서울시 전기 중학 공동출제 입시문제 자연 18번의 정답논란이었다. 일명 ‘무즙’사건으로 알려진 이 문제는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듯 ‘엿기름 대신 넣어서 엿을 만들 수 있는게 무엇인가’라는 문항이었고 이에 대한 정답은 다아스타제(diastase)라고 하는 전분분해효소였다. 그런데 객관식 예시 중에 무즙이 있었는데 당시 중학교 입시생들이 공부했던 초등학교 자연교과서에 침이나 무즙에도 디아스타제 성분이 있다는 내용에 근거하여 중복 정답 논란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이에 경기, 서울, 경복중학교 등 세칭 일류 중학교 입시생을 둔 학부모들이 입학시험 합격자 청구소송을 제기함에 따라 재판부는 원고들이 무즙으로 만든 엿의 제조 가능성에 대한 의견을 학술원에 구하게 되었고 무즙으로는 엿을 고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반발한 무즙 학부모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이의를 제기하여 결국 1965년 서울고등법원은 무즙도 정답이 된다라고 원고승소 판결을 내려 승소 측 학생 중 일부가 추가합격으로 구제 받게 되었다. 사건의 여파는 상당해서 당시 서울시교육감, 문교부 차관, 청와대 정무비서관과 공보비서관이 사퇴해야만 했었다.

교수로서 필자 역시 담당교과목의 중간, 기말시험부터 각종 국가시험 출제를 경험해왔지만 출제과정에서의 스트레스는 이루 말할 수 없다. 보통은 가장 보편적으로 알려진 이론에 충실하기 위해서 관련문헌을 충분히 참조한다고는 하지만 출제과정에서의 사소한 단어 하나에 의해 출제 의도가 완전히 바뀌어 버리는 경우도 더러 발생하기도 한다. 다행이 출제 문항에 대한 점검 과정에서 오류가 발견·정정되어 출제 오류로 인해 해당 시험의 공정성과 권위를 훼손시킨 적이 없음에 안도하고 있다. 그러나 각종 통계가 매년 변하고 같은 현상에 대해서도 관련된 해석과 이론이 바뀔 수밖에 없는 사회과학의 경우에는 교과서가 저술될 당시와 시험이 치루어지는 시기와의 모순이 벌어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수능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에게 독서를 포함한 다양한 수단을 통한 종합적인 사고력 습득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번 출제 오류는 평소 각종 사회적 문제나 이슈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온 학생들이 오히려 피해를 주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름지기 제도를 운영함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제도로 인해 억울한 사람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수학능력 시험 자체를 두고 여전히 논란이 많지만 분명한 것은 대학교 입학을 위한 가장 공정한 가늠자로서 수능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다. 지식은 살아있어야 하고 변화는 수용되어야 한다. 과거의 모든 사실이 지금의 사실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수능 역시 살아있는 지식, 변화하는 지식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수능 출제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오류가 있을 수 있지만 합리적인 해명과 방법으로 오류를 용기 있게 바로잡고 보다 더 나은 평가가 될 수 있도록 관계자들이 지혜를 발휘해야만 수능의 권위와 공정성을 지켜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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