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준(청양군 목면 부면장)


수도권의 전세대란이 갈수록 심해진다는 소식이 들린다. 정부의 대책도 약발을 잃은 지 오래다. 세입자들은 대기 순번대로 기다렸다가 매물이 나오면 집을 보지도 않고 계약금부터 넣는다고 한다. 기사에 나온 사진 속에 45평 전세 5억6천이라는 빨간 고딕체 글씨가 선명하다.  충청도 시골에 사는 나로서는 짐작하기 쉽지 않은 숫자들의 조합이다.

 

집의 크기는 욕망의 크기다. 예로부터 부자들은 고래등같은 기와집을 짓고 살았다. 집의 크기는 신분 과시용으로 효과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TV드라마에 단골로 등장하는 대저택과 멋진 외제차는 사람들이 좀 더 넓은 집과 좀 더 큰 차를 꿈꾸게 만든다. 그렇게 아파트 평수를 늘리고 자동차 배기량을 올리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꿈이 되었다. 

 

문제는 꿈은 늘 꿈이라는 데 있다. 쾌적한 환경에서 행복하게 살기 위해 일하는데 일하느라 지금 행복한 생활을 포기하고 사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아이러니 하지 않은가. 그렇게 포기하고 살면서 운이 좋아 꽤 많은 돈을 모았다 치자, 그로 인해 얻어지는 자유를 누리려 할 즈음에는 인생은 이미 만년으로 접어들기 십상이다.

 

기술과 지식은 끊임없이 진보해 왔는데 왜 인간은 아직까지도 쉴 새 없이 일만 하고 살아야 하는 걸까. 이 시스템은 분명 뭔가 큰 문제가 있다. 더구나 큰 집을 소유하기 위한 집값으로 지출해야 하는 엄청난 거액에 대해 누구나 한번 쯤 의문을 가져야 마땅한 일이었다.

 

큰 집을 경계한 선각자들도 있었다. 옛 선비들은 마음공부를 하면서 소유의 크기 커질수록 마음의 부담도 함께 커지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도산서원의 방 크기는 평균 두 평 반 정도라고 한다. 두평 반은 욕망의 크기를 줄이면 삶이 가벼워진다는 인생의 지혜를 상징한다.

 

두 평반은 국경을 넘어 일본에서도 공인된 면적인 모양이다. 다다미 넉 장 반은 일본식 단칸방의 대명사로 통용된다. 다다미 한 장이 반 평 정도니 넉 장 반은 두 평 남짓 크기다. 두평 남짓 크기는 초암의 다실을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물론 더 작은 크기의 다실 형식도 많다.

 


 

두평 반이 아주 먼 옛날이야기 속의 일 만은 아니다. 요즘도 가볍게 살기위해 두 평 남짓 작은 삶의 공간을 시도하는 흐름들이 있다. 다카무라 토모야라는 작가는 작은 집을 지어 살면서 B라이프 연구소라는 웹사이트를 만들어 작은 집 짓는 과정을 사람들과 공유했다.

 

작은 집에서 적게 일하고 적게 쓰며 마음의 여유를 누리던 그가 다른 나라에서 작은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을 취재했다. 그의 책  ‘작은집을 권하다’를 보면 더 큰 집을 선호하는 시대에 작은 집을 고집하는 별종들이 등장한다. 그가 놀란 것은 가장 넓은 공간에서 가장 많은 물건을 소비하며 살던 미국인들이 작은 집에 주목하고 다운사이징을 시작했다는 사실이었다.

 

저자는 그곳에서 스몰하우스 운동을 맨 처음 시작한 건축가 제이세퍼를 만난다. 스몰하우스 운동은 삶에서 소유를 줄이고자 하는 정신운동이다. 집을 줄이면 채울 공간이 적어지니 자동적으로 소유가 줄어든다. 그렇게 삶을 단순화하는 것이다.

 

제이세퍼의 경우는 스스로 디자인한 트레일러하우스에서 산다. 생활하는데 수십 평의 공간이 필요하지 않으며 잠은 편안히 누울 공간만 있으면 충분하다. 그렇게 자신만의 뺄셈 설계방식으로 좀 더 단순하고 평온한 생활을 구현하기 위한 집을 스스로 짓는다. 뺄셈 설계방식은 더 뺄 것이 없을 때까지 집을 단순화하는 방법이다. 그 결과 아래층에 거실과 주방 욕실을 배치하고 지붕 바로 밑에 침실용 로프트를 만들었다. 소박하고 단순하게 살고 싶은 마음을 압축한 초 간단 디자인이다.

 

지붕 바로 밑의 다락방 침실이 스몰하우스 디자인의 백미다. 비오는 날 빗소리가 신경에 거슬리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스몰하우스에 사는 사람들은 오히려 아늑한 공간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잠들 수 있다는 것을 아주 중요한 특권으로 생각한다.

 

 


저자는 작은 집들을 여행하며 현대의 부조리한 삶을 성찰한다. 그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 스몰하우스야말로 누구나 실현가능한 가벼운 삶의 방식임을 일깨운다. 스몰하우스는 경제적 이유 때문만이 아니라 보다 가치있는 삶을 추구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의미있는 변화다.

 

책을 읽다보면 스스로 삶에서 덜어내야 할 것들이 눈에 띈다. 첨단 자본주의가 만든 소유구조에 복무하느라 왜곡된 삶을 반성하게 만든다. 옆집을 따라서 큰 집을 짓고 그 집을 채울 물건을 사 모으면서 도대체 나는 뭘 하고 사는 걸까 하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