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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는 세상
사람이 사는 세상
  • 동양일보
  • 승인 2013.12.09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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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호고 교사 김순옥

 

 책상 위에 놓인 달력을 넘기자, 달랑 한 장 남은 하얀 설경이 12월을 알린다. 어제인 듯 느껴지는 봄이, 여름이, 그리고 가을이 가고, 어느 덧 12월! 겨울이 온 것이다.
 이즈음엔 누구나 지나 온 시간을 돌아보며 자신의 삶과 함께한 많은 분들을 떠올릴 것이다. 얼마 전에는 본교에서 몇 해 전 퇴직하신 교장선생님과 통화를 하게 되었다. 2009년 친정어머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49제를 지내야 하는 날이었다. 마지막 수업을 15분 정도 못하고 가게 되었을 때, 교장선생님께 말씀드리러 간 일이 있었다. 걱정하지 말고, 조심해서 다녀오라고 말씀하셨다. 수업 종료 20분 전 쯤, 학습 자료를 나누어 주고 있을 때, 교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손에 까만 비닐봉지를 들고 인자하게 웃으시며, 저에게 얼른 나가보라고 하셨다. 나중에 학생들에게 들으니, 교장선생님께서 아이스크림을 사 오셔서 나누어 주시며 그 15분을 유익한 말씀으로 보내주셨다고 한다. 어찌 보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로 여길 수 있으나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사람에 대한 이해와 속 깊은 정이 있을 때 우러나오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인품의 향기야말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아 간직되는 것이다.
 가족들과 삶의 체온을 나누며 살아가는 가정 못지않게, 직장에서의 삶은 또 다른 의미의 가족을 형성한다. 생각해보면, 오롯이 깨어있는 낮 시간 동안, 그 하루 하루를 늘 함께 지내며 사는 곳이 직장이다. 그런 측면에서 학교라는 공간도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학습의 장이라는 성격을 빼고 나면 일반 직장과 다를 것이 없다. 이 공간에서 나는 또 일 년을 이렇게 열심히 살아냈구나! 하는 마음과 함께, 그래도 큰 어려움 없이, 마음 상하지 않게 참 잘 살았구나! 라는 안도감이 드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바쁜 현대인들은 제 몸 하나 돌볼 겨를도 없이 정신없이 살다보니 때로는 자신의 몸이 많이 상하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갑자기 찾아오는 병마에 고개를 숙일 때가 종종 있다.
  작년 11월로 기억된다. 학교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일어서려다 갑자기 허리가 심하게 아파서 학생들의 부축을 받으며, 교무실로 온 적이 있었다. 그 뒤로 한 달 넘게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 교실과 교무실을 오가며 어렵게 수업을 했다. 이를 안타깝게 바라보시던 본교의 교장선생님께서 손수 운전하시어 병원에 데려가 주셨다. 계단을 혼자 올라가지 못해, 교장선생님의 팔에 매달려 치료실로 들어갈 때, 콧등이 시큰하고 마음이 한없이 훈훈해졌다. 그날 이후 나의 병세는 많이 호전되었고, 그 이후에도 하루는 교감선생님께서, 또 하루는 교장선생님께서 병원엘 동행해주셨다. 또한 동 교과 선생님들은 올 해 연초 시수 배정을 할 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가장 적은 수업 시수로 나를 배려해주셨고, 타 교과의 선․후배 선생님들도 소소한 면면을 살펴 서로 도와 주셨다. 가족이나 다름없는 큰 사랑이었다. 어디 그뿐이랴! 학생들은 매 시간마다 교무실로 서로 달려와 학습도구를 들어다 주고, 양쪽 팔을 부축해주고, 수업 태도를 더 바르게 하고...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을 만큼 철든 모습으로 나에게 큰 힘이 되어 주었다. 비록 몸은 아팠지만, 그 한 해, 나의 마음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사랑과 보물을 한 아름 선물 받은 것이었다.
  날마다 출근하면 눈 마주치고 살아야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으르렁거리며 질시와 반목을 거듭한다면, 상대방은 물론 자신의 삶도 몹시 팍팍해 질 것이다. 한 해의 마지막 페이지를 열며, 나는 올 한 해 지인들에게 알게 모르게 마음 아프게 한 적은 없었는지, 그가 상사이든, 동료이든, 후배이든, 학생이든 되돌아 볼 일이다. 견고한 매듭이 아직 풀리지 않았다면 내가 먼저 선뜻 다가가 훌훌 풀어 볼 일이다. 먼저 말을 걸고, 먼저 웃고, 먼저 사과하고, 등 두드려 격려해주는 후덕한 인품! 이 얼마나 멋진 사람인가? 
   ‘사람이 사는 세상’ 누구도 혼자서는 살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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