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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동양일보 올해의 인물/ 친일파 민영은땅 귀속 시킨 청주시민대책위원회
2013 동양일보 올해의 인물/ 친일파 민영은땅 귀속 시킨 청주시민대책위원회
  • 이도근
  • 승인 2013.12.16 1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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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재산 환수승소..."위대한 청주시민의 승리


2013년 충북 청주에서 친일재산 환수운동으로 수세에 몰렸던 친일파 후손들이 토지반환소송을 제기하는 후안무치한 행동에 시민들이 들고 나섰다. 민심은 들끓었고, 친일재산 청산에 대한 시민들의 열망은 결국 소송 승소라는 결과를 얻어냈다.

청주시내 한복판, 12필지 땅을 돌려달라며 친일파 민영은(閔泳殷·1870~1943)의 후손들이 제기한 토지반환소송을 막은 ‘친일파 민영은 토지소송에 대한 청주시민대책위원회’(공동대표 : 손현준 민족문제연구소 충북지부장, 김원진 광복회 충북지부장, 김훈일 천주교 청주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남기헌·곽동철·노영우 공동대표, 충북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 강경희·남기헌·연방희 공동대표) 이야기다.

‘이 땅의 푸른깃발’ 동양일보는 해마다 한 해 동안 가장 많은 땀을 흘리고 열매를 거둔 ‘올해의 인물’을 선정, 시상하고 있다. 올해 수상자에는 ‘친일파 민영은 토지소송에 대한 청주시민대책위’를 선정했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세상을 바꾼 이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친일파 문제를 시민스스로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충북지역 대표적 친일파 민영은
민영은(閔泳殷·1870~1943)은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지역구’ 친일파다.
청주군 출신인 민영은은 본래 지역의 유명한 갑부였다. “‘동으로 80리 북으로 50리’가 그 집안 땅”이라는 말로 그의 부를 짐작케 한다. 청주 2대 부호로 칭한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다. 그의 친일행적은 여러 친일단체에 가담한 기록으로 남아있다.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냈고, 숨진 일왕 부부를 기리는 메이지 신궁 건립비를 모으는 봉찬회 조선지부 충북도 위원을 지내는가 하면, 3.1운동의 확산을 막고자 민족을 자제시키자는 역할을 맡은 ‘자제회’에도 속했다.

세계대전 당시 일본에 전투기 등 군사비용, 신사건립비용 헌금 등 각종 후원금품을 제공했으며, 일제토지조사 사업에 가담해 소작농들의 땅을 빼앗은 등 재산을 늘려 왔다. 이 밖에도 조선국방의회연합회, 조선군사후원연맹,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등에서 활동했다.

1935년 일제 총독부가 편찬한 ‘조선총독부 시정 25주년 기념표창자 명감’은 민영은을 ‘조선 최고의 부호’라고 극찬하고 있다. 또 ‘경제적으로 1905년 조선식산은행의 전신인 충주농공은행설립위원에 선출, (중략) 조선통치를 위해 지대한 공헌을 세웠다’고 기재했다. 그는 일왕이 베푸는 잔치에 초대돼 ‘천은에 감읍하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숱한 친일활동으로 그는 각종 친일파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친일파 후손, 수십억 ‘알짜배기’ 땅 소송
민영은과 상속자인 아들이 숨진 뒤 남아있는 재산 일부는 시유지 남아있다. 그러나 토지대장에는 여전히 민영은과 그 아들이 소유자로 등기돼 서울과 미국 등지에 사는 후손들이 이 땅을 차지하러 나섰다.

친일파 민영은의 후손들이 반환을 요구한 땅은 청주시내 요지의 토지 모두 12필지 1894㎡(573.18평)다.

1912년부터 만들어진 청주시의 ‘토지사정부’ 내용에 따르면 1911년 11월 18일 당시 충북도 참사였던 민영은은 청주시 남주동 우시장 옆의 현 남주동 282의 땅 1평(3.3㎡)을 샀다. 일주일 뒤엔 현재 북문로1가 183의 55.2㎡를, 다음날엔 현재 서문동 34의 땅 3.6㎡를 취득했다.

충북도 토지조사위원회 위원을 지내던 1913년부터 5년에는 1913년 9월 28일 청주시 북문로 청주중 후문 인근(북문로3가 54) 796㎡를, 1914년 1월 20일엔 현재 명장사 앞 4필지(37㎡)를, 같은달 22일에도 청주중 정문 앞 709.8㎡를 사들였다. 1917년 7월엔 상당 사거리 현 북문로2가 33의 58.2㎡ 등 곳곳의 땅을 사들였다.

이어 1919년 12월 2일 중앙초 인근 현 문화동 5-2 198.3㎡를 샀으며, 충청흥업 사장이던 1920년 8월에도 상당 사거리 북문로2가 32 33㎡을 다시 사들였다.
당시 청주에서 가장 번화했던 곳이고 지금은 도로 한 복판이다. 이곳의 공시지가는 3억7352만원이지만, 중요 도로용지라 보상가격은 수십억원에 달한다.

●“후안무치”…들고 일어선 시민들
친일파 민영은이 소유한 땅은 국가 환수를 피해갔다. 당시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는 “민영은이 일제가 준 직위(1924년 중추원 참의)를 받기 전에 취득한 땅이어서 환수 대상이 아니다”고 했다.

민영은 후손들은 법의 맹점을 파고들어 재산권 행사에 들어가 지난 2011년 청주시를 상대로 “민영은이 1911~1920년 사들인 도심 12필지 땅에 건설된 도로를 철거하고 땅을 돌려달라”며 ‘도로 철거 및 인도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인 청주지법 민사4단독 김재규 판사는 지난해 11월 청주시가 타인(민영은) 소유의 땅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점유한 것으로 판단, “도로를 철거하고 인도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해 민영은 후손들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따라 청주시는 무단점용 부당이득금 2억3100여만원과 인도가 마무리될 때까지 매달 178만원을 지급할 처지에 놓였다.

이런 판결에 청주시민들이 들고 일어섰다. 민족문제연구소 충북지부, 충북 참여자치시민연대 등 충북지역 시민사회단체 등 11개 시민사회단체·정당들은 ‘친일파 민영은 후손의 토지소송에 대한 청주시민대책위원회’를 꾸린 뒤 소송 반대운동에 들어갔다.

시민대책위는 지난 3월 22일 단체·모임 등의 첫 상견례 이후 같은달 27일 첫 기자회견으로 반대운동에 들어갔다.

소송 제기 규탄 서명운동과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한편, 소송 당사자인 청주시에도 보다 적극적인 대응을 하라고 주문하는 등 끈질긴 노력을 펼쳤다.

시민대책위 활동에 청주시의회가 시민 입장에서 공동 대응키로 했으며, 민주당 등 지역 정치권도 가능한 대응책을 함께 모색했다. 참여단체도 늘어나는 등 범시민 운동으로 확대됐다.

시민대책위는 4월 9일부터 6월 30일까지 진행된 1차 서명운동에서 성안길 등 청주시내에서 받은 1만7009명의 서명과 2011명의 인터넷 서명 등 시민 1만9020명의 지지 서명을 이끌어 냈다. 서명은 충북대, 청주 운호·금천·세광고 등 학교와 청주흰돌교회 등 학교와 교회단체 등에서도 이뤄졌다.

7월 15일에는 “법원은 시민들의 공공 이익과 민족의 자긍심을 지키고, 공동선을 이루는 정의로운 판결을 해야 한다”며 탄원서와 시민서명(1차) 명부를 청주지법에 제출했다. 항소심 선고를 앞둔 10월에도 소송 반대 시민 3816명의 2차 서명지와 탄원서를 재판부에 냈다.

이런 가운데 민영은의 유일한 생계혈육인 딸 민정숙(85)씨와 후손들이 소송취하를 촉구했다. 민영은의 외손자인 권호정(62)·호열(57)씨 형제는 지난 9월 25일 청주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연데 이어 10월에는 청주지법 앞에서 피켓 시위로 ‘토지반환 소송 중단’을 외쳤다.

이들은 “90년 가까이 청주 시민이 사용해 온 땅을 반환하라고 소송을 제기한 것은 공공의 이익을 무시하고 개인의 이익만을 생각한 것”이라며 “잘못 판단한 일부 후손들에게 공익이 사익에 앞설 수 있다는 현명한 판결을 내려주길 기대한다”고 탄원을 내 소송을 불사한 친척과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1심에서 패소한 청주시도 민영은의 친일행각에 주목, 항소심 재판과정에서 이 부분을 집중 부각했다. 청주의 도서관은 물론, 성남시의 국가기록원을 찾아가 민영은 친일행적 자료를 뽑아냈다. 직접 학교 등을 찾아가 인터뷰 하는 등 발품도 아끼지 않았다. 찾아낸 자료들은 재판부에 제출돼 문제의 토지가 친일재산으로 국고 귀속이 당연하다는 논리를 펴나갔다.

●역사적인 판결…‘시민의 승리’
1심 판결에서 패한 것을 항소심에서 뒤집기는 쉽지 않은 상황. 지역 법조계도 법리다툼에서 청주시가 승소할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았다.

그러나 예상을 깨고 항소심 법원은 청주시의 손을 들었다. 지난 11월 5일 청주지법 민사1부(이영욱 부장판사)는 민영은 친손 등 후손 5명이 청주시를 상대로 낸 ‘도로 철거 및 인도 등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민영은 후손들 손을 들어줬던 원심을 깨고 원고 패소 판결했다.
2006년 설립된 친일반민족행위 재산조사위원회 결정을 사실상 뒤집는 ‘역사적인’ 첫 판결이다.

지금까지 친일파의 재산 환수는 대통령 직속 ‘친일 반민족 행위자 재산 조사위원회’(2010년 해산)가 정한 환수 대상 재산 목록에 오른 것에 한정했다. 앞서 친일행위자 재산조사위는 민영은이 중추원 참의 직위를 받은 1924년 이후의 재산만 환수 대상으로 봤고, 지난 1심 재판부도 이를 인용했다.

반면 항소심 재판부는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 귀속에 관한 특별법’에 근거해 일본이 1904년 ‘한일의정서’를 통해 조선에 대한 주도권을 행사하기 시작한 러일전쟁 이후 친일 행위로 취득한 재산은 국가에 귀속돼야 한다고 해석했다.

환수대상에서 제외된 토지라도 친일대가로 취득한 재산이라면 환수해야 한다고 결정함에 따라 향후 유사한 소송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는 판결로 법조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그야말로 지역 여론의 힘과 시민들의 힘을 보여준 승리였다. 시민들과 각계의 환영의 메시지가 잇따랐다. 하지만 시민대책위는 환영의 입장을 보이면서도 ‘상고심을 준비하겠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시민대책위가 비로소 안심한 것은 11월 22일 소송을 제기한 후손 5명이 상고심을 포기, 재판이 종결된 것이 확인되면서다.

항소심에서 패소한 후손들이 상고를 포기하면서 민영은 소유의 땅은 절차에 따라 국가에 귀속된다. 통상적으로 친일 환수 재산은 법무부로 소유권이 넘어간 뒤 기획재정부를 거쳐 국가보훈처가 소유·관리한다. 청주시는 이 땅의 소유·관리권 이전을 추진 중이다.

친일파 민영은 재산환수에 대한 소송은 끝났지만, 시민대책위는 아직 할 일이 남았다.

일단 2년여동안 계속된 땅 지키기 과정을 담은 표지석을 만들어 청주 상당공원 등에 설치하는 것을 추진키로 했다. 친일파 후손들의 후안무치한 행동에 대한 경각심과 시민들의 힘으로 이를 저지해 앞으로 이 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열망을 담은 것이다.

또 재판과정에서 불거진 친일재산 환수법의 흠결부분을 개정토록 촉구하는 한편, 민영은을 포함한 다른 친일파들이 친일행위 대가로 취득한 재산을 더 찾아내 국고로 환수하는 운동을 벌일 계획이다.

시민대책위 관계자는 “친일파들의 친일행각을 제대로 규정하고 친일환수재산 범위 등을 다시 한 번 꼼꼼히 살필 필요가 있다”며 “정부에 친일파들의 친일행각을 다시 세세하게 살필 것과 재판과정에서 나온 친일재산환수법의 국고귀속 부분의 개정을 촉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도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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