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사직동 참도깨비 도서관


도깨비가 실존한다고 믿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눈이 위로 쭉 찢어지고 머리에 뿔이 달린 도깨비 아저씨는 공포의 상징이었다. 뾰족뾰족한 가시가 날카롭게 선 방망이는 두려움을 더했다. 호랑이는 곶감 따위 무서워하지 않고, 산타할아버지는 존재하지 않으며, 도깨비 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나의 어린 시절은 과거가 되어 버렸다.
동화책을 통해 도깨비가 있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환기시키는 곳. 청주 참도깨비 도서관(충북 청주시 흥덕구 사직1동 888·☏043-274-7500)을 찾았다.
청주 흥덕문화의집(관장 이종수) 부설 작은도서관으로 있는 이곳은 1996년 대전 가양동에서 시작된 참도깨비어린이사랑방을 모태로 한다.
지역에 어린이전용 작은도서관이 흔치 않던 시절. 이종수 관장은 본격적으로 어린이 문학을 공부하면서 그림책에 빠지게 된다. 아이들의 세계를 공유하고, 놓쳤던 감수성과 상상력을 붙들고 싶은 마음에 조금씩 그림책을 사 모으기 시작한 것. 그러다 책이 불어나 조그만 책방을 꾸릴 정도가 됐고 자연스럽게 도서관이 탄생했다. 오혜자 초롱이네도서관장 등 그림책에 관심이 있던 사람들과 모여 ‘아이책을 읽는 어른 모임’을 만들고 어린이 도서에 대한 연구를 했던 것도 그때였다.
도서관이라는 이름을 걸고 막상 공간을 열기는 했지만 17년간 혼자 꾸려 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역에 자리를 잡을 즈음 되면 전세 계약이 만료됐고 임대료와 싸워 가며 이사 다니길 반복해야 했다. 대전에서 시작한 도서관은 청주 사천동·영동, 충주 연수동, 청주 우암동·율량동 등 6~7곳을 옮겨 다녔다. 이사갈 때마다 몇 천권의 책이 함께 따라가야 했으니 이삿짐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다 지난해 이 관장이 흥덕문화의집 관장으로 오며 이곳에 정착했다.
그동안 도서관에서는 주로 문학교실과 학부모 강좌를 많이 열었다. 요즘처럼 독서지도라던가 논술지도 등의 미명 하에 교재로서 책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책을 읽고, 재미있게 서로 이야기하면 그만이었다. 아이들은 개개인마다 이해하는 방식과 표현법이 모두 다 달랐고, 그렇게 서로 다른 생각들을 얘기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생각이 확장되고 책 본연의 즐거움을 느낄 수가 있었다. 초창기 학부모강좌에 참여했던 오미경씨는 현재 동화작가가 되기도 했다.
올해는 4월부터 7월까지 12차시에 걸쳐 ‘우리 가족 책 놀이터’를 운영했다. 5~6세의 유아들과 함께 그림책을 읽고 팝업북, 책퍼즐 등을 만들거나 역할극을 하기도 했다. 수업을 진행한 신수진씨는 프로그램에 참가한 아이들을 캐릭터화해 이들이 등장하는 창작 그림책을 만들기도 했다.   
2013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지원 사업으로 5월부터 11월까지 ‘함께하는 인형극 즐거운 상상’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지난해 ‘책 읽어주는 문화봉사단’ 교육을 수료한 60~70대의 어르신들과 청주 동산지역아동센터 어린이들이 함께 교육에 참여했다. 이들은 인형극 대본을 쓰고 직접 만든 인형과 도구들을 가지고 청주 에듀피아에서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책 읽어주는 문화봉사단’ 수료생들은 아동센터와 요양원 등에서 책을 읽어주는 봉사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현재 참도깨비 도서관에는 1만여권의 장서가 있다. 어린이 도서관으로 시작했지만 그렇다고 유아·아동 도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책들은 그 흔한 바코드 라벨도 달고 있지 않다. 책을 빌려가는 방식도 아날로그를 고집한다. 이름과 전화번호만 적으면 한 사람당 네 권의 책을 빌려갈 수 있다. 책이 없어지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련만 이 관장은 “도서관을 17년간 운영했지만 없어지는 책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고 태평하게 말했다. 책이 좋아 여기까지 물어물어 힘들게 오는 분들이 책을 훔쳐갈 생각을 하고 오지는 않는다는 것. 어느 한 명이라도 편하게 와서 즐길 수 있는 공간이면 족하다는 것이 이 관장의 바람이다. 
 <글·사진/조아라>

 

“예스러운 즐거움, 작은도서관만의 장점”- 이종수 관장 인터뷰


이종수(48) 관장은 시인이다. 전남 벌교 출신으로 청주대 국문과 재학 시절 문학동아리에서 시를 쓰다 199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장닭공화국’이 당선되며 등단했다. 충북의 시인들과 함께 매달 엽서로 시를 띄우는 ‘엽서시’를 발간하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첫 시집을 낸 지 10년 만에 두 번째 시집 ‘달함지’를 출간하기도 했다.

▷그림책에 관심이 많은데 직접 펴낼 생각은 없는지?
“생각은 늘 하지요. 제목과 소재까지 생각해 놓았는데 게을러서 잘 진척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제 욕심대로라면 그림을 배워서 직접 그려보고도 싶은데 역량 부족이네요. 실제로 철사와 열매 등을 이용해서 사람 모양으로 만들어 보기도 했어요. (웃음) 지역 미술작가들과 만나 함께 작업하고 싶기도 한데 잘 안되네요. 그러려면 같이 그림책에 대한 공부도 해야 하는데… 단지 그림을 잘 그린다고 그림책에 바로 뛰어들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요.”

▷도서관 운영 중 어려움이 있다면?
“작은 도서관은 책을 대량으로 구입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좋은 도서를 선정해 소량으로 갖춰나갈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책부대’들이 생겼어요. 가족대출증을 모두 활용해 여러 권씩 싹쓸이해가는 겁니다. 그런 분들이 몇 번 드나들고는 작은도서관에 책이 없다고 얘기하고는 하십니다. 예전에는 책을 빌리러 오는 분들이 저와 자연스럽게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곤 했는데 요즘에는 책을 공유하려 하기보다는 끊임없이 섭렵하고 폭식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오히려 책 자체의 즐거움을 느끼려는 사람들이 소외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지금까지 혼자서 도서관을 끌어왔는데 힘들지는 않았는지?
“힘들지만 작은도서관은 그래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작은도서관을 운영하시는 분들은 자기 공간이 없어 임대를 할 수 밖에 없어요. 그러다 보면 또 이사를 가게 되고 그러면 그 동네 주민분들게 죄송하지요. 요즘은 개인보다는 단체나 아파트 입주민대표회의 등에서 운영하다 보니 개인이 운영하는 것 보다는 운영이 훨씬 수월해 진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작은도서관의 형태도 많이 바뀌었어요. 그저 책이 좋아 읽고 토론하던 예전의 아기자기한 분위기와 달리 요즘에는 프로그램 위주로 운영하거나 대출·반납에 중점을 두는 것으로 많이 달라지고 있죠.”

▷작은도서관의 역할은?
“작은도서관은 내 집 가장 가까이에서 이용할 수 있는 곳이고 책 본연의 즐거움이 있는 곳입니다. 공공도서관이 거대한 책 저장소이고 학습공간이거나 지속적인 프로그램 위주의 교양센터 기능을 한다면 작은도서관은 그런 곳에서 할 수 없는 본연의 예스러운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곳입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결국은 처음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어디에 어떻게 공간을 마련할지가 늘 고민이지요. 아파트는 폐쇄적이고 임대를 한다면 어떻게 공간을 만들 것인가. 시골로 들어간다면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생각을 해봐야 할 것입니다. 예전에는 이동도서관을 할까 하고 원주에 있는 이동도서관을 보러 다녀오고 버스를 알아보기도 했어요. 책수레를 만들어 끌고 다니며 원하는 아이들에게 읽어주는 건 어떨까 생각해 보기도 했지요. 그런데 네모난, 짜인 공간에서만 할 수 밖에 없는 어려움이 있더라고요. 우선은 지금 현재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입니다.”
<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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