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종 호(청주대 명예교수)

 하루 후면 뱀띠 해인 계사년(癸巳年)이 가고 말띠 해인 갑오년이 된다. 희랍어 성경에서의 ‘달력에 의하여 인간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크로노스(chronos : 마태 2:7, 누가 1:7)의 시간(카이로스 : kairos : 마태 24:45, 누가 20:10, 뜻있게 보내는 시간)인’ 365일이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하고 새로운 365일이 시작된다. 33번 울리는 제야의 종소리 속에 한 해 동안의 어둠을 지워버리고 일출과 함께 밝음의 원단(元旦:새해 아침))을 맞는다. 그리고는 모든 것을 새로이 시작하는 마음으로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운다. 부푼 꿈과 희망을 가지고 물질적인 풍요와 신분상승 등 찬란한 미래발명을 설계한다. 내면보다는 외형을. 질적인 것보다는 양적인 발전을 중심으로 조감도를 그린다. 카이로스의 시간을 보내기로 다짐한다.

그러나 인간의 가치와 행복은 내면이나 질적인 것의 함수라는 점과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에 관계성의 원활화가 중요하다는 점 및 스스로를 반듯하게 세우는 것이 ‘큰 사람’으로서의 길이라는 점 등에서 사회를 향해 새해에는 우리 모두가 ‘대승적인 자아정립’을 다짐하고 일상화할 것을 주문하여 본다. 누구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대승적(大乘的) 자아정립(自我定立)이란 자익이나 개인적인 것에 억매이지 않고 공동선(共同善)이나 전체(全體)를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간상을 말한다. 내가 소중한 만큼 남도 소중하고, 내가 소속한 집단이나 조직이 귀한 만큼 타의 집단이나 조직도 귀하다는 관점에서 공생의 미덕을 발휘하는 인간상을 말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이익과 편의 및 명예만을 추구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에 대승적인 자세를 견지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비록 자신에게는 손해가 되더라도 사회적 공의와 보편적인 기준에 맞게 행동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이고 ‘만물의 영장’이며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는).’는 관점에서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본다. 어떤 점에서는 이러한 사고와 행동은 신이 인간에게 부과한 엄숙한 숙제(명령)이기도 한 것이다.

 


이러한 자아정립은 현대처럼 시대가 혼란할수록 그 필요성이 강조된다. 본래 자기의 것은 하나도 없다(공수래공수거)는 것을 잘 알면서도 자신의 안복(安福)과 권세를 위하여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식’이나 ‘눈감고 아옹 식’의 꼼수를 아무런 부끄럼 없이 자행하고 있는 군상들이 즐비하게 펼쳐지고 있다는 것이 이를 잘 증명한다. 이러한 행태들은 특히 모든 분야의 머리역할을 하는 정치권에서 심하게 노정되고 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정치인들은 곧잘 자신의 입지강화와 당리당략에 의한 권모술수, 언행불일치, 표리부동 등의 행동을 일삼고 있다. 누가 보아도 말이 아니 되는 주장을 혼자만이 정의(正義)라고 부르짖으며 국민의 일반적인 상식이나 관념 등에 상반되는 정견을 발표하고 있다. 객관성이나 합리성을 갖추지 않은 의견을 쏟아내고 있다. 이론이나 자유민주주의의 내용으로 볼 수 없는 의견을 대의(大義)라고 말하고 있다. 국민들은 정치인들의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 쉰다. 또한 국민들은 이러한 정치인들의 행보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에 대하여 걱정한다. 정치권은 사회 모든 분야의 정점에 자리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들이 정당하지 못한 행동들을 하게 되면 마치 상류에서 흙탕물이 일면 하류까지 탁류가 되듯이 사회 전 분야에 영향을 주는 황사현상을 일으키게 된다. 국가의 정체성이 모호해질 뿐만 아니라 종국적으로는 국민의 행복이 멍이 들게 된다. 국민들은 도대체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고 있는가?’를 되물으며 실의에 잠기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하여 이를 정치권만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다. 국가의 주인은 국민인 점에서 국민들이 공동책임자가 되어야 한다. 소아적이고 이기적인 자세를 버리고 대아적이고 대승적인 자아를 구축하여야 한다.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을 빌릴 필요도 없이 대승적인 자아정립은 자기성찰위에서 꽃을 피운다.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을 바로 세울 수 있는 사람들만이 취할 수 있는 정신세계이고 양식의 산물인 것이다. 정의(正義)의 옷을 입고 대의(大義)의 눈을 가진 사람들의 자화상인 것이다.

새로 맞이하는 갑오년(甲午年) 새해에는 우리 모두 대승적인 자아로서의 삶을 영위하자. 이기적이고 독선적이며 배타적인 사고와 행동들을 훌훌 털어버리고 대의와 정의를 사랑하고 가꾸며 지키는 대승적인 삶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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